▲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18일 사무실 주간회의에서였다. 회의 중에 현대그린푸드에서 사측이 했다는 말을 두고서 이야기를 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킨 것이니 정부를 원망하라"고 조리노동자들에게 막말을 했다는 내용이 매일노동뉴스(2019년 2월18일자)에 자세히 보도돼 있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전국 600여개 공장에서 사내식당을 운영하는 이 회사는 올해 1월부터 2개월마다 지급하던 상여금을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지난해 매월 지급하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키는 최저임금법 개정을 한 뒤 올해부터 그 시행에 들어가자 현대그린푸드 사측은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사측은 올해 1월부터 2개월마다 100%씩 지급하던 상여금 600%를 매월 50%씩 쪼개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했던 것인데, 이같이 변경하면서 노조의 동의도 받지 않고 형식적으로 의견청취를 거쳤다. 지난해 개정된 최저임금법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될 수 있도록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사용자가 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동의’ 아닌 ‘의견청취’만으로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도록 했으니, 사측은 이를 이용해 손쉽게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그린푸드 노동자들은 해마다 최저임금이 인상됨에 따라 임금인상이 이뤄져 왔던 것인데, 졸지에 사측의 이러한 행위로 최저임금이 크게 인상됐어도 그에 따른 임금인상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 때문에 노동자 250여명은 지난 17일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 앞에서 "일방적인 상여금 지급 변경을 철회하라"고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양손에 분홍색 고무장갑을 끼고, 머리에 위생모를 쓴 현대그린푸드 조리노동자들은 "최저임금 도둑질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2. 오늘 현대그린푸드 등 이 나라 많은 노동자들이 분노하고 있는 바로 그 최저임금법 개정은 지난해 5월 국회에서 의결됐다. 당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주도해서 여야 합의로 매월 지급하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키는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서 의결했던 것이고, 이를 문재인 대통령이 법률로 공포함으로써 개정이 이뤄졌다. 이 같은 개정을 통해서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과 현금으로 지급하는 복리후생적 임금은 각각 해당 연도 시간급 최저임금액을 월단위로 환산한 금액의 25%와 7%를 초과하는 부분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되, 연차별로 그 비율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2024년 이후에는 모두 포함되도록 했고(최저임금법 6조4항·부칙 2조), 사용자가 최저임금으로 산입되는 임금에 포함시키기 위해 1개월을 초과하는 주기로 지급하는 임금을 총액의 변동 없이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경우 근로기준법 94조1항(불이익변경시 과반수노동조합 또는 과반수 근로자의 동의)에도 불구하고 과반수노동조합 또는 과반수 근로자의 의견청취로 할 수 있도록 했다(6조의2 및 28조3항 신설). 이같이 최저임금법 개정을 두고서는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 등 여야가 따로 없었고,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말해 온 문재인 대통령까지 공포를 통해 함께했다. 개정이유에는 “국민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법률에 직접 규정하면서, 그 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개정이유에 의한다면 현대그린푸드 등 이 나라 노동자들의 임금은 졸지에 ‘합리적으로 조정’당했다고 볼 수 있다.

3. 그렇다면, 현대그린푸드 사측이 했다는 말은, 즉 "문재인 대통령이 시킨 것이니 정부를 원망하라"는 말은 타당한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촛불대선에서 “현행 최저임금(시급)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제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80면). 뿐만 아니다.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가구생계비 등을 포함”하고, “최저임금 전담 근로감독관 신설 및 상습·악의적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에 대한 제재”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랬던 것인데, 현행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기도 전에 일정한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킴으로써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인상돼 봐야 현대그린푸드 등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1만원으로의 인상 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고 말았다. 이로 인해 이제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해도, “현행 최저임금(시급)”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은, ‘현행 최저임금(시급)’이 아닌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보탠 시급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것으로 변질돼 버렸다. 최저임금법에 따른 최저임금으로 자신의 임금이 정해져 온 노동자들에게는 날벼락이었다. ‘현행 최저임금(시급)’이 아닌 개악된 최저임금법에 따른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해 봐야 그 인상의 효과가 온전히 자신의 임금인상이 될 거라는 기대가 무너졌다. 어차피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가구생계비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까지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현행 최저임금(시급)’을 1만원으로 인상하면, ‘상습·악의적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에 대한 제재’를 통해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기대해도 되겠다고 기대했다. 그런데 기대는 날벼락 같은 최저임금법 개정을 통해 송두리째 무너졌다. 그것도 사용자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도록 상여금 등의 기준을 변경하는 데 근로기준법이 정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거치지 않도록 사용자에게 보장해 주고 있다. 노동자로서는 이러한 사용자의 변경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도 어렵게 된 것이니, 사업장 밖으로 뛰쳐나가 "일방적인 상여금 지급 변경을 철회하라"고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최저임금 도둑질을 중단하라"고 외치는 것 말고는 달리 저지할 방법이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최저입금법 개정법률의 내용을 읽자면, 이렇게 최저임금법을 개정한 것은 사용자로 하여금 상여금 등의 기준을 변경해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할 수 있게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읽게 된다. 그리고 그 개정에 공포 등으로 관여한 문재인 정부가 보장해 준 것이니 노동자들의 항의에 사용자가 정부를 원망하라고 말할 만도 하다.

4. 다시 최저임금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뭐 노동자를 위한 개정 추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인상되고 있다며 야단을 떨더니 정부는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개편하겠다고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나누는 내용의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20일께 그 방안을 발표한다니 이 방안으로 집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개정안을 발의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곧바로 국회에서 개정안을 의결하게 될 것이다. 자유한국당 등 국회의 의원구성을 보면,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법 개정 추진은 어렵지만,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의 권리와 무관하거나 그 권리를 삭감하는 법 개정은 너무도 쉽게 국회의 의결과 정부의 공포를 통해 추진된다. 그러니 오늘도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스럽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저하시키는 것은 순식간에 여야 의기투합으로 이뤄져 버리니 한눈팔 수가 없다. 또 무엇을 두고서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의 항의에 ‘문재인 대통령이 시킨 일’이라고 말할지 알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존중 사회 실현’은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다. 사용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이 시킨 일’이라고 말하는 일이 잦으면 잦을수록 이 나라 노동자에게 ‘노동존중 사회 실현’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문득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이 걱정스럽다. 이 나라 노동자의 자유를 보장하게 될 협약 비준조차 사용자들의 조롱을 받게 되는 일은 정말 끔찍하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나라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시킨 일’로 말해지도록 해야만 한다. 노동자가 단결해서 활동할 자유를 보장받는 일, 누가 시켜서 보장받는 일이 아니고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끼리 단결해서 사용자를 상대로 요구하고 활동하는 것이라서 노동자의 자유로서 보장되는 것임에도, 이 나라에서는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시킨 일’로라도 보장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런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 등 이에 관해서 추진하는 일을 보면서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존중 사회 실현’의 다른 공약처럼 돼 버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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