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기업 임원은 육아휴직 뒤 복직한 노동자 B씨에게 휴직 전에 했던 창구 수신업무가 아닌 창구 안내와 총무 보조업무를 시켰다. 심지어 B씨를 퇴출하기 위해 다른 직원들에게 지시해 B씨를 따돌리게 하고 그의 책상까지 치우게 했다. 우울증을 앓던 B씨는 회사를 그만뒀다.

의류회사인 C기업 디자인팀장은 신상품 발표회를 앞두고 팀원에게 새 제품 디자인을 지시했다. 팀원은 여러 차례 시안을 보고했다. 그러자 팀장은 신제품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며 계속 보완을 요구했다. 업무량이 폭증한 담당 팀원은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16개 괴롭힘 유형·취업규칙 표준안 제시

고용노동부가 21일 발표한 ‘직장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A기업 사례는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반면 C기업 사례는 직장내 괴롭힘이 아니다.

노동부는 매뉴얼에서 직장의 사용자·노동자가 △우위에 있는 지위·관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로 △다른 노동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내 괴롭힘으로 봤다.

A기업 임원은 직위를 이용해 따돌림을 지시한 데다, 직원을 퇴출하기 위해 업무적으로 필요 없는 행위를 했다. 정신적 고통까지 줬다.

C기업 팀장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제품 디자인 향상을 위해 직원을 평가하고 일을 지시한 것은 업무상 필요가 있다고 노동부는 보고 있다. 팀원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더라도 팀장이 다른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장내 괴롭힘이 아니라는 것이 노동부 결론이다.

노동부는 매뉴얼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능력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하는 행위,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지 않고 모두가 꺼리는 업무를 반복적으로 부여하는 행위, 허드렛일을 시키거나 일을 거의 주지 않는 행위, 음주·흡연·회식 참여를 강요하는 행위를 포함해 16가지를 직장내 괴롭힘으로 분류했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올해 7월16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상시근로자 10명 이상 사업장은 취업규칙에 직장내 괴롭힘 예방·발생시 조치를 명시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노동부는 매뉴얼에서 △금지되는 직장내 괴롭힘 행위 △예방교육 관련 사항 △사건처리 절차 △피해자 보호조치 △행위자 제재 △재발방지조치를 취업규칙에 규정하도록 했다. 가해자 징계규정을 신설하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기 때문에 노동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 또는 노동자 과반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사장이 괴롭히면?
“감사가 조사” vs “노동부가 나서야”


노동부가 노사 단체 의견을 들어 매뉴얼을 만들면서 논란이 된 것은 가해자가 대표이사나 사장일 경우다. 대표이사를 징계하거나 제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매뉴얼에서 기업 감사가 외부기관이나 전문가에 의뢰해 사건을 조사하고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사가 대표이사를 징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이사회나 감사가 없는 사업장이 훨씬 많다”며 “노동부가 직접 신고를 받아 근로감독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동부 매뉴얼과 취업규칙 표준안에 익명신고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피해자나 신고자 불이익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근기법에서는 가해자를 징계할 때 피해자 의사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익명신고는 매뉴얼에 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신 사건을 조사할 때 피해자와 관련자에 대한 비밀유지 의무를 매뉴얼에 반영했고, 신고자·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근기법에 따라 처벌받는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