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성실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항소심에서 법원이 "추가 임금 지급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게 된다"는 사측 주장을 배척했다. "근무 중 휴게시간을 근로시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1부(부장판사 윤승은)는 지난 22일 기아자동차 노동자 2만7천500명이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미지급임금 청구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기아차는 원금 3천125억원에 지연이자를 포함한 4천600억원가량을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

1심과 마찬가지로 2심에서도 신의칙 위반 여부가 쟁점이었다. 기아차는 자동차 생산·판매 부진 등 최근 회사 경영상태가 나쁘다는 점을 부각하며 신의칙 위반을 주장했다. 재판부는 "회사의 매출액, 당기순이익, 동원 가능한 자금의 규모, 현금보유량 등을 감안할 때 이번 소송으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신의칙을 적용해 근로자 임금청구권을 제약하는 것은 자칫 헌법과 근로기준법의 기본 정신을 거스를 수 있다"고 못 박았다.

근무 중 휴게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할지 여부도 쟁점이었다. 기아차는 그동안 근로시간으로 인정했던 유급휴게시간(2시간에 10분, 연장·야간근로시 2시간에 15분)을 근로시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생산라인에서 쉬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CCTV 화면까지 제출했다. 재판부는 "근로자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 있는 시간으로서 근로시간"이라고 본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인정했던 가족수당은 일률성이 없다며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았다. 1심(3천126억원)보다 원금이 1억원 줄어든 이유다.

원고측 대리인인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회사의 경영상태를 구체적으로 살펴 신의칙 여부를 엄격히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특히 근무 중 10분·15분 휴게시간을 근로시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는 점에서 많은 제조업 사업장에 영향을 미치게 될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강상호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장은 "사측이 2심 판결을 준용해 체불임금을 빨리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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