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보상보험법 입법목적은 업무상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것이다. 업무상질병 판정 과정에서 공정성과 일관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신속성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업계 전문가들은 업무상질병 처리가 더디다고 비판한다. 60일 이내에 마무리하라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가 1천일 동안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와 공인노무사들이 신속한 판정이 필요한 이유와 개선방안을 보내왔다.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정미경 공인노무사(건설노조 정책부장)

22년 경력의 형틀목수인 A조합원이 건설노조 사무실을 찾아왔다. 회전근개파열로 수술을 하고 복지비(건설노조는 업무 외 원인으로 발생한 질환으로 8주 이상 휴업하는 경우 복지기금에서 약간의 위로금을 지급한다)를 신청하러 총무팀을 찾아갔더니 “목수 일을 오래 하셔서 생긴 병이니 복지비를 지급할 수 없고 산재를 신청하시라”고 했단다. 중노동의 상징이 건설현장이라지만 정작 건설노동자들은 자신의 근골격계질환이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지난 22년간 혹사당한 A조합원이 산재보험으로 어깨를 치료할 기회로 보고 ‘근골격계질환 특진제도’를 안내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은 건설일용직·조리종사자·요양보호사 등 근골격계질환이 자주 발생하는 직종의 경우 직업환경의학과전문의가 있는 공단 소속 병원에서 특별진찰을 받도록 하고, 특진병원에서 직접 재해현장 조사와 업무관련성 평가를 하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또 특진 이후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업무상재해로 요양승인이 되면 직업환경의학과·재활의학과 등의 협진으로 재해자가 본래 종사하고 있던 업무로 복귀할 수 있도록 ‘작업능력 강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건설노조에서는 이러한 제도의 시도로 건설현장 작업환경과 업무강도가 제대로 평가받고, 건설업에 특화된 집중재활로 현장복귀가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 근골격계질환으로 요양승인 후 집중재활이나 작업능력 강화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건설노동자는 거의 없다. 최초 요양신청 후 업무상재해로 승인받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A조합원의 경우 2018년 2월 최초 요양신청 후 6개월 만인 8월에야 질병판정위에서 업무상재해로 승인됐다. 그러는 사이 오랜 휴업으로 생계가 어려웠던 A조합원은 제대로 된 재활치료도 받지 못하고 중량물을 취급하는 현장으로 복귀했다. 같은 형틀목수 일을 25년간 했던 B조합원은 지난해 6월 요추간판탈출증으로 최초 요양신청을 했다. 공단에서 보내 온 요양급여신청서 접수 공문에는 근골격계질환이 업무상재해로 판단받기까지 ‘평균 55일’이 소요된다고 안내돼 있다. 필자는 B조합원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좋은 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B조합원의 상병은 8개월 만인 올해 2월이 돼서야 업무상재해로 승인됐다. B조합원 역시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고 현장에 복귀했다. 44년 형틀목수 경력의 C조합원은 같은해 9월 회전근개파열로 최초 요양신청을 했지만 5개월이 경과한 현재까지 질병판정위에 심판의뢰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C조합원 역시 곧 현장복귀를 앞두고 있다.

특진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2개월이면 요양승인 여부가 결정되던 것이 이제는 3개월에서 6개월로, 8개월로 기약 없이 장기화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좋지만 지금 처리 속도로는 제대로 된 재활 후 복귀는 꿈꿀 수 없다.

온몸으로 일을 해내야 하는 건설노동자로서는 수술이 필요한 정도로 질환이 악화되기 전까지는 산재보상신청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운이 좋아 산재보험급여를 받게 되더라도 또다시 중노동 현장으로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재활치료는 재해자의 생계를 이어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처리기간이 길어져 업무상재해 승인 여부를 알기도 전에 직장에 복귀할 수밖에 없다면 산재보험은 그저 치료비를 보상하는 수준에 머물게 된다. ‘직장복귀 지원 프로그램’의 목적은 재해노동자가 충분한 재활치료를 받고 일평생 일한 일터로 건강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근골격계 부담 작업임이 확인된 업종은 특진 기간을 합리적으로 단축하고, 재활치료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재해자로 하여금 산재보험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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