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의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논의하는 사회적 대화가 난항을 겪고 있다. 노동기본권을 강화하는 ILO 핵심협약 비준에 반대하는 재계가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좀처럼 논의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한 상태다. 한국의 상황을 지켜보는 ILO 관계자들도 우려하는 분위기다.

최근 방한한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제사회의 이런 우려를 전달하면서 핵심협약 비준을 둘러싸고 국내에서 벌어지는 논란과 관련해 ILO의 의견을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1991년 ILO 회원국이 된 뒤 핵심협약 8개 가운데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87호·98호)과 강제노동 금지 관련 협약(29호·105호)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이 국장은 이를 "밀린 숙제"라고 표현했다.

◇"핵심협약 비준해도 고용·성장에 악영향 없어"=이상헌 국장은 "ILO 핵심협약 비준에 따른 기업경쟁력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ILO에서 오랜 기간 진행된 실증연구에서 한결같은 결론은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강화하는 게 무역이나 고용·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부 연구는 오히려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이 국장은 최근 ILO 핵심협약 비준을 둘러싼 노사정 논의 방향에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는 단결권 관련 논의를 끝냈는데도 비준에 소극적인 재계를 설득하기 위해 경총이 요구한 의제를 논의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다.

경총은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사용자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 삭제 △직장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국장은 "ILO 핵심협약의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 것이 논의되고 있다"며 "어느 나라든 협약비준 논쟁시 법·제도를 살펴보는 건 자연스럽긴 하지만 과도하게 그 문제를 협약비준과 연결시켜 버리면 불필요하게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단체행동권이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규정돼 있다는 재계 주장에는 "한국은 유독 불법파업이 많다"며 "한국의 법률이나 제도를 봤을 때 한국이 파업하기 쉬운 나라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사항을 목적으로 하고 엄격하게 정해진 절차와 방법을 따라야 합법파업이 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그는 "유럽에서 보면 이슈상·절차상 정당해 보이는 파업이 한국에서는 불법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 ILO 총회 연설 기대"=한국의 핵심협약 비준에 쏠린 국제사회의 관심도 전했다. 이 국장은 "유럽은 무역문제를 경제의 문제로만 보는 게 아니라 도덕·가치의 문제로 본다"며 "단순히 물건을 거래하는 게 아닌 물건을 생산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관심이 많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6월 ILO 100주년 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한다면 국제노동 문제에 대한 한국의 기여도가 질적인 도약을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는 "한국이 ILO에 가입한 이후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수세적이었는데 이번에 대통령이 연설한다면 좀 더 당당하게 국제노동 문제에도 어젠다 세팅(의제설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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