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정신 계승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성별 임금격차 해소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미투,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성평등은 노동존중의 약속 #없애자! 성별분업 #임신중지권 보장하라.

세계여성의 날 111주년을 맞은 지난 8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달군 해시태그들이다. 이날 양대 노총과 여성단체들은 도심 곳곳에서 차별과 배제·폭력에서 벗어나 평등과 존중의 사회로 가자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여성 목소리 높아졌지만 여성 노동권은 제자리걸음

지난해 미투(Me Too, 나는 고발한다)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면서 사회 전반에서 여성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럼에도 여성 노동권은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3·8 세계여성의 날에 '양성평등을 향한 도약'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여성은 13억명, 남성은 20억명이 고용돼 있다. 남녀 간 취업자 격차는 무려 26%였다. ILO는 "돌봄노동이 남녀 간 고용격차를 발생시키는 원인"이라며 "지난 20여년간 여성의 무급 돌봄노동 시간은 거의 줄지 않았지만 남성의 무급 돌봄노동 시간은 겨우 8분 늘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상황은 더 심각하다. 미혼 남녀의 고용률 격차는 1.6%포인트에 불과하지만 결혼한 남녀의 고용률 격차는 28.5%로 18배나 차이가 난다. 2018년 통계청의 일·가정 양립지표를 보면 2017년 기준으로 결혼한 남성 고용률은 81.9%인 반면 결혼한 여성 고용률은 53.4%에 그친다. 둘 사이 격차가 28.5%포인트나 된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살아남는다 해도 높은 임금격차와 두터운 유리천장 속에 갇힌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남녀 임금격차 비율은 63%다. 남성이 100만원을 벌 때 여성은 63만원을 번다는 의미다. 남녀 임금격차는 2000년 이후 10여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임금격차가 큰 이유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여성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여성 노동자 10명 중 4명(37.2%)은 중위임금의 3분의 2 이하인 저임금을 받고 있다. 남성 저임금 비율은 14.3%다.

여성 노동권을 위해 더 많은 보호가 필요하지만 여성 노조조직률은 5.8%에 불과하다. 여성 노동자 100명 중 6명만이 노조 울타리에 있다. 남성 노조조직률(13.4%)의 절반도 못 따라간다.
 

▲ 세계여성의 날인 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노총 여성노동자대회에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등 참석자들이 ‘성평등 노동존중의 약속’이라고 적힌 보라색 손수건을 들어보이고 있다.<정기훈 기자>

채용·임금·승진 3대 차별 '그대로'
"여성 노동자가 성차별에 맞서 싸우자"


"지난해 미투운동이 벌어지는 한가운데 금융권 채용비리가 터졌습니다. KEB하나은행은 남성과 여성 채용비율을 4대 1로 정해 여성에게는 좌절감을, 남성에게는 모욕감을 줬어요. 성차별 채용구조의 민낯이 드러난 거죠. 저임금 행원급 비율은 5대 5로 비슷하지만 관리자급으로 올라가면 8대 2로 벌어집니다. 지점장급에서 여성은 5%가 넘지 않아요. 여성을 차별하는 조직문화는 성폭력과 관련이 깊습니다. 이제 차별 폭력에 맞서 싸우는 미투운동 시즌2를 전개해야 합니다."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울려 퍼진 김정란 금융노조 KEB하나은행지부 여성국장의 말이다. 최미영 한국노총 여성위원회 위원장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를 비웃듯 기업 채용 과정에서 불법적 고용차별이 관행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고의적, 반복적으로 여성을 배제하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일침을 놨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여성은 일터에서 겪는 차별뿐만 아니라 노조활동에서도 남성중심적인 문화로 어려움을 겪는다"며 "성평등 노동존중 약속이라는 대회 슬로건에 맞게 성인지적인 노조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이날 "여성의 노동을 평가절하하고 여성을 생계부양자보다는 돌봄제공자로 간주하는 사회는 여성을 낮은 임금과 불안한 고용지위, 빈곤한 삶을 감내하도록 한다"며 "노동존중 사회는 모든 노동자들이 동등한 노동권을 보장받고 누릴 때 완성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다양해진 성차별 반대 구호
"성별분업 철폐"부터 "낙태죄 폐지"까지


민주노총은 같은날 오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전국여성노동자대회를 열었다. 보라색 바람개비를 든 참가자들은 "민주노총이 앞장서서 성평등 세상 앞당기자" "성별 임금격차 해소하고 동일임금 쟁취하자"고 외쳤다. 이들의 손에 들린 보라색 바람개비 날개 네 곳에는 △없애자 성별분업 △만들자 평등세상 △직장내 성폭력 근절 △낙태죄 폐지 구호가 적혀 있었다.

민주노총은 성별분업을 성차별 고용구조의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일터에서 여성이 하는 일과 남성이 하는 일로 나뉜 일의 구조가 여성을 비정규·저숙련 노동으로 내몬다는 비판이다. 민주노총은 "올해 노동시장 성차별적 고용관행 전반에서 여성노동자 연대투쟁으로 변화를 시도하겠다"고 강조했다.

남성노동자들도 눈에 띄었다. 올해로 3년째 여성노동자대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김성련 공공운수노조 보라매민들레분회 분회장은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여성 동료들이 남성 직원이나 환자한테 성추행을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며 "동료의 아픔에 공감하기 때문에 여성노동자대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녀가 평등한 세상이 됐으면 한다"며 "남성들도 반성할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정리해고와 폐업을 하는 기업도 있고 산입범위 확대로 임금상승 효과까지 없애고 있다"며 "우리 사회에 여성해방이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대회사를 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후 3시에 조기퇴근 시위 한 까닭
"하루 8시간 중 63%만 일하자" 여성 임금차별 고발


이날 오후 3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여성노조와 13개 단체가 참여한 '3시 조기퇴근' 시위가 관심을 모았다. 여성 임금이 남성의 63%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서다. 여성은 하루 8시간 노동시간 중 63%만 일하고 오후 3시에 먼저 퇴근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참가자들은 오후 3시 정각에 맞춰 '3시 스톱(STOP)'이라는 검색어를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리기 위해 총공(특정 단어를 계속 검색하는 행위로 총공격의 준말)을 펼쳤다. 이들은 "3시부터는 무임금이다" "그대로 멈춰라" "15년째 똑같은 임금격차 이제는 바꾸자" 같은 구호를 따라 외쳤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오후 5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35회 한국여성대회를 주최했다.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미투,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슬로건을 내건 행사장에는 2천여명이 참석해 늦은 밤까지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했다.

기념식에서는 지난해 미투운동의 물꼬를 튼 서지현 검사와 전시 성폭력 문제를 국제이슈로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가 나란히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서지현 검사는 "내가 원하는 것은 미투가 번져 나가는 세상이 아니다"며 "미투가 필요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김미영·강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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