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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환섭 화학섬유식품노조 위원장] "네이버 젊은 감각 따라가기 힘들었는데, 대화하며 교집합 만들었다"

기사승인 2019.03.14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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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훈 기자

화학섬유식품노조가 젊어지고 있다. '화학·섬유·식품'이란 전통적 제조업 사업장 노동자들이 모여 있던 노조에 20~30대가 주축이 된 IT업계 노동자들이 대거 가입하면서다.

조합원들의 '젊은 감성'을 따라잡기 위한 신환섭(55·사진) 위원장과 상근자들의 노력은 작은 것에서부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를테면 불과 1년 전만 해도 포스팅에 '좋아요' 하나 못 받고 버려져 있던 페이스북 화섬식품 페이지는 '섬식이'란 친근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밋밋한 집회 영상이나 산하조직 대의원대회 참가 사진 한 장 덜렁 올라오는 대신 감각적인 편집 영상과 글이 포스팅되기 시작했다. 3개월 만에 '섬식이' 팔로워가 1천명으로 늘어났다.

사무실 분위기도 달라졌다. 상근자들은 투쟁조끼 대신 네이버지회의 상징인 초록생 후드 재킷을 하나씩 입고 있다. 집회를 준비할 때도 신선하고 재밌는 방식은 없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얼마 전 3·8 세계여성의 날에는 기존 화섬노조 로고 위에 '합치면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삼각형과 다양성의 상징인 무지개색을 얹은 화사한 무늬의 깃발을 들었다. '왠지 어려운' 노조 문턱을 낮추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조사무실에서 신환섭 위원장을 만났다.

파리바게뜨지회가 쏘아 올린 공
IT 노동자 노조가입 '봇물'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상당 기간 정체기에 머물렀던 화섬식품노조가 상승세를 탄 건 2017년 말 파리바게뜨지회가 생기면서다.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가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은 영향이 컸다. 특히 3천600여개 매장에서 혼자 점주와 일하는 제빵노동자들의 노조설립은 자신들의 팀 외에는 서로를 모르는 환경에서 근무하는 IT업계 노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신 위원장은 "조건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노조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파리바게뜨 사례에서 확인되면서 IT업계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먼저 네이버가 노조를 설립해 화섬식품노조에 가입했다. 뒤이어 넥슨·스마일게이트·카카오에서 노조설립이 잇따랐다. 모두 화섬식품노조 울타리로 들어왔다. 지난해에만 노조 조합원이 7천~8천명 늘어난 배경이다.

투쟁·머리띠·조끼가 일상화된 노동자들과 투쟁이란 단어에도 생경함과 거부감을 느끼는 노동자들의 만남. 어색하진 않았을까.

"처음엔 좀 답답했다. 내 성질대로 안 되니까(웃음)."

신 위원장은 "오랜 시간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고 토론했다"고 말했다. 그들의 의견을 90% 들어주고, 그 의견 속에서 뭔가를 도모하는 방식이어야 했다. 기존 방식대로 노조가 계획을 제시하고 이렇게 저렇게 지도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네이버지회를 예로 들었다. 네이버지회는 "동료들을 직접 만나 노조가입을 설득해야 한다"거나 "구역별 대의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신 위원장의 조언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소통하는 방식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가 틀릴 수도 있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더디더라도 서로의 의견을 배척하지 말고 존중하면서 가 보자'고 했다. 대화를 거듭하다 보니 일치되는 지점들이 나왔다. 그렇게 교집합을 만들어 나갔다. 나도 많이 배웠다."

신 위원장은 "회사와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도 중간 단계를 거쳤다"고 말했다.

"네이버지회가 임금·단체협상 투쟁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투쟁이라는 말이 자신들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회사와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회사를 상대로 투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던 거다. 우리가 아무리 '자본은 똑같다.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싸워야 한다'고 해도, 네이버 친구들은 '우리는 다르다'고 했다. 노조와 지회가 1차적으로 협상을 진행한 셈이다. 이제 네이버지회도 자본의 본질을 보기 시작했다. 교섭을 하면서 상식적이지 않은 회사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 결국 '투쟁을 해야겠다'고 하더라."

회사가 요구한 협정근로자 지정 문제로 임단협이 결렬된 네이버지회는 지난달 20일과 이달 6일 두 차례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네이버 본사 로비에서 중식집회를 했다. 꿀벌인형탈이 등장하고 초록색·빨간색 풍선으로 채워진 집회현장은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네이버지회는 20일에는 저녁시간에 3차 쟁의행위를 한다. 장소는 로비가 아니라 건물 바깥이다. 지회의 첫 장외투쟁인 셈이다.

신 위원장은 뿌듯해했다. 그는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네이버지회 스스로 이 과정을 만들어 가고 있다"며 "밖에서 볼 때는 더디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그게 맞다. 그렇게 (앞으로) 간 만큼 후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제조업 사업장에도 '네이버풍'을 전파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더니 즉답이 나오진 않았다. 신 위원장은 "투박한 제조업 현장은 '그냥 파업하자'고 할 것 같다"며 웃었다.

"노조할 권리 요구하며 단식하는 현실 암담"

노조 산하에 네이버지회처럼 톡톡 튀는 아기자기한 쟁의행위를 하는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극한의 투쟁을 진행 중인 곳도 있다. 코카콜라·씨그램·토레타 같은 브랜드 음료를 만드는 한국음료 노동자들이다. 최영수 한국음료지회장을 포함한 조합원 5명은 지난 6일부터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2010년 LG생활건강 자회사인 코카콜라음료에 인수된 한국음료 노동자들은 지난해 4월 노조를 설립했지만 1년 가까이 교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들어 전임자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와 사무실 제공만을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는 묵묵부답이다.

"대기업 중에서는 LG가 정도경영이라고 해서 사람중심 문화가 있었는데, LG생활건강이 그걸 파기하기 시작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들을 만나면 '한국음료가 1천억원대 정도 매출을 올리고 난 다음에 노조를 해도 늦지 않은 거 아니냐. 지금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한다. 노조는 회사가 정해 주는 규모가 됐을 때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냥 하는 것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 척을 한다. LG생활건강에 자회사들이 많다. 자회사 중 처음으로 생긴 한국음료지회를 인정하면 자회사 노조가 우후죽순 생길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다." 신 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자들이 밥을 굶어 가며 노조할 권리를 외치는 현실이 암담하다"고 토로했다. 노조와 한국음료지회는 14일 LG트윈타워에서 국회의사당까지 삼보일배를 한다.

"5만 조합원 시대 열겠다"

노조의 올해 목표는 5만 조합원 시대를 여는 것이다. 신 위원장은 "신규노조들의 조직률이 50%를 넘지 않는다"며 "지금 만들어진 IT 노조들이 차분하게 내부 조직활동을 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27일 출범한 서울봉제인지회 지원활동도 강화할 계획이다.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을 계기로 봉제노동자들이 결성한 청계피복노조의 활동을 이어 가기 위해 설립된 서울봉제인지회는 노조가 2년 전부터 준비한 사업이다.

신 위원장은 "서울에만 9만명이 넘는 전태일 열사의 후대들이 있는데, 이들은 지하에서 재봉틀 하나 놓고 열악하게 일한다"며 "노조로 묶어 지하에서 지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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