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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적 근로시간제 합의에 대한 비판을 보며

기사승인 2019.03.14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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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지난달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경사노위 노사정 합의’에 대한 찬반 논란이 노동시장에서 여전하다. 특히 대통령이 주재해 의결하려던 경사노위 본위원회가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들이 참석하지 않아 결렬된 이후 보수 학자들과 언론을 중심으로 사회적 대화 무용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미리 정해 놓고 한 거 아닙니까? 사회적 대화가 굳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그냥 국회가 하면 그만이지요?” 어느 방송에 출연한 경제학을 전공한 나름 유명한 노학자의 노기 어린 발언이다. 사회적 대화의 시작과 의미를 알고나 하는 말씀인지 되묻고 싶다. 그의 이력에는 노동의 문제도 사회적 대화에 대해서도 공부한 흔적이 없다. 학자의 양심을 믿지만 공교롭게도 기업 입맛에 맞는 발언이다.

최근 노동계 일각에서 나오는 탄력근로 합의에 대한 비판의 상당 부분이 위와 같은 주장과 함께 어우러져 ‘사회적 대화 무용론’을 강화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바라건대 합의 내용에 대한 치밀한 평가와 분석, 대안 제시는 언제나 환영한다. 그렇지 않고 사회적 대화 자체가 필요 없다는 식의 자본측 주장을 거들어 주는 상황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질문은 단순하다. 경사노위를 폐지하자는 말인가? 노동현장을 아는 이라면 그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에서 모든 노동현안을 다룬다면 결과는 뻔하다. 지난해 최저임금법 개정안 처리 과정을 보지 않았던가. 법을 만든 국회의원조차도 이해하지 못한 법이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야말로 기업과 자본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한 법률이 나오지 않았는가.

탄력근로제 개정에 관한 법률안도 지난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제안 말고는 대부분 야당에서 제출한 것들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늘리고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임금보전책은 ‘강구’에 불과한 내용이다. 완벽한 개악안이다. 한정애 의원 안이 그나마 경사노위 합의정신을 최대한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말 여야 정치권, 그리고 청와대까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합의했다. 합의대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면 그 결과가 어떠할지 알 만하지 않은가.

다행이라고 할까. 지난 본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세 분의 계층별 대표들이 주말에 밝힌 의견에서 경사노위 폐지론까지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적 대화가 온전하게 운영돼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동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참여가 우선 아닌가. 불참도 의사표시의 강력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대화 정신을 존중한다면 참여가 먼저다.

화가 나겠지만, 합의문에 적시된 사실에 벗어나거나 도를 넘는 극단적인 일반화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건강한 비판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한 극단적인 매도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상대방에게 악용되고 있으므로 절대 삼가자.

"합의대로 시행되면 10개월 연속 매주 64시간 노동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보자. 숫자상으로는 10개월까지는 아니더라도 40주 연속 64시간 노동이 가능해 보인다. 나머지 12주는 아예 근로를 하지 않을 경우여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업장을 찾을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예가 아니라면, 그저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산업재해 인정기준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노동은 불가능하다. “아울러, 노사정은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합의 내용이 제도화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는 게 어떨까.

“임금보전 방안에 대한 미신고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정도로는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그렇다. 현행 3개월은 그저 "강구한다"는 표현만 있을 뿐이다. '보전수당'과 '할증'이 들어갔다면 진일보한 것 아닌가. 현행 체불임금 해소방안으로 사후처벌 말고 사전통제는 없지 않은가. “과태료 수준을 강화하는 방안, 할증률을 법정 가산임금 수준 이상으로 정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준다면 어떨까.

“영세·중소 비정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뭔가 허전하다. 조직된 노동이 언제 이들을 위해 전적으로 몸을 던진 적이 있던가. 이들을 위한 ‘근로자대표’ 선출을 민주적으로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이가 있겠는가. 이제는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을 위한 대표권 보장의 바람직한 방안에 대해 토론하자”는 제안이 필요한 때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김형동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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