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하니까 "1천억원대 매출을 올리고 난 다음에 노조하라"는 뜬금없는 얘기를 하는 곳이 있다. LG생활건강이다. LG그룹의 정도경영·인간존중 경영이념은 계열사 손자회사에는 적용되지 않는 걸까.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아흐레째 단식농성 중인 최영수(42·사진) 화섬식품노조 한국음료지회장은 14일 <매일노동뉴스>를 만나 "노조할 시간·장소 달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요구냐"고 반문했다. 한국음료지회는 전임자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노조사무실 제공을 요구하며 이날로 165일째 전면파업을 하고 있다. 지난 6일부터는 LG그룹에 장기파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최 지회장과 네 명의 조합원이 단식농성 중이다.

"임금·복지 올려 줄게" 8년간 공수표만 날린 회사

한국음료는 음료회사 요구에 따라 음료를 만들어 납품하는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업체였다. 최영수 지회장은 2010년 회사가 LG생활건강 자회사인 코카콜라음료에 인수될 때 기대가 컸다고 했다.

"대기업 계열에 들어가서 임금·복지를 안정적으로 받고 어깨 좀 펴고 다닐 줄 알았죠. 회사가 3년 안에 코카콜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 주겠다고 해서, 그 약속만 철석같이 믿고 열심히 일했는데…."

3년은커녕 8년이 넘도록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연장·휴일근무 마다하지 않고 일한 노동자들에게 회사는 공수표만 날렸다. 코카콜라음료에서는 매년 임금과 상여금·휴가비 등이 꾸준히 오른 반면 한국음료는 지난 8년간 임금이 소폭 인상됐을 뿐이다.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어요. 회사에서 맨날 '코카콜라도 상여금 인상 없다. 휴가비도 못 받는다'는 말만 했거든요. 나중에야 격차가 상당하고, 우리를 저임금으로 부려 먹기만 했다는 걸 알게 됐죠."

한국음료와 생산설비·규모가 비슷한 코카콜라 광주공장에서 4명이 하는 작업을 한국음료 공장에서는 2명이 했다. 인력충원을 요구하면 채용 대신 협력업체 직원들을 배치했다.

최 지회장은 2017년 여름부터 노조 설립을 준비했다. 지난해 4월 노조 깃발을 올렸다. 전체 직원 47명 중 인사·총무직 등을 제외한 31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이때부터 회사 감시가 시작됐다. 공장 외곽에 10대 정도 설치돼 있던 CCTV가 70여대로 불어났다. 최 지회장이 일하는 전기사무실 문 앞에도 CCTV가 달렸다. 단순 모니터용이라던 생산라인 CCTV에서는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몰래 녹화되고 있었다. CCTV 모니터가 설치된 경비실에는 지회장 출입이 금지됐다. 관리자들은 조합원들을 만나 "노조하면 다친다"며 탈퇴를 종용했다. 최 지회장과 간부들에게는 '업무 폭탄'이 떨어졌다. 이메일과 카카오톡으로 갑작스런 업무지시가 내려지기 일쑤였다. "노조활동을 전혀 할 수 없게 매일같이 말도 안 되는 업무를 시켰어요."

LG생활건강 자회사에선 노조활동 불가능?
"노조할 권리 포기하지 않겠다"


같은해 5월부터 시작한 교섭도 풀리지 않았다.

"지난해 기준 코카콜라가 상여금 800%, 우리가 300%였어요. 코카콜라처럼 800%를 달라는 게 아니라 200%만 올려 달라, 타임오프와 노조사무실만 제공해 달라고 했는데, 콧방귀도 안 뀌었습니다. 본교섭에 나온 LG생활건강 관계자가 '1천억원대 매출을 올리고 난 다음에 노조하라'고 하더라고요."

지회는 올해 들어 "상여금도 필요 없고, 그냥 노조할 시간·장소만 달라"고 했다. 돌아온 답은 "1시간도 줄 수 없다"였다.

최 지회장은 "한국음료를 본보기로 삼아 'LG생활건강 자회사에서는 노조할 수 없다'는 걸 보여 주려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포기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노조할 권리를 못 찾고 이대로 현장에 복귀하면 괴롭힘만 당하다 제가 지쳐 회사를 그만두게 될 것 같아요.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지만, 끝까지 싸워 반드시 우리 권리를 찾고 당당하게 일터로 돌아갈 겁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