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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안전의식은 아직 진화 중

기사승인 2019.03.21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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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특정 상황에 부닥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심한 공포감을 느낀다. 숲속에서 지나가는 뱀을 볼 때, 인적이 드문 어두운 골목길에서 기척이 느껴질 때가 그렇다. 이런 공포감은 본능적인 것으로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수백 만 년 동안 진화한 것이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심한 공포감을 느껴 잽싸게 도망을 친 우리의 선조들이 살아남아서 우리에게 그렇게 반응하도록 만드는 유전자를 물려준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안전에 관한 가장 원초적인 의식이 아닐까 싶다.

선조들이 물려준 그런 고마운(?)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니 안전에 대해서는 한시름 놔도 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런 유전자가 별 도움이 안 될 때가 많다. 선조들이 과거 수백 만 년 동안 살았던 환경과 지금 우리가 사는 환경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뱀에 물려 죽으면 신문 기삿감이지만 교통사고로는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 4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죽는다. 우리는 평소 거의 볼 일이 없는 뱀에 대한 공포감은 여전히 심한 반면,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자동차는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수많은 위험에 우리가 즉각적으로 반응하기에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진화의 속도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그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노동자들이 수년간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다 보면 그곳이 너무 익숙하게 느껴지지만, 인간 진화 측면에서 보면 사실 매우 생소하고 위험한 곳이다. 그래서 수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고 병에 걸리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위험요인도 있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위험요인도 많다. 매년 수십 개의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고 수천 개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만들어진다. 위험이 밝혀지는 속도보다 위험이 증가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

최소한 이미 알려진 위험요인이라도 잘 알아야 한다.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게다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한 번 배웠다고 다 기억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여러 번 반복해서 배워야 한다. 당연히 교육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교육으로 위험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위험한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혹은 안전에 관한 조치를 충분히 취한 이후에 작업할 수 있도록 강력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선조들로부터 뛰어난 학습능력을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사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안전에 관한 제도도 사람들이 겪었던 수많은 참사로부터 학습한 결과다. 물론 이런 학습이 단번에 이뤄지지는 않는다. 영유아 검진을 하다 보면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을 쓰지 않거나, 차를 탈 때 유아용 카시트에 앉지 않는 아이들이 아직도 많다. 헬멧과 카시트가 실제로 안전상 중요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안전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을 해 주면 다행히 대부분의 보호자가 수긍한다. 그래도 ‘뭐, 그런 것까지…’ 하는 표정을 짓는 보호자들에게는 세월호 얘기를 해 주는데, 그러면 백 퍼센트 고개를 끄덕인다.

또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의 원초적인 안전의식과 우리가 사는 복잡한 현대 사회 사이의 부조화를 제도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안전벨트를 옵션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1990년대부터 안전벨트 미착용에 대한 강력한 단속이 이뤄지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었고, 제도는 보조석 의무착용에 이어 몇 년 전부터는 전 좌석 의무 착용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실제 교통사고 사망자는 1991년 1만3천429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져 지난해에는 3천781명으로 4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차량과 교통량이 훨씬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저하게 감소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일하다 죽는 노동자들은 줄지 않는 것일까.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뛰어난 학습능력이 왜 유독 노동자들이 일하는 작업장에서는 통하지 않을까. 얼마나 더 많은 세월호가 침몰해야, 얼마나 더 많은 김용균이 죽어야 우리는 배울 수 있을까.

김정수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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