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대통령과 집권여당 그리고 소위 개혁진영에 속한다는 지식인들이 친일식민잔재 청산에 나섰다. 대통령이 3·1절 기념행사에서 이야기한 데다, 최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반민특위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불이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경기도의회에서는 전범기업 제품에 딱지를 붙이는 조례를 추진 중이다. 노동계는 전국 곳곳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세우는 운동을 하고 있다.

최근 친일식민잔재 청산 흐름은 올해가 3·1 운동 100주년인 까닭도 있겠지만, 범개혁세력이 반보수 전선을 재정비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보수파는 친일이고, 친일청산은 자유한국당 해체라는 등식은 개혁진영이 오랫동안 사용한 진영논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개혁 성향 사람들이 나경원 원내대표를 ‘토착왜구’라고 조롱하는 글을 남기는 것도 이런 진영논리의 효과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친일청산 흐름이 노동자·서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일까? 필자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 현재의 친일 소동은 범민주당 세력의 정치적 동원전략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허구적인 쟁점이다. 친일식민잔재 문제를 한국 자본주의 성장사로 한번 살펴보겠다.

한국 자본주의는 일본 제국주의에서 이식됐다. 조선 후기에 가내수공업이나 상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선의 지배적 경제체제는 토지와 노비를 핵심 자산으로 삼는 봉건제였다. 생산양식으로서 자본주의는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본축적과 자유로운 노동력 판매를 핵심으로 한다. 그런데 이는 봉건제 붕괴와 부르주아 계급투쟁으로 건설되는 것이지, 인간사회의 자연사적 진화 과정이 아니다. 조선이 자연스레 자본주의로 발전했을 것으로 가정할 수 없다. 조선은 일제 침탈로 봉건제가 붕괴했고, 식민지 형태로 자본주의가 발전했다. 식민지 자본주의의 특징은 자본 착취에 제국 수탈이 더해진다는 점이다. 생산력 발전에도 이런 초과착취로 민중 생활 개선은 매우 더뎠다.

대통령을 비롯해 개혁진영이 관용구로 쓰는 친일식민잔재 청산은 암묵적으로 조선의 독립적 발전이 식민지보다 나았을 것이라고 전제한다.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역사적 가정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자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태어난다. 자본주의에 평화로운 시작은 없다. 영국 자본주의 탄생은 농민 수탈과 아동 노동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미국 자본주의 시작은 아프리카 노예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더군다나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을 생각해 보면 당시 세계정세에서 조선의 고고한 경제발전이란 여러모로 불가능했다. 즉 친일식민잔재란 20세기 한국 자본주의 시작점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근본적 의미의 친일식민잔재 청산은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한국 자본주의에서 지배세력 역할을 한 모두가 포함되는 문제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선배 정치인들이 얼마나 덜 조선총독부와 협력했는지는 부차적 문제다.

해방 이후 친일 부역자 처벌이 없었던 문제도 살펴보자. 개혁진영이 이 문제의 상징으로 삼는 것은 박정희의 한일협정(한일기본조약)이다. 당시 조약에 영향을 받은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문제가 지금까지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군다나 박근혜와 양승태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소송에 부당하게 개입해 친일과 보수의 연결성이 더 선정적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그런데 1960년대 한국 상황을 보면 과연 한일협정을 친일문제로 단순화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1950년대 말 한국은 미국 원조가 줄어 파탄 상태에 이르렀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한 후에도 절대적 자본 부족과 경제제도 미비 속에서 경제위기가 계속됐다. 당시 미국은 후진국에 소비재 원조를 줄이며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지원기준을 마련했다. 동시에 미국은 자신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중심적 역할을 하도록 주문하며, 냉전동맹 강화와 경제개발이란 양 측면에서 한국이 일본과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도록 강하게 요구했다. 요컨대 한국이 “스스로 돕는 자”가 되려면 일본에게 돈을 받아 경제 재건 토대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일협정은 박정희의 친일 행적이 아니라 미국의 냉전전략과 한국의 경제발전이 핵심 변수였다고 봐야 한다. 민주당 장면 정부가 그대로 유지됐더라도 이런 조건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한국이 미국의 냉전전략에서 이탈해 독자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이는 역사에 대한 망상일 뿐이다. 아시아에서 경제성장에 성공한 국가들(일본·한국·대만)은 미국의 반공냉전 전략에 충실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게 피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따라서 한일협정으로부터 파생한 여러 피해자 문제는 친일 또는 70년 전 일본의 책임으로 묻기보다 한국 스스로가 성장의 비극으로써 해결할 문제다.

친일이 논란이지만, 사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민중의 삶에 치명적 영향을 끼친 것은 친일보다 친미다. 오늘날 한국 경제가 헬조선 경제로 불리는 이유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 때문인데, 이는 친일이 아니라 친미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바로 외환위기 이후 미국의 금융세계화에 투항한 민주당 정권의 친미 말이다.

'IMF 플러스'를 시행한 김대중 정부와 그 연장선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 노무현 정부는 5개 자동차기업 중 3개를 해외기업에 넘겼다. 자본시장을 미국 금융기관 손아귀에 쥐여 줬다. 한국의 급진적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를 두고 클린턴 미국 대통령마저 한국 노동자를 걱정했다는 일화도 있다.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신자유주의를 민주당 정치인들이 한국에 이식했다. 이들의 행태가 오늘날 우리에겐 더 매판적 사건으로 기억돼야 한다.

민주당과 그들을 따르는 지식인들은 친일문제를 앞세워 다시 반보수 진영을 구축하려고 애쓴다.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는 민주당의 역사적 매판행위를 친일식민잔재라는 허상으로 가리는 것에 불과하다. 친일식민잔재 청산은 식민지 시절 이식된 자본주의 그 자체의 문제로 봐야 하며, 오늘날 민중의 삶을 옥죄는 것은 친일 잔재보다 민주당 집권하에서 이식된 미국 금융세계화 잔재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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