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한국노총
"난감하네요. 주한미군은 우리더러 이달 27일까지 군부대 통행증을 반납하고 나가라고만 해요. 계속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알려 주지 않아요. 당장 급한 대로 실업급여를 알아보고 있어요. 여기서 쫓겨나면 이 불경기에 다른 회사 취직이나 할 수 있을런지…."

경남 김해 주한미공군기지에서 전기시설 관리업무를 하는 정철호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올해로 17년째 주한미공군기지에서 시설관리 노동자로 일했다. 그런데 한 달 전 난데없이 3월27일자로 '계약종료' 통보를 받았다. 그는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생겼다"고 말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방위비 분담금 갈등, 한국인 노동자 생존권 위협

21일 외기노련에 따르면 김해·오산 등 5개 주한미공군기지에서 시설관리업무를 하는 노동자 170명이 3월28일부터 실직될 위기에 처했다. 연맹은 "한국과 미국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늦어지면서 애꿎은 노동자만 피해를 보게 됐다"며 "방위비 분담금을 통해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주한미군이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위비 분담금을 재원으로 운영하는 주한미공군 시설관리업무는 2007년께부터 공개입찰을 통해 선정된 한국 기업들이 맡고 있다. 2013년 주한미군 계약처(USFCCK)는 ㈜한화63시티와 5년을 계약기간으로 하는 하도급계약을 맺었다.

정철호씨를 비롯한 170명의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이전 용역업체에서 한화63시티로 고용승계됐다. 이들은 근로기간을 5년으로 하는 고용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9월 계약기간이 종료되자 주한미군측은 계약기간을 6개월 연장하고 이 기간에 입찰을 통해 새로운 용역업체를 선정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진짜 사용자 주한미군이 직접고용해야”

문제는 올해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어느 때보다 힘들게 진행됐다는 점이다.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이 분담하는 몫으로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와 각종 미군기지 내 건설비용, 군수 지원비 등으로 사용된다. 미국 정부가 거액의 부담금을 요구하면서 분담금 협상은 해를 넘겨 진행됐고, 이달 8일에서야 양국 정부는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 서명했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지난해보다 8.2% 오른 1조389억원이나 된다. 이번 협정 유효기간은 1년으로, 기존 5년에서 대폭 줄었다.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정은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밟아야 효력이 발생한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협정 비준동의안 공청회를 다음달 4일 열기로 했다.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4월5일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주한미군사령부는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이 다음달 중순까지 발효되지 않으면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수 없어 무급휴직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주한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는 1만2천여명으로, 사업 수익금으로 임금을 받는 3천여명을 제외한 대다수가 분담금 협상 결과에 영향을 받는다.

다음달 협정이 발효된다 하더라도 주한미공군기지 시설관리업무는 입찰 공고부터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용역노동자들이 고용승계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용역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으면 20년 가까이 일해 온 직장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연맹은 “이들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진짜 사용자인 주한미군이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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