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오전 빈곤노인기초연금보장연대가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규탄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에서 청와대 분수대 앞까지 행진 시위를 했다.<강예슬 기자>
"모든 노인이 기초연금 혜택을 보는 것처럼 선전하더니 차라리 주지를 말지. 기초생활수급자는 생계급여만 받으며 살다가 죽으라는 것이냐?"

서울 동작구에 산다는 김명호(73)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이자 기초연금 수령자다. 4월 소득 하위 20% 노인은 현행보다 5만원 오른 30만원의 기초연금을 받지만 그는 혜택을 볼 수 없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기초연금이 공제된 생계급여를 받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난한 노인들이 더 가난해지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노년유니온과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21개 단체로 구성된 빈곤노인기초연금보장연대가 25일 오전 "줬다 뺏는 기초연금 바꿔라"고 요구하며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에서 청와대 분수대 앞까지 행진했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이면서 소득인정액 기준 하위 70%에게 월 25만원씩 지급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고령자도 다른 소득 하위 70%처럼 기초연금을 신청해서 받을 수 있지만 받은 만큼 생계급여에서 차감된다.

"생계급여, 숨만 쉬고 살아도 부족"

생계급여액은 생계급여 선정기준(1인 가구 51만2천102원, 2인 가구 87만1천958원)에서 가구 소득인정액을 차감해 지급한다. 1인 가구로 소득인정액이 10만원이라면 생계급여액은 41만2천102원이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파지를 주워 추가 소득이 생기면 생계급여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은 "일을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일한 낙은 담배를 태우는 일입니다. 하루에 두 갑 넘게 핍니다. 혼자서 TV를 틀어 놓고 있다 보면 담배를 태우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습니다. 외식은 꿈도 꿔 본 적 없어요. 과일도 먹기 어렵습니다. 가끔 주전부리가 생각날 때는 동묘 앞 시장에 나가 한 봉지에 1천500원하는 건빵을 사다 먹어요. 일을 하고 싶어도 생계급여에서 공제될 것을 생각하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김명호씨의 하소연이다. 그는 "생계급여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영구임대아파트에 살아 월세가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월세를 지불하지 않아도 그가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35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아파트관리비·교통비·통신비로 15만원 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담뱃값으로 한 달 25만원이 들어간다.

빈곤문제는 비단 김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금천구 독산동에 사는 이점식(73)씨는 "명절에 찾아올 가족도 없고 용돈을 줄 자식도 없다"며 "숨만 쉬고 살아도 돈이 드니 답답하다"고 한탄했다. 이씨는 "쌀은 정부 지원으로 해결하지만 반찬은 일일이 마련해야 한다"며 "지금 소득으로는 먹고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하라"

빈곤노인기초연금연대는 "기초생활 수급 노인들은 모두 1분위 계층에 속한다"며 "아무리 기초연금이 올라도 이들의 가처분소득은 그대로이기에 소득 격차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년유니온 조합원이라는 이정예씨는 "기초생활수급 문제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대통령의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시행령은 "기초연금을 소득인정액에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기초연금도 장애수당이나 아동수당처럼 소득인정액에서 제외하라는 뜻이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박종혁(90)씨도 이날 행진에 참여했다. 박씨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을 하려면 최소 80만원이 있어야 한다"며 "포용국가라고 선전하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40만~50만명의 노인들의 생활을 돌보지 않는 정부는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빈곤노인기초연금연대와 기초생활보장 대상 노인 99명은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 기본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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