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컹컹컹."

개 짖는 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깨웠다. 구불구불 좁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간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산밑에집' 식당 주차장. 짙은 어둠 때문에 산인지 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환경미화원 김경환(가명)씨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김씨가 대형 쓰레기봉투 두 개를 품에 안고 나타났다. 컴컴한 새벽 3시, 그가 의지할 것은 달빛뿐이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2일 남양주시 민간위탁 환경미화원들 곁에서 새벽 거리청소에 나섰다. 애초 목표는 환경미화원의 위험한 노동을 체험하며 몸으로 느끼는 것이었지만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계획이 바뀌었다. 경험이 없는 기자가 도로를 달리는 청소차에 매달려 일하기에는 노동환경이 너무 아찔했다. 이번 취재를 함께한 임선기 민주연합노조 남양주지부장도 허락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취재차량으로 청소차를 쫓아가기로 했다.

▲ 정기훈 기자

남양주 A산업 소속 환경미화원들의 공식 출근시간은 새벽 2시다. 출근시간 30분 전부터 사무실은 환하게 밝았다. 쓰레기 수거에 앞서 차량을 정비하고 업무준비를 하느라 다들 일찍 출근한다. 새벽 2시가 가까워지자 컨테이너박스를 개조해 만든 사무실이 분주해졌다. 믹스커피는 원샷. 3월 중순이 지났는데도 비 내린 직후라 바람이 매서웠다.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며 꽃샘추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가 귓가를 맴돌았다. 두꺼운 패딩점퍼를 다시 꺼내 입었다.

20년 베테랑 환경미화원 이기환(가명)씨가 청소차 운전대를 잡았다. 건장한 체격의 젊은 환경미화원 김성민(가명)씨는 작업원(상차원)으로 차량 뒤 발판에 올랐다. 와부읍 일대를 돌며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수거하는 업무가 시작됐다.

청소차 뒤를 쫓아 취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작업속도가 워낙 빨라서 눈으로 쫓기에도 벅찼다. 청소차가 잠깐 정차했다. 뒤에 매달려 있던 김씨가 순식간에 내려 이곳저곳에 흩어진 쓰레기봉투를 모아 청소차에 실었다. 허겁지겁 뒤따라가 차를 세우고 내리려는데, 김씨가 청소차에 매달려 사라져 버렸다. 내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다시 차를 탔다.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진 청소차를 찾아 난데없는 달밤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 정기훈 기자

무게 가늠하기 어려운 쓰레기봉투
손가락은 꺾이고 허리는 뒤틀리고


이씨와 김씨를 태운 청소차는 쓰레기봉투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가다 서다, 전진 후진을 반복하며 달렸다. 인적이 드문 도로에서는 살짝 역주행도 했다.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서는 자주 멈췄다. 큰길이 나타나면 시속 50킬로미터 속도로 내달렸다. 청소차 끝에 매달린 김씨를 지탱하는 것은 두 팔과 두 다리뿐이었다. 김씨를 지켜 주는 안전장비는 빛을 반사하는 야광조끼와 쓰레기에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코팅장갑 한 짝이 전부였다.

환경미화원 채용시험은 특수부대 군인테스트 저리 가라다. 웬만한 몸으로는 환경미화원 체력검정시험을 통과하기 힘들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보통 남성은 30킬로그램 모래 자루를 메고 50미터를 7.5초 안에 돌파해야 한다. 또 4분 이상 30킬로그램짜리 모래 자루를 메고 서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강철체력을 요구한다.

환경미화원 노동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종량제 봉투는 크기에 따라 규격화돼 있지만 무게 제한이 없다. 규격봉투 없이 버려지는 재활용 쓰레기도 무게를 가늠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 정기훈 기자

동이 트기 전에 일을 마쳐야 하는 김씨는 50리터 쓰레기봉투를 한 번에 서너 개씩 들어서 옮겼다. 용량이 적은 10~20리터 봉투는 양손에 두세 개씩 들고 옆구리에 끼고 이동했다. 손가락을 사용해 무거운 쓰레기를 옮기다 보니 환경미화원들은 엄지와 검지가 뒤틀리고 꺾이는 근골격계질환을 자주 겪는다. 오래 일할수록 손가락 기형이 심해진다. 환경미화원들은 손가락 모양만 봐도 경력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무거운 쓰레기를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는 탓에 어깨와 허리 그리고 팔꿈치에 통증을 달고 산다. 청소차 뒤에 매달리는 작업원은 뛰어내리는 동작까지 더해져 무릎이 쉽게 상한다.

내상도 심각했다. 올해로 25년째 환경미화업무를 한다는 임선기 지부장은 “일을 하기 전에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달리면서 몸을 숙이고 펴는 동작을 반복해서일까. 환경미화원들은 역류성 식도염을 흔히 앓는다.

▲ 정기훈 기자

물 안 나오는 샤워실, 굳게 잠긴 탈의실
작업복 세탁은 집에서


환경부는 재활용품과 음식물·폐기물을 구분해 쓰레기를 배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환경미화원들이 다루는 쓰레기봉투에는 그들 말로 '사람' 빼고 다 들어간다. 임선기 지부장은 "요즘 꽃게철이 시작돼 두렵다"고 말했다. 날카로운 유리보다 양념이 된 꽃게 껍질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한 번 베이면 상처가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환경미화원들은 전염병이나 미생물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위생 문제가 그 어떤 사업장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남양주 환경미화원들에게는 작업 후 더러워진 손을 씻을 곳조차 없다.

"저기 간이화장실 옆에 있는 컨테이너 보이죠? 저기가 샤워실이에요. 근데 물이 안 나와. 샤워실이라고 만든 지 꽤 오래됐는데 사용한 기억은 없네요. 물이 나와야 씻지. 보일러도 있는데 고장난 지 오래됐어요."

임선기 지부장의 말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79조2(세척시설)는 환경미화업무나 음식물쓰레기, 폐기물·재활용품 선별·처리업무 등에 해당하면 노동자가 접근하기 쉬운 장소에 세면·목욕시설, 탈의 및 세탁시설을 설치하고 필요한 용품을 갖추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런 시설이 없으면 지자체에서 환경미화업무를 수탁받을 수 없다. 지부 관계자는 "민간업체가 최소한의 모양만 갖춘 것"이라고 귀띔했다.

일하면서 온갖 오물이 묻은 작업복을 갈아입을 곳도 없다. '탈의실'이라는 컨테이너는 굳게 잠겨 있었다.

"작업복은 집에서 갈아입어요. 빨래도 제가 합니다. 다른 식구들 옷과 같이 빨 수는 없잖아요. 매일 빨아서 갈아입어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나죠."

▲ 정기훈 기자

환경부에서 지자체로, 또 민간업체로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지침' 있으나 마나


쓰레기 수거차량 적재용량은 4톤 정도다. 골목길을 두 시간가량 돌다 보면 어느새 쓰레기차가 가득 찬다. 새벽 4시 무렵이 되자 작업을 나갔던 환경미화원들이 하나둘 차고지로 모여들었다.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며 피로에 찌든 몸을 녹이고 새벽 추위를 달랜다. 이씨와 김씨는 수거한 쓰레기를 경기도 구리 자원회수시설(쓰레기소각장)로 실어 나른 후 다시 골목길을 돌아야 한다. 쓰레기차가 가득 차면 쓰레기소각장에 갖다 버린 후 청소차를 깨끗이 닦으면 하루 업무가 끝난다.

남양주시 인구는 67만명, 하루 300톤의 쓰레기가 쏟아진다. 100여명의 환경미화원들이 하룻밤에 3톤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셈이다. 환경미화원들은 토요일에도 격주로 출근하며 쓰레기를 치운다. 남양주시는 쓰레기 처리를 민간에 위탁하면서 지난해까지 ‘1톤당 단가’를 매기는 방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톤당 단가를 매기는 방식은 비인간적이다. 최대한 적은 인력을 투입해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수거하느냐에 따라 이윤이 결정되는 방식이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노동자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린다. 남양주시에서만 지금까지 3명의 환경미화원이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차량에 매달려 일하다 현수막에 걸려 떨어지거나, 재활용 쓰레기 수거차량에서 떨어진 박스를 줍다가 다른 차량에 부딪혔다.

▲ 정기훈 기자

광주 서구와 강원도 정선군에서 보급 중인 한국형 청소차량만 있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저상형으로 만들어진 한국형 청소차량은 환경미화원들이 달리는 차량에 매달려 일하지 않도록 작업원 탑승공간을 별도로 두고 있다. 한 대당 1억3천만원 정도로 기존 차량보다 3천만원 비싸다. 이런 이유로 남양주는 물론이고 경기도에서도 ‘한국형 청소차량’은 단 한 대도 찾아볼 수 없다.

임선기 지부장은 “쓰레기 수거업무는 반드시 필요한 공공서비스인 만큼 지자체가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자체가 직접고용하는 것만으로도 사고는 크게 줄어든다.

민간위탁업체 노동자들은 노동안전 사각지대에 몰려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환경미화원 1천822명이 일하다 다치거나 숨졌다. 이 중 사망사고가 18건이다. 지자체 직영은 2건이었지만 민간위탁은 16건으로 8배나 많았다.

 환경미화 노동자들에게 이달 6일 희소식이 전해졌다. 환경부가 1년 넘게 준비한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지침이 드디어 발표됐다. 핵심 내용은 환경미화원 안전을 위해 작업시간대를 야간·새벽에서 낮 시간대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2011년 주간작업으로 전환한 경기도 의왕에서 환경미화원 산업재해 사고율이 43%나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낮에 일하는 환경미화원이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환경미화원 근무시간 결정을 지방자치단체에 일임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지침에 "주간시간대 설정은 작업현장 여건을 고려해 노사협의나 주민 의견수렴을 거쳐 지자체 청소계획으로 결정하라"고 명시했다.

김인수 민주연합노조 조직국장은 "지자체가 환경미화원 근무시간대를 지금처럼 야간으로 정할 때 언제 한 번이라도 노사협의나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 적이 있었냐"고 반문한 뒤 "지침에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환경미화원 주간근무가 현실화하려면 임금보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남양주시 환경미화원은 월평균 350만원의 임금을 받는다. 야간근무에 따른 50% 가산수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남양주시는 주간근무로 전환하면 1인당 월평균 80만~100만원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임금보전 없이 주간근무로 전환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환경미화원들은 "차라리 일을 그만두는 게 낫다"고 입을 모은다.

환경부가 지침을 내렸지만 지자체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남양주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환경미화원이 야간근무를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며 "임금저하 문제부터 환경미화원 본인이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고 지자체 입장에서는 시민들이 아침에 출근할 때 밤새 쓰레기가 치워져 있는 것이 좋은데 주간근무로 전환하면 이런 효과가 사라지는 점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환경미화원 안전이 우선"이라면서도 "야간근무에 비해 주간근무가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라도 있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그런 연구 결과는 없다. 전국 지자체에 직영과 민간위탁으로 일하는 환경미화원이 4만3천명에 이르는데도 작업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찾기 어렵다. 환경미화가 사회 구성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내놓은 작업안전 지침은 2017년과 지난해 환경미화 노동자들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사회적 공분이 일자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이다. 지난 1년간 환경미화원 안전대책 소관부처가 환경부냐, 고용노동부냐, 행정안전부냐를 놓고 오락가락할 정도로 정부가 손을 놓고 있던 분야였다. 국회도 팔짱만 끼고 있었다. 환경미화원 안전장비 품목·기준과 실태조사를 의무화한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은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지침은 법적 구속력을 갖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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