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민주노총이 4일 대의원대회에서 조합원수 100만명을 넘어섰다고 보고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016년 말 기준 73만명에서 2018년 말에는 95만명으로, 그리고 3개월여 만에 5만여명이 증가해서 100만명이 됐다. 한국노총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0만명이 넘어섰다고 보도된 바 있으니, 대한민국 양대 노총이 모두 100만 조합원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017년 기준으로 10%에 불과했던 이 나라 노조 조직률이 문재인 정부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니 ‘노동존중 사회’ 실현 공약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어쨌거나 노조 조직화 측면에선 축하할 일임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대기업에 편중돼 있어 조직화되지 못한 노동자들의 여건 개선을 위한 단결권 행사에는 한계가 있고”,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파행을 거듭하는 등 꽉 막혀 있는 노동 관련 현안들 해법찾기도 몸집 커진 양대 노총의 과제”라고 보도하고 있으나, 노조운동을 비판할 때면 하는 상투적인 말이라서 조합원 100만 시대의 이 나라 노동운동에 있어 한계와 과제를 올바로 말한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조합원 100만명을 넘어선 오늘, 상투적인 축하인사 말고 어디까지 나아온 것인지 그 한계와 과제를 살펴봐야 할 일이다.

2. 노조운동 말고는 특별히 노동운동이라 할 만한 게 없는 나라에서 노조 조합원수 100만명 돌파 자체가 하나의 성과라고 여길 만하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조직해서 활동하는 단체이므로, 무엇보다 조합원수가 단순히 조직의 규모뿐만 아니라 사용자를 상대로 하는 교섭과 쟁의 등 활동의 범위와 힘을 결정한다. 한마디로 조합원수를 떠나서 노조로서 조직과 투쟁을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민주노총·한국노총을 가리지 않고 조직화, 즉 조합원수를 늘리기 위한 사업에 주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노조 조직화사업만으로, 노조 조직률만으로 한 나라의 노동운동을 평가할 수는 없다. 노조운동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나아가는 노동자운동이다. 결국 우리 노동운동도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얼마나 쟁취한 것인지를 두고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굳이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갈라서 보자면, 임금·근로시간·해고 등 노동자 권리에 관한 것과 단결해 교섭과 파업 등 쟁의로 활동할 노동자의 자유에 관한 것으로 나눠 볼 수 있겠다. 이 나라 전체 노동자의 권리 수준은 근로기준법 등 노동자 보호법을 통해 정해지는데, 재직자 조건·일정 근무일수 조건 상여금 등 임금을 제외하고 있는 통상임금법리, 근로시간 제한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법정 근로시간제(1일 8시간, 1주 40시간), 노동자대표를 통한 통제 없는 해고와 인사이동 등 우리 노동자의 권리 수준은 내세울 것이 없다. 그런데 노동자의 권리 수준으로는 한 나라 노동운동을 제대로 말할 수가 없다. 근대 이후 노동운동을 탄압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례가 많았다. 많은 나라에서 권력은 노동자 보호입법을 통해 노동운동의 전진을 막아 왔다.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권력은 노동자의 열악한 부분을 개선하는 걸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 그렇기에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시기에도 근로기준법 등 노동자 권리를 위한 노동법이 마련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의 권리가 아니라 노동자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하느냐로 살펴봐야 한다. 노동자 스스로 단결해서 교섭과 투쟁을 할 수 있는 자유로 한 나라의 노동운동을 봐야 한다. 이 대한민국에서 노동운동의 성과는 이러한 노동자의 자유를 얼마나 쟁취했는지로 봐야 한다.

3. 자유는 거창하지 않다. 뭔가 대단하게 해 줘야 할 것이 아니다. 국가권력이 거창하게 법을 만들어서 보장해 줘야만 자유가 아니다. 그저 아무 짓도 하지 않으면 자유다. 권력이 아무 짓도 하지 않으면 인민은 자유인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권력으로 들여다보자면, 지배자 권력과 피지배자 인민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겠는데, 세계사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인간의 역사였다. 인간은 이 세상에 자유로이 태어났다는 근대 시민의 인권선언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 천부인권의 자유를 선언하고서 비로소 인간은 이 세상에 새로이 태어날 수 있었다.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대단하게 뭔가를 보장해 주지 않을 뿐인 그야말로 권력이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그것을 선언하고서 인간은 근대 시민이 될 수 있었다.

노동자에게 자유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 노동자가 단결해서 교섭과 파업 등 활동하는 것이 국가가 뭔가 대단하게 보장해 줘야 비로소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아무 짓도 하지 않으면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것이다. 법으로 국가가 하지 마라고 하지 않았으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헌법에 노동자 기본권으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해 놓고서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 법률로 노동자의 자유를 제한하고 금지했다. 이 나라에서는 노동자들이 단순히 단결해서 파업, 즉 일하지 않는 것도 불법과 범죄로 규정해 자유를 부정당했다. 솔직히 말해 보자. 노동자가 파업한다는 것, 그건 노동자들이 단순히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걸 불법이고 범죄로 이 나라에서는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 한 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기껏해야 결근일 뿐이지 불법이고 범죄로 처단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열 사람이 하면 불법이고 범죄라고 이 나라의 법은 선언하고서 권력은 집행하고 있다. 자본주의 초기인 18세기 말 19세기 초 단결금지법제하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교섭과 파업 등 행동하는 걸 규제했던 법제가 아무렇지 않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노동자 자유를 빼앗고 있는 것이다. 1953년 3월8일 제정된 이래 노동자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은 계속해서 규제 대상을 확대하고 규제 수위를 높여 왔다. 제·개정될 때마다 그랬다. 그래서 가장 규제 대상이 많고 규제 수위가 높은 것이 바로 현행 노조법이다. 그러니 노동자 자유로 이 나라 노동운동을 평가한다면 성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조합원이 100만이라도 실패했다고 나는 말하겠다.

4. 오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을 둘러싸고 경사노위 등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결사의 자유에 관한 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관한 98호, 강제노동 협약인 29호,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105호 등 ILO 핵심협약이 비준된다면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교섭과 파업 등 활동할 자유를 더는 빼앗을 수 없게 된다. 단결해서 활동할 자유가 우리 노동자의 자유로 보장된다. 오늘까지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자 자유를 쟁취하는 데서는 언제나 실패했다.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고 노동자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의 제·개정사는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이제 100만의 이 나라 노동운동은 노동자 자유를 쟁취했노라고 기억될 것인가. 100만 조합원 선언은 단순히 조합원수에 의미를 두고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건 이 나라 노동운동의 성취로 선언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노동자 자유조차도 보장되지 아니한 채 하는 선언이라면 숫자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다. 노동의 역사를 돌아보면 노동자의 자유는 노사정 협의로 오지 않았다. 자유를 위한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으로 왔다. 이 나라에서 아직 노동자의 자유가 없다면, 그건 아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방 후 대한민국헌법에서 노동자 자유를 노동기본권으로 선언했음에도 그것이 법률로 제한·금지돼 이 나라 노동현장에서 보장되지 않았다. 그건 결국 노동운동이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자유는 저절로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것이라고 선언되지 않았다. 권력에 맞선 투쟁으로 쟁취하고서 자유는 비로소 천부인권일 수 있었다. 물론 그 자유가 오늘 이 세상에서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서 시민·일반 국민의 자유처럼 보장돼야 한다고,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도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했던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촛불시민혁명 계승자로 자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기대하는 것만으로는, 경사노위에서의 공익위원·전문위원 등의 다수안을 살피는 것만으로는, 이 나라에서 우리 노동자에게 자유가 보장될 것이라고 나는 여전히 기대하지 않는다. 오직 노동자 스스로 자유를 위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쟁취한 자유만이 온전히 자신의 자유일 수 있다. 조합원 100만 시대, 노동운동은 실패를 넘어서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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