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김용균씨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지난 3일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출범 회의를 열고, 현장점검을 했다. 고인과 함께 일했던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소속 비정규 노동자가 조사위원의 요청에 따라 평상시 작업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발견 당시 머리는 이곳, 상체는 여기, 하체는 저기에 있었습니다."(한국서부발전 관계자)

"하체가 기계 아래 공간에서 발견된 건가요? 이렇게 좁은 곳에 몸을 다 집어넣고 일한다는 겁니까?"(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 A씨)

"원래는 그 아래에서 일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김용균씨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발전기술과의 계약서에도 그리 명시돼 있습니다."(한국서부발전 관계자)

"아니, 지금 개인 과실 때문에 죽었다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특별조사위 위원 B씨)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김용균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된 현장에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위원들과 한국서부발전 관계자가 승강이를 벌였다.

특별조사위 '김용균 현장' 조사, 언론사에 최초 공개

특별조사위 위원 요청으로 김씨와 같이 일했던 동료 조아무개씨가 평소 업무를 재현했다. 김용균씨가 머리를 넣고 일한 곳에 그의 동료가 주저앉았다. "이렇게 머리와 상체를 기계 아래에 넣고 문제가 있는지 소리를 듣고 봅니다." 조씨는 컨베이어벨트가 가동 중일 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동력전달체 몇 센티미터 옆에 자신의 귀를 들이댔다.

특별조사위는 지난 3일 오후 충남 태안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출범회의를 한 뒤 현장조사를 했다. 지난해 12월11일 새벽 김용균씨 사망사고 이후 처음으로 현장이 언론에 공개됐다.

▲ 사고 지점 설비 바닥에 탄가루가 쌓여 있다. 누군가의 손바닥 모양이 거기 남았다. <정기훈 기자>

화력발전소는 외부에 보관 중인 석탄을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해 발전소로 옮기고, 석탄으로 보일러·터빈을 가동한 뒤 남은 석탄재를 처리하는 공정으로 이뤄져 있다. 발전장비가 고장 나면 수리를 한다. 남은 석탄재를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연료·환경설비, 발전장비를 수리하는 업무를 경상정비라고 부른다. 태안 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은 연료·환경설비와 경상정비를 외주화했다.

김용균씨는 연료·환경설비를 맡은 서부발전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소속 계약직 노동자였다. 옥내저탄장에 있던 석탄을 발전소 9·10호기로 보내는 컨베이어벨트 환승장 격인 석탄이송탑에서 일했다. 높이가 40미터가 넘는데도 엘리베이터가 없다. 일하러 가려면 계단을 이용하거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옆 이송탑에 오른 뒤 허공에 가설한 철제다리를 건너야 한다.

작업중지로 가동이 중단되기 전 이송탑 안은 분진과 소음으로 가득했다. 야간에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김용균씨는 이곳에서 컨베이어벨트에 이물질이 끼지 않고 잘 작동하는지, 떨어진 석탄이 발화했는지 점검했다. 사고 발생 후 그의 동료들은 "내가 김용균"이라고 외치며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을 요구했다. 2인1조가 아닌 혼자 근무하는 노동환경에서 자신들에게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사고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원청 관계자 "원래 해서는 안 되는 일 하다가"
현장 노동자 "작업 매뉴얼대로 한 것"


사고 현장을 설명하던 원청 서부발전 관계자는 "문제가 발생하면 보고하고, 원청은 용역계약을 맺은 수리업체에 연락해 수리를 하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며 "지난해 연말에는 이 시스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의 동료 조아무개씨가 재현한 업무를 보고는 "저렇게 일하지 못하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특별조사위 위원들은 "설비를 직접 점검하는 일을 하지 않고 보고만 해도 되는데 김용균씨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는 거냐"며 "한국발전기술 업무 매뉴얼에는 기계이상이 없는지 먼저 소리를 듣고, 다음 눈으로 확인하라고 돼 있다"고 반박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위원들은 현장을 떠났다. 혼자 남은 관리자에게 원청이 만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하청 노동자들이 몸을 기계 아래에 집어넣으면서까지 일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관리자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도 좀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 대형 설비 안쪽은 대체로 어두웠다. 바닥은 미끄러웠다. 곳곳에 물기가 고여 있었다. 청소의 흔적이라고 회사 관계자가 말했다. <정기훈 기자>

발전소 곳곳이 위험해 보였다. 특별조사위 위원들은 이송탑뿐만 아니라 탈황시설·회처리시설·옥내저장소 등 석탄취급설비를 두루 돌아봤다. 해당 장소들은 컨베이어벨트로 연결돼 가동된다. 각 현장을 방문한 특별조사위 위원들은 같은 질문을 먼저 던졌다. "여기는 어떤 업체가 운영하나요?"

석탄이 타고 남은 재 속의 황을 제거하는 탈황시설을 찾았다. 석회를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는 안전장치 없이 외부에 노출돼 있었다. 시설가동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더니 갑자기 장치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위원들을 안내하던 회사 관계자가 당황한 듯 서둘러 현장을 폐쇄했다.

탈황시설 높이는 60미터 정도다. 장비를 든 노동자들은 하루에 네댓 번 계단을 오르내리며 시설을 점검한다. 노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안전설비를 설치하는 탓에 되레 위험해진 작업환경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기계를 점검하러 올라가서 일할 곳에 지지대를 설치했는데, 정작 계단은 만들지 않은 것이다.

현장을 안내한 발전노조 한전산업개발지부 관계자는 "회사가 지지대를 설치하며 작업할 곳을 오히려 막아 버렸고 점검할 곳을 살피기가 힘들어졌다"며 "지지대 옆에 서서 일하다 미끄러지면 컨베이어벨트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게 돼 있다"고 우려했다.

▲ 중앙 제어실에 무고장 운전일수를 알리는 전광판이 붙어 있다. “무고장 운전은 우리의 약속”이라는 구호가 발전소 곳곳 전광판에 나왔다. <정기훈 기자>

태안 화력발전소 내에는 '협력길'이 있다. 협력길을 두고 수많은 협력업체들이 상주하거나 일을 하기 때문에 붙여진 공식 도로명이다.

김지형 위원장은 이날 첫 회의에서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실수가 있더라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겹겹이 안전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법·제도가 있어야 한다"며 "안전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안전비용 지불문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보건 예방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조한 표현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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