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생각을 참 많이 했는데 앞이 깜깜해져 버렸습니다. 제가 어쩌다 세월호 유가족이 돼 이렇게 마이크를 잡고 있는지. 그 자체가 너무 서러운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 피해자 이시연양 어머니 윤경희씨가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어 갔다. 그의 말은 이따금씩 끊겼고 그때마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윤씨는 영화 <생일>을 보는 내내 흐르는 눈물을 지우는 데 쓰였을 손수건을 꼭 쥐고 있었다. 영화에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가족들 이야기가 담겼다.

지난 5일 저녁 서울 용산의 한 영화관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각종 재난·산재 피해 가족들이 모였다. 생명안전 시민넷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은 가족들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길 바라며 <생일> 상영회를 마련했다.

"세월호 유가족의 삶이 곧 내 삶이다"

영화 <생일>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 '수호(윤찬영)'를 잃은 뒤 아들의 부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순남(전도연)'과 내색하지는 않지만 아들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정일(설경구)'이 아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가 상영되는 120분 동안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쳤다.

재난·산재 피해 유가족은 영화가 끝난 뒤 자신이 겪은 아픔을 하나둘 꺼내 보였다.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며칠만 더 있으면 4월21일인데 이날이 우리 유미 생일"이라며 "영화는 세월호 참사를 다루고 있었지만 꼭 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 황씨는 "영화 속 수호의 엄마처럼 유미 엄마도 우울증에 걸려 유미만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생일>을 두 번째 관람한다는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유가족 전재국씨는 "다시 봐도 눈물이 난다"며 "극 중 수호의 동생 예솔이가 오빠를 잃은 뒤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그는 "저도 참사가 있은 뒤 지하철을 타기까지 4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며 "사고가 발생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하철을 타지 못하는 가족도 있다"고 고백했다.

아들을 떠나보낸 지 4개월.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무겁고 참담했다"며 "영화를 너무 몰입해 봐서 지금도 많이 힘든 상태"라고 했다. 발언을 하던 중 허공을 바라보던 김씨는 "저는 사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아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그것 하나만 생각하며 버티고 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유가족이라고 울어야만 하는 것은 아냐"

4월16일. 영화 속 세월호 유가족들은 납골당을 찾아 점심을 함께한다. 이들은 슬픔을 떨치려 농담을 던지고 애써 웃어 보이지만 '수호' 엄마는 "지금 소풍 왔냐"고 가족들에게 일갈한다. 전재영씨는 이 장면을 언급하며 "재난참사 유가족은 계속 슬퍼하는 게 맞을까요. 웃는 게 맞을까요"라고 관객에게 물었다. 전씨는 "저는 둘 다 맞다고 생각한다"며 "본인이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 게 맞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한숨 지었다.

2011년 춘천에 봉사활동 갔던 딸을 산사태로 잃은 최영도씨는 "누구든 재난참사를 당할 수 있지만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은 다양하다"면서도 "(유가족이)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쳐 싸우고 진상을 규명해 사후대책을 마련한다면 더 많이 아픔을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윤경희씨는 "5년이 지났지만 세월호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이제 시작하는 거라고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윤씨는 "그게 잘되겠죠?"라며 객석을 쳐다봤다. 관객들은 "잘될 거예요"라고 말한 뒤 박수를 보내며 윤씨를 응원했다.

이날 상영회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 춘천봉사활동 산사태 사고 피해자, 제주 현장실습생 고 이민호군 유가족 등 16개 재난·산재 피해 유가족과 당사자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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