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집행위원회 통상담당 집행위원(오른쪽 첫번째)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무역위원회 회의에 앞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면담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한국 정부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요구하고 있는 유럽연합(EU)측이 무역분쟁 해결절차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패널 회부 가능성을 재차 경고했다. 시한을 못 박지는 않았지만 한국 정부가 가진 시간은 길지 않아 보인다.

“여름 이전에 비준할 수 있나?”

한국 정부와 EU 집행위는 9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8차 무역위원회를 개최했다. 무역위원회는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이행과 관련한 문제를 다루는 회의다. EU 집행위는 지난달 한국 정부에 공문을 보내 이날 회의까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의 증거를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EU 집행위의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회의 전후에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준비 상황을 확인했다. 무역위원회 회의에서도 조속한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했다.

말름스트룀 집행위원은 회의 뒤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정부가 ILO 핵심협약 4개를 비준하지 않는 것에 오랜 시간 우려를 표명해 왔고 명확한 절차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무역분쟁 해결절차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패널 회부 여부에 대해서는 “따로 시한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이 조속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국회를 찾아 환경노동위원장과 얘기하고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를 찾은 말름스트룀 집행위원은 김학용 환노위원장에게 “여름 이전에 비준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김 위원장은 “확언할 수 없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의 부정적인 답변이 EU 집행위 결정에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한국 정부 EU 설득할 명분 있나

EU측은 이번에 한국을 방문해 확인한 핵심협약 비준 추진상황을 감안해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곧바로 전문가패널 소집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마냥 시간을 주지는 않을 전망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제도개선을 논의하는 노사정 협상은 지난 8일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마무리된 상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이주 안에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논의종료를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EU 집행위가 김학용 환노위원장에게 들은 것처럼 국회에서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통과할 가능성이 크지도 않다. 한국 정부가 EU측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나 카드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이재갑 장관은 이날 오전 말름스트룀 집행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지원하는 등 협약 비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유럽연합이 한국 정부의 핵심협약 비준 노력에 신뢰와 지지를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

“전문가패널 권고 구속력 있어”

전문가패널 소집은 한국 정부와 EU측 어느 한 쪽이 신청하면 된다. 신청이 있으면 2개월 내에 전문가패널을 꾸려야 하고, 그로부터 3개월 안에 전문가패널 권고안이 나온다. 한국경총을 포함해 재계는 “전문가패널의 권고는 권고일 뿐”이라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말름스트룀 집행위원은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중요한 것은 제재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서 신뢰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문가패널의 권고는 각국에 구속력이 있고 해당 국가는 평판을 크게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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