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자동차보험 가입자의 사고조사를 하는 김정희(48·가명)씨. 요즘 그가 한 달간 일해 버는 수입은 150만원 정도다. 2017년 12월보다 수입이 절반을 훌쩍 넘게 줄었다. 그는 2010년 3월 무렵 삼성화재가 자동차보험 사고 발생시 대물보상 처리를 위해 설립한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에 입사했다.

회사는 자동차사고 증가로 현장출동 인력 수요가 증가하자 2009년부터 정규직이 하던 일을 '특화인력'에게 맡기기로 했다. 경력·자격증 등을 감안해 지역별 서류전형을 한 뒤 대표이사가 포함된 경영진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자를 선발했다. 2009년부터 그렇게 300여명을 채용했다. 회사는 그들을 ‘에이전트’라 불렀다. 입사 후 김정희씨는 한 달 평균 450만원에서 5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여기에서 차량유지비·휴대전화 요금·4대 보험료 등을 냈지만 적어도 300만원 이상은 집에 가져갔다.

반토막 난 월급에 퇴직자 급증, 그사이 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0일 김씨는 <매일노동뉴스>에 “에이전트들이 퇴직금 소송에서 나서자 회사가 업무우선배정제도를 폐지해 동료들이 엄청난 수입 감소로 힘겨워하고 있다”며 “노조활동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에이전트들을 도태시키려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법원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제공"=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에이전트들에게는 기본급이 없다. 건당 수수료로 먹고산다. 주간 수수료는 건당 2만3천원, 야간 수수료는 건당 4만원이다. 수수료는 10년째 그대로다. 회사는 자동차 보험사고가 콜센터에 접수되면 조사원 휴대전화 단말기에 설치된 애플리케이션(스마트애니카 시스템)을 통해 행정구역별로 업무를 배정한다. 이를 '콜'이라고 한다. 업무는 세 가지 채널로 할당된다. 에이전트·보험설계사·삼성화재 협력업체 정비공장 직원이 세 가지 채널이다. 삼성화재측은 조사업무에 특화된 인력을 뽑은 만큼 그동안 에이전트들에게 업무배정 우선권을 부여했다. 사고가 접수되면 관제실에 해당 지역 조사원들의 목록이 뜨는데, 에이전트가 ‘활동 중’으로 표시될 때만 보험설계사나 협력업체에 일을 주는 식이었다. 그런데 2018년 1월 갑자기 업무우선배정제도가 사라졌다.

노동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퇴직 직원들이 낸 퇴직금 소송 때문으로 본다.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에서 2011년 4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에이전트로 활동한 이아무개씨 등 6명은 2017년 7월 서울중앙지법에 회사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회사가 이씨 등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퇴직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8월 에이전트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피고는 사고출동 가이드북과 카카오톡 메신저 등을 통해 원고들이 수행할 업무내용을 정하고 수시로 지휘·감독을 했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불이익이 가해질 수 있다고 고지했으며 실제 시정을 요구한 사정이 있다”며 “이를 종합하면 원고들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씨 등에게 8천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회사는 항소했다.

◇업무배제 논란에 인원도 반토막=정창연 사무연대노조 삼성화재애니카지부 사무국장은 “회사가 퇴사 에이전트들이 소송에 나서자 9년간 운영하던 제도를 돌연 중단한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노동자성 인정 문제가 시끄러워지기 전에 에이전트들을 현장에서 퇴출시키기 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무우선배정제도 폐지 여파는 컸다. 김씨의 한 달 콜수는 130개에서 70개가량으로 줄었다. 급여는 급전직하했다. 한때 300명에 달했던 에이전트는 현재 절반으로 줄었다.

지부는 “지난해 5월 인천 연수구쪽에서 에이전트 1명과 정비공장 조사원 4명이 한 곳에 휴대전화기를 모아 두고 시험해 봤다”며 “10개의 콜이 왔는데 4명의 조사원에게 번갈아 콜이 들어온 반면 에이전트에게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부는 "에이전트 퇴사를 유도하기 위해 회사가 개인 사업자가 되면 콜을 받는 회선을 늘려 주겠다고 회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부는 지난해 말 서울중앙지법에 회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1일 업무우선배정제도 회복,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한다.

회사 관계자는 “보다 빠른 출동을 요구하는 고객들 의사에 따라 과거 에이전트들에게 우선순위를 배정한 것을 근거리 기준으로 변경한 것일 뿐 현재 진행되는 소송과 상관없다”며 “건당 수수료도 타사에 비해 높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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