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한국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은 얼마일까? 라면과 김밥이 아니라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생활에 불편이 없을 만큼의 주거환경이어야 하며, 돈이 없어 병원 진료를 망설이지 않아도 되며, 경조사가 부담스러워 인간관계를 끊지 않아도 되는 임금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것으로 되는가. 적어도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으로 한 달에 영화는 몇 번 볼 수 있는지, 책은 몇 권 살 수 있는지, 취미활동을 하는지,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하는 임금’의 수준은 그 사회가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여 주는 척도다.

헌법 32조1항에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해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돼 있다. ‘적정임금’이 노동자의 권리이며,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임을 명시한 것이다. “사회적·경제적 방식으로” 보장하라고 하는 것은 적정임금 보장을 기업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적정임금’은 모든 노동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기업의 지불능력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최저임금을 지불하기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정부가 나서서 그것이 보장되도록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적정임금’을 사회적으로 논의해 본 바가 없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공익위원들이 사실상 임금인상 구간을 정해 놓고 그 안에서 결정할 뿐 ‘생활이 가능한 임금 수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기초생활보장법)상 최저생계비도 “국민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규정됐지만 중위소득의 60%로 일방 결정한다.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기업의 지불능력’과 ‘경제상황’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요란하지만,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이 얼마가 돼야 적정한지를 논의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2017년 대선에서 “최저임금 1만원”을 모든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건 것은 적어도 최저임금이 1만원은 돼야, 즉 적어도 월 200만원의 임금을 받아야 최소한 인간다운 삶이 유지된다는 사회적 기준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8년 최저임금이 16.4% 인상된 후 보수언론과 기업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최저임금 현실화는 좌절됐다. 정부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없앴고, 2019년 최저임금 10.9% 인상으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은 불가능해졌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겠다면서, 최저임금위원회를 최저임금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최저임금이 ‘권리’라는 사실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권리’는 예외 없이 누구나 보장받는 ‘보편성’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장애인 노동자를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하는 것도 모자라 이주노동자도 제외하자고 한다. 이렇게 적용제외를 확대하면 최저임금의 보편성은 금방 훼손돼 적용제외는 늘어날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외친다. 기업의 지불능력에 따라, 지역에 따라, 업종에 따라 차등적용을 하자는 것인데 어떤 지역이나 어떤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최저임금을 받아야 할 권리에서 차별을 당해야 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자유한국당은 다만 어떻게 해서든 최저임금을 낮추고 무력화할 구실을 찾는 것이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밖에 되지 않는 나라다. 비정규직이거나,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거나, 여성이거나, 연령이 낮거나 높을 때, 노동자들은 권리로부터 쉽게 배제되고 노조를 만들기도 어렵다. 그것이 지금의 양극화(빈곤화)를 만들었다. 제도가 최저선을 정확하게 받치고 있지 않으면, 권리가 없는 노동자들은 권리를 더 빼앗기게 된다. 탄력근로시간제도 노조 없는 노동자들을 겨냥해 무임금 장시간 노동을 합리화해 주는데, 이제는 최저임금에서도 차별하고 배제하자고 한다. 헌법상 국가의 책무인 최저임금을 기업의 지불능력이나 노동자의 특성에 근거해 차별하겠다는 발상은 이 사회를 ‘약자지옥’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이제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권리로서 적정임금’을 사회적으로 논의하면서 ‘노동자 권리’를 중심으로 사회를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 아닌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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