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먼저 결론부터 쓴다. 4월16일, 그러니까 내일,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식은 두 곳에서 열린다. 안산은 오후 3시 화랑유원지 3주차장에서 추모식을 한다. 단원구청 길 건너에 있다. 인천은 오전 11시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서 추모식을 개최한다. 부평 가족공원 안에 있다. 안산과 인천 추모식에 많은 노동자·시민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글을 빨리 써야 하는데,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해서 한참을 허비했다. 5년, 5년, 5년…. 계속해서 5년이라는 숫자에 사로잡혀 있었다. 5년, 5년, 5년이나 됐고, 정권도 바뀌었고…. 이런 맙소사.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니. 그러고서도 세상이 이렇게 태연하다니. 대한민국의 후진성은 도대체 어디까지 추락하려고 이리도 한가하단 말인가.

배가 뒤집혀 가라앉았고 304명이 죽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전쟁에 이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온 국민이 동일한 심적 고통을 겪은 두 번째 사건이었다. 이 사회와 국민은 당연히 알아야 한다. 왜 배가 뒤집히고 가라앉았는지, 왜 승객 구조를 방치했는지, 왜 선원들을 먼저 탈출시켰는지, 왜 그 선원들을 유치장으로 끌고 가지 않고 해경 집과 모텔에 머물게 했는지, 왜 세월호 CCTV 기록 일부가 사라졌는지, 도대체 왜, 왜, 왜, 기필코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에 묻고 싶다. 그 어떤 진실도 밝혀진 것 없이 시간만 하염없이 흐르고 있다. 자식 잃고 손주 잃고 부모 잃고 형제자매 잃은 가족들 마음이 어떨 것 같은가. 간혹 보이는 그들의 웃음이 웃음일 것 같은가.

어쩌다 보니 지난 5년 동안 세월호 참사 가족들 곁에 있었다. 차도 운전면허도 없는 처지라서 숱하게 안산행 지하철 4호선에 몸을 실었다. 그날들을 돌이켜 본다. 살아오면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는 터라 웬만해서는 눈썹도 꿈쩍이지 않는 독종인데, 겉으로는 늘 씩씩한 척했는데, 실제로는 쉽지 않은 나날이었다. 겨우 그이들 옆에 있는 것뿐이었는데도 심신이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은 날도 있었다. 깊은숨 토해 낸 적도 많았다. 도망치고 싶은 날도 있었다. 안산을 다녀온 날은 혼자서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죽은 자식들에 대한 그이들의 애끓는 그리움과 슬픔, 세상에 대한 그이들의 분노, 진실 규명과 생명안전공원을 향한 그이들의 절박한 소망 등이 너무 간절해서, 그런데도 세상이 너무 답답해서, 내가 내 자신을 감당할 수 없었던 거였다.

그이들은 참사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끈을 놓을 수 없다. 304인의 죽음이 그이들에게 내린 숙명이다. 그것은 그이들만의 숙명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명이다. 참사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없이 사회는 진전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가 달라질 수 있는 시금석이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그래야 이후로는 세월호 참사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

5년이라는 시간은 개인의 기억에서 매우 긴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슬픔도, 분노도, 약속도 무뎌질 대로 무뎌질 만큼의 시간이다. 국민 개개인의 뇌리에서 세월호 참사 기억이 엷어지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무척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운동이다. 인간 개개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운동이다. 노동운동·시민운동·풀뿌리운동·여성운동·장애인운동·성소수자운동·환경운동·사회연대경제운동·청년운동·통일운동·농민운동·빈민운동·청소년운동…. 운동 앞에 그 어떤 이름을 붙이든 그것은 동일하다.

전태일 떠난 지 49년, 광주항쟁 발생한 지 39년, 참 긴 시간이 흘렀지만 운동들은 잊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 운동들이 나서서 전태일의 꿈을 붙들고 있고, 광주항쟁의 진실을 찾아 나가고 있지 않은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운동들은 잊거나 포기하면 안 된다.

운동의 시간에서 5년은 참으로 짧은 시간이다. 겨우, 그렇다, 이제 겨우 5년이 흘렀다. 세월호 참사의 죽음들 앞에서, 또 절규하는 가족들 앞에서 했던 약속과 목표가 무뎌지려고 해도 무뎌질 수 없는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5주기 추모식에는 LA ‘내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을 비롯해 해외 여러 곳에서도 참석한다. 대구와 광주 등 전국 곳곳에서 함께한다. 많은 이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서로 힘을 북돋우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모든 운동들이 서로 격려하며 더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하자. 다시 대열을 가다듬고 진상규명을 향해 나아가자.

오늘은 세월호 참사로부터 1천826일째 되는 날이다. 내일, 5주기는 1천827일째다.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로부터의 날짜를 지면에 담고 있는 매일노동뉴스에 경의를 표한다.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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