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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 줄 수 있어 행복하다"

기사승인 2019.04.15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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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훈 기자

해고 12년 만에 복직한 KTX 승무원, 9년 만에 전원 복직을 이끌어 낸 쌍용차 해고노동자, 굴뚝농성 426일 만에 사측과 극적 타결을 이룬 파인텍 노동자…. 당사자들의 지치지 않은 투쟁이 결실을 맺게 한 원동력이었지만 숨은 조력자들도 많다. 양한웅(59·사진)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양한웅 집행위원장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오체투지·108배 정진과 법회·삼천배로 지원했고 긴 투쟁으로 지쳐 가는 노동자들 곁을 지켰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사회노동위원회 사무실에서 양한웅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양한웅 집행위원장은 경상남도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 1980년 그의 나이 스물한 살, 그는 승려의 길을 꿈꿨다. 광주시민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 가던 때였다. 당시 불교계에서는 구도에 집중하는 성철스님이 추앙받고 있었다. 양 집행위원장은 성철스님 같은 승려가 돼 독재정권 등 불의에 맞서길 바랐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승려가 아닌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일한다. 승려를 꿈꾸던 청년이 사회활동가가 되는 사이 그의 이력은 무슨 사연을 담고 있을까.

한국통신계약직노조 517일 투쟁
힘 못 돼 평생 부끄러움으로 남아


- 처음 노동운동을 시작한 배경이 궁금하다.
"1986년 결혼하면서 출가승의 꿈을 접었다. 생계를 위해 한국통신에 입사했다. 학생운동 출신도 아니었고 회사 안에 노동조합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한데 같은 회사 내에서 차별받는 현장 노동자들의 일상을 보게 됐다. 맨홀에 들어가고 전봇대에 올라가고 위험을 감수하며 힘겹게 일하는 현장 노동자들이 사무직 노동자보다 좋지 못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들의 사무실에는 에어컨도 없고, 씻을 곳도 없었다. 무엇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부처님 정신을 실현하고자 불교공부를 했던 것인데 열악한 노동조건에 눈감는 것은 부처님 정신에 맞지 않다고 여겼다. 노조에 가입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KTX 승무원이나 고 김용균씨 같은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높아 보인다. 이유가 있나.
"부끄러운 기억 때문이다. 한국통신에는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한국통신계약직노조가 있었다. 2001년부터 계약직 노동자들은 한국통신의 구조조정에 맞서 517일 동안 싸웠다. 당시 나는 공공연맹(현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투쟁에 많은 지원을 하지 못했다. 정규직으로 구성된 한국통신노조는 비정규직 노조에 배타적이었다. 결국 8천여명의 비정규 노동자가 회사를 떠났다. 그때의 부끄러움을 잊기 힘들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평생 하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가 단일노조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만이 모두가 살 길이라고 생각한다."

- '플랫폼 노동'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확산하고 있다. 어떻게 대비하고 보완해야 할까.
"플랫폼 노동의 경우 정규직화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게 시급하다. 플랫폼 노동자는 갈수록 많아질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를 활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사람·자본이 분명 존재한다. 이들이 사용자의 책임을 명백히 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이라고 본다. 특수고용 노동자 성격을 띤 플랫폼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를 주는 ILO 핵심협약 비준이 이뤄진다면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고 본다."

- 지난해 KTX 승무원들이 12년 만에 복직했다. 소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정말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다. 최종 교섭장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전에 사장이 제시한 교섭안을 먼저 봤다. 복직 내용이 담긴 교섭안을 보니 '이게 정말 가능하구나. 하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고생했던 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 비정규 노동운동의 성과는 무엇이라 보는가.
"많은 이들이 비정규 노동 문제를 '자신의 문제', 나아가 '자신 가족'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 것이 큰 소득이다. 대다수 중년 남성들은 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정년퇴직을 한다. 이들이 다시 노동시장에 뛰어들면 비정규 노동자가 된다. 이들의 자녀들도 비정규 노동자로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제는 국민 대다수가 비정규 노동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게 됐다.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정부와 자본이 비정규직 문제가 터질 때마다 사회적 쟁점이 될까 두려워하고 소극적이나마 계속 바꾸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오체투지·삼천배로 내부 공감대 이끌어 내

- 2012년 조계종 노동위원회(사회노동위원회 전신) 설립을 주도했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가 계기가 돼 조계종 내에서 노동위원회 설립 움직임이 생겨났다. 나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노동위원회라는 공식기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노동과 불교 둘 모두에 이해가 깊은 사람이 필요했다. 조계종이 쌍용차 사태로 숨진 이들을 위해 연 추모제에서 사회를 봤던 나를 적임자로 선정했다."

- 사회노동위원회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불교계에 노동운동이 왜 필요한지를 납득시켜 나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투쟁도 불교적인 방법을 택해야 했다. 스님이 다른 노동운동 단체처럼 머리띠를 두르고 발언하는 방식으로 집회를 했다면 불교계 내부 분위기를 우호적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을 것이다. 오체투지·삼천배 등 불교적 방식으로 노동운동을 했기 때문에 내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이런 투쟁방식이 사회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 2016년에는 노동문제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노동위원회를 사회노동위원회로 개편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노동자뿐 아니라 더 많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기 위한 개편이었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차별을 받는 약자다. 진보적인 박원순 서울시장마저도 2014년 성소수자의 차별금지를 담은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를 포기했다. 당시 성소수자 인권단체들과 농성을 함께하며 그들의 절규·외침·간절한 마음을 들었다. 성소수자 문제만큼은 사회노동위원회가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현재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도 함께하고 있다. 다른 종교에 비해 불교는 성소수자 문제에서 자유롭다. 모든 사람은 과거 업보대로 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노동운동부터 사회운동까지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나.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텐데.
"1991년 해고를 당한 뒤 해고노동자로 생활했을 때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시 옥탑방에서 혼자 생활을 했다. 고립감이 심했다. 복직이 될 전망도 보이지 않았다. 가족과 주변 지인들도 운동을 그만두라고 만류했다.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주변 동지들의 눈빛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잘 참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노동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강예슬 yeah@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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