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노조활동은 사측의 업무방해, 건조물침입에 따른 고소·고발과 출입금지 및 명예훼손금지 가처분, 손해배상 청구 등으로 이미 상당 부분 침해받고 있습니다. 절차를 밟은 정당한 노조활동인 쟁의행위까지 사업장 내에서 금지당한다면 노조는 사업장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15일 오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제도개선 방향에 대한 공익위원안을 내놓으며 “공익위원 전원의 의견이 일치할 정도로 균형 있고 합리적인 내용”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현장노동자들 평가는 달랐다.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 공익위원안 발표 직후 국회에서 열린 ‘비정규직 현장노동자가 말하는 노동개악’ 증언대회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노동존중이 아니라 노동말살을 획책하는 것”이라며 “정당한 노조활동은 이미 충분히 침해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증언대회는 비정규직 이제그만·1천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과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주최했다.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노동권 차단에 악용될 것”

이날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가 내놓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공익위원안에는 단결권 확보와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관련 제도개선 방안이 담겼다. 해고자·실업자·공무원·교원의 노조가입과 활동, 노조 설립신고 제도 등에서 개선조치가 제시됐다. 그러나 재계가 요구해 온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현행 2년→3년)와 직장점거 규제가 담기면서 노조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장노동자들은 “사용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은 미미한 데다 정당한 노조활동마저 침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의 팔다리를 묶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며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서재유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코레일네트웍스지부장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확대하면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차단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 자명하다”며 “2015년 매표·안내·주차장 관리 등의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지만 회사가 내세운 노조가 교섭권을 가지고 단체협약을 맺었기 때문에 3년 동안 노동조건을 바꿀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용노조를 앞세워 단체교섭권을 빼앗고 창구단일화를 통해 회사 마음대로 교섭대상을 확장·축소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면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은 실현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윤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 조직부장은 “병원과 하청업체는 병원로비나 행사장 앞에서 피켓팅·구호·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수건의 고소·고발을 했다”며 “이미 정당한 노조활동이 상당 부분 침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장 내 쟁의행위까지 금지한다면 노조는 사실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부당노동행위에는 재생 불가능할 정도의 처벌 필요”

공익위원안에는 소수의견으로 제시되긴 했지만 ‘대체고용의 포괄적 금지규정은 삭제하되 파견노동자에 의한 대체고용금지 제도를 유지’하는 것과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조항 등 노동관계법상 처벌규정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 일고 있다. 김윤수 조직부장은 “2016년 136명의 청소노동자가 민주노총에 가입하자 하청업체 현장소장은 노조탈퇴를 회유·협박하고 병원은 업무일지를 통해 노조대응 등을 각 업체에 전달했다”며 “2017년 9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고발했지만 1년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검찰에 송치조차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사용자에 대해서는 재생 불가능할 정도의 처벌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명혜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사무국장은 재계가 요구한 파업시 대체근로 전면허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지 사무국장은 “SK브로드밴드에서 인터넷 설치·유지·보수업무를 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2017년 자회사인 홈앤서비스로 고용됐다”며 “2014년 노조결성 직후와 지난해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SK브로드밴드는 새로운 외주업체와 파업 대체업무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대체인력을 투입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원청에 의한 대체인력 투입은 불법이 아니라는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을 기반으로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무력화됐다”며 “파업권이 무력화된 노조가 과연 사용자를 압박할 수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증언대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불법파견 사용자 처벌·노조할 권리 보장·원청의 공동사용자 책임·죽지 않고 일할 권리 등 문재인 정부의 노동공약들은 단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는 다음달 11일 서울에서 대규모 집결투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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