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재계 요구인 '사용자 대항권'을 일부 반영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 입장이 국제기준에 미달한다는 비난이 거세다. 경사노위는 운영위원회를 열어 노사정 고위급 타결을 시도할 계획이지만 노동계는 "ILO 핵심협약 취지에 맞지 않는 공익위원 의견을 놓고 고위급 타결을 시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재계 요구를 구색 맞추기 식으로 붙인 공익위원 입장이 노동계를 중심으로 한 "ILO 핵심협약 선 비준 요구"에 기름을 부은 모양새다.

민주노총 "정부 선 비준 절차 착수해야"

민주노총은 16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 공익위원들은 최소한 ILO 협약 취지에 맞는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며 "이번 공익위원안을 마지막으로 정부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즉각 비준안을 만들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에 송부하라"고 촉구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공익위원안에 대해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344차 보고서에서 단협 유효기간에 3년간 법령상 제한을 부과하는 것은 결사의자유에 대한 상당한 제한이라고 밝혔다"며 "국제노동기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말했다. 그는 "ILO는 직장점거를 쟁의행위의 정당한 수단 중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며 "공익위원안대로 사업장 직장점거를 입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파업권에 대한 과잉침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경사노위를 방패 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비준안을 마련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비준안을 국회에 송부하면 된다는 뜻이다. 김경자 수석부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비준안을 송부한 뒤) ILO 100주년 총회에서 연설하기를 바란다"며 "국회가 비준안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정부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류미경 국제국장은 "유럽연합(EU)의 무역분쟁 절차 개시뿐만 아니라 2017년 10월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 권고한 사회권 규약 이행실태 점검 마감시한이 곧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권고한 내용에는 ILO 87호와 98호 협약 비준이 포함돼 있다. 한국 정부는 권고를 받은 지 18개월 안에 핵심협약을 비준했는지, 비준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유엔 사회권위에 보고해야 한다. 보고시한은 18일로 알려져 있다. 민주노총은 "대통령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협약 비준을 의결하고 국회 동의 절차를 거치는 선 비준 절차에 조속히 착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정애 의원 노조법 개정안
노동계 "ILO 기준 부합 안 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이날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경사노위 공익위원 권고안 취지를 담아 발의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ILO 결사의자유 원칙에 부합하는지와 관련해 ILO 국제노동기준국에서 회신받은 답변을 공개했다.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이 사업장에 출입할 때는 목적·시기·장소·인원을 사용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은 노조 임원이나 대의원으로 선출할 수 없다.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정하거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서 교섭대표노조를 결정할 때 사업 또는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은 조합원수 산정에서 제외한다. 초기업노조 활동에 제한을 두는 내용들이다.

ILO는 "노조활동에 관해 지나치게 세부적인 요건을 법에 명시하는 것은 교섭의 자율성이라는 본질에 대한 과도한 개입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밝혔다. ILO는 또 "조합원이나 노조간부 자격조건은 노조 규약으로 재량에 따라 결정할 사안"이라고 지적했고, 타임오프나 노조 전임자임금 지급 문제는 "노사 간 협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ILO 국제노동기준국 회신을 통해) 타임오프 법적 규제를 비롯해 특수고용직 노조결성권과 사업장 출입제한 등 여러 측면에서 한정애 의원 발의안이나 공익위원안은 ILO 기본협약에 배치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ILO 기본협약에 충실한 입법이 이뤄지려면 문제가 되는 조항을 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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