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풍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저소득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이는 임금격차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임금격차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금격차 완화 방안을 고민해 보기 위해 역으로 임금격차가 없는 사회는 어떤 상태일지 상상해 보고자 한다.

먼저 국민총소득을 취업자 전체에게 똑같이 분배한다고 상상해 보자. 단 생산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고정자본형성에 지출된 소득)은 제외하자. 한국은행 '국민계정'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이용해 계산해 보면 전일제근무(주 36시간 이상) 취업자 기준 1인당 소득은 5천200만원이다.

임금노동자 소득을 이렇게 평준화하면 전체 노동자 연평균 임금은 1천600만원(46%) 인상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통계청의 '2017년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으로 보면 임금소득 상위 10% 노동자의 경우 평균 4천700만원 삭감된다. 상위 20% 노동자는 평균 700만원 삭감된다. 나머지 80%의 임금은 최소 200만원부터 최대 4천600만원까지 오른다.

임금격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격차를 없애는 상상도 해 보자.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민간 대기업 평균임금은 488만원이고, 중소기업은 223만원이다. 임금격차를 없앤다면 중소기업(자영업자 제외)의 1천100만 노동자의 임금이 평균 265만원 인상된다. 총액으로 350조원이 필요하다. 국민계정에 측정되는 민간 기업이윤 전체를 임금으로 지급하면 가능하다.

이런 경우 경제성장을 위해 기업이 새롭게 투자할 자금을 마련할 수 없다. 기업들은 소모된 고정자본 복구에 필요한 자금 외에도 한 해 180조원 내외를 고정자본을 늘리기 위해 투자한다. 그런데 기업들은 이윤 모두를 임금으로 지급했다. 투자금 전체를 가계에서 차입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기업들에게 새로 투자할 만큼의 이윤은 보장해 줘야 한다. 이 경우 월 임금 400만원에서 평준화가 가능하다. 대기업 노동자는 88만원(-22%)이 삭감되고, 중소기업 노동자는 177만원(80%)이 인상된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평준화는 어떨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 월평균 임금은 320만원이다. 정부 알리오 공시에 따르면 공공기관 월평균 임금은 560만원이다. 민간기업 전체가 공무원 평균으로 따라가려면 평균임금 기준으로 40만원(14%) 인상이 필요하다. 공공기관을 따라가려면 280만원(100%)이 올라야 한다. 공무원 평균으로 갈 경우 민간기업에서 이윤의 35% 정도를 임금인상에 지출해야 한다. 민간기업이 투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물론 공공기관 평균을 따라잡는 것은 민간기업 이윤 전부를 임금으로 지급해도 불가능하다.

지금까지는 임금만 가지고 분배를 상상해 봤지만, 사실 이런 임금격차는 고용주 지불능력을 결정하는 생산성 격차가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에서 자본 간 생산성 격차 평준화도 상상해 볼 수 있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대기업 대비 노동생산성은 30% 수준이다. OECD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다른 나라들은 보통 60~80% 수준이다. 서비스업의 제조업 대비 노동생산성은 40% 수준으로 OECD 평균(80%)에 한참 떨어진다. 이런 노동생산성 격차가 다른 나라보다 큰 한국의 임금격차를 상당 부분 설명해 준다. 그렇다면 왜 노동생산성 격차가 큰 걸까. 노동자 능력이 평균적으로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면, 결국은 자본집약도(취업자 또는 노동시간당 자본스톡)의 차이가 노동생산성 격차에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투자해 노동생산성을 올리는 경제시스템이다.

한국은행 '국민대차대조표'와 통계청 일자리 통계를 가지고 계산해 보면, 전 업종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자본집약도 차이는 10배나 된다. 제조업만 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자본집약도 차이가 3배에 달한다. 제조업과 저임금 일자리가 밀집해 있는 도소매업·음식숙박업 차이는 8배다. 이 정도 차이가 나니까 자본을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제조업이 중소기업·서비스업보다 노동생산성이 높을 수밖에 없고, 이런 차이가 임금격차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자본집약도 차이를 좁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에 어마어마한 자본을 투자해야 한다. 예로 도소매업·음식숙박업의 자본집약도를 제조업의 절반 정도로 끌어올리려면 700조원이 투자돼야 한다. 이렇게 업종 하나만 따져도 전체 노동자의 한 해 임금 거의 전부를 소비가 아니라 투자에 사용해야 할 정도다. 노동자 전반의 임금감소가 상당 기간 불가피하다. 투자가 이뤄져도 문제가 있다. 자본투자만큼 노동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기 때문이다. 소비 감소로 내수서비스 수요가 부족해지는 상황도 어려운 문제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서비스업에서 제조업으로 고용이 이동해야 하는데, 이 경우 제조업이 해외에서 생산을 늘리면 안 된다는 제약이 추가돼야 한다. 어차피 상상이긴 하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임금격차를 없애는 상상을 해 봤다. 극단적인 평준화를 가정한 것이니 현실과 큰 괴리가 있다. 그렇지만 이런 극한의 상황을 가정하면 현실의 과제가 무엇인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정리해 보자. 첫째, 한국의 저임금 상황은 끔찍한 상태다. 평준화된 상태로 가려면 상상도 못할 도약이 필요한 상황이니 말이다. 저임금 노동자 소득증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둘째, 대기업·공공부문·상위소득 노동자 임금을 추격해서는 임금격차를 완화하기 어렵다.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없어서다. 자본의 이윤을 어느 정도 줄여 저임금 노동자 임금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대기업·공공부문·상위소득 노동자와 중소기업·민간부문·저소득 노동자 간의 임금조정을 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이 할 수 없다. 자본이 하는 임금조정은 이윤 증가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노동자 스스로 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지혜와 노동자의 계급적 윤리가 임금격차 완화에 절실하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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