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봄꽃 떨어진 자리에 새잎이 돋는다. 쑥쑥 자란다. 다 말라 죽은 듯 갈색빛 황량한 풀섶에도 가만 보니 초록 새싹이 쑥쑥 오른다. 늙어 허리 굽은 할매가 쑥을 뜯는다. 봄볕 아린 날이니 모자가 깊었다. 때때로 바람 차 소매가 길었다. 할매는 오래도록 봄이면 쑥을 뜯었다. 쑥국을 끓이고 쑥떡을 빚어 어린 자식 밥상을 차렸다. 쑥쑥 자라 이제는 엄마 따라 늙은 자식 밥상에 오늘 쑥국이 올랐으니 그제야 봄이다. 언젠가 봄날 텔레비전 앞에서 섧게 울었던 아빠는 다섯 살 딸아이를 목말 태워 꽃길을 걸었다. 노란색 바람개비가 걸음 따라, 바람 타고 돌았다. 돌고 돌아 새봄, 한데 모인 사람들 눈시울이 저마다 붉었다. 여전한 숙제를 읊었고, 기억하기를 다짐했다. 언젠가 아이처럼 울던 엄마는 이제 꾹꾹 눌러 몸으로만 울었다. 볕이 온 자리에 공평해 모든 산 것들이 쑥쑥 자라나니 봄이다. 참담한 죽음을 떠올리고서야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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