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애진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난 22일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에 따른 하위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김용균법’이라고도 불린다. 개정법은 고 김용균씨를 비롯해 그간 산업재해로 사망한 하청·비정규 노동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유족과 노동자들의 열망을 담은 것이었다. 노동계는 법령 개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노동계 요구사항이 상당 부분 하위법령안에 반영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해 12월11일 김용균님의 사망사고 이후에도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중대재해 사고는 끊이질 않았다. 올해 1월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하청노동자 추락사망, 2월 현대제철 당진공장 하청노동자의 컨베이어벨트 협착사망, 3월 또다시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의 컨베이어벨트 협착, 이달 12일에는 효성 구미사업장 하청노동자가 대형장비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비정규·하청노동자의 중대재해에 노동부 장관은 김용균법 시행(2020년 1월16일) 때까지 하청노동자 안전공백을 없애기 위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올해 초 있었던 한화·현대제철 하청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특단의 대책을 세울 거라고도 했다. 겉으로는 대단한 조치를 취할 것처럼 했으나, 드러난 하위법령의 내용을 보니 크게 속았구나 싶다. 이 정도 하위법령을 가지고 하청노동자 산재사고를 예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당초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자는 논의를 촉발했던 구의역 참사 유형, 즉 궤도사업장의 점검 및 설비 보수작업과 고 김용균님의 작업이었던 전기사업 설비 운전 및 점검·정비·긴급 복구업무는 도급제한은커녕 도급승인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다단계 하도급의 대표적 업종인 조선업의 위험작업도 승인대상에서 제외됐다. 원자력안전법상 방사선 작업 종사자의 업무, 사고 발생시 공공 안전에 심각한 위해를 가져올 수 있는 가스사업, 석유정제사업 등 당초 노동계가 원청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던 사업 모두가 승인 대상에서 제외됐다.

도급인의 책임성 강화를 위해 개정 시행령(안)은 건설업 안전관리자 선임기준을 확대했을 뿐이다. 노동계는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장소’ 개념을 도입해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확대하고자 했으나 역시 관철되지 않았다. 에어컨 설치·수리와 케이블 통신 설치·수리, 건물 외벽 도색 및 청소작업 등 현행법상 22개 위험장소 명시로 해결되지 않았던 각종 하도급 사업은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유해작업의 도급 제한 규정도 ‘일시·간헐적 작업’ 또는 ‘전문적이고 사업운영에 필수 불가결한 경우’라는 유연한 표현을 사용해 예외를 열어 뒀다. 후자는 그나마 고용노동부 장관 승인을 요건으로 하지만 전자는 하위법령으로 구체화하지 않았기에 임의적인 해석으로 도급 금지조항 자체를 무력화시킬 여지가 없지 않다.

노동부는 하위법령 입법예고를 통해 태안 화력발전소 사망사고를 언급하면서 현행 도급인·수급인 산재 통합관리 대상에 전기업종을 추가했다고 생색을 내고 있다. 하지만 법망을 치밀하게 구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하청 통합관리 제도’를 도입한 탓에 원청으로 하여금 하청업체 산재예방을 위한 노력을 유도할 경우 원·하청이 공모해 산재를 은폐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피해 갈 가능성이 크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자 했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의 취지, 국회 심의 과정에서 논의된 하도급 제한과 규제 확대 취지를 반영해 산재 다발 업무를 도급승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재하도급을 금지해야만 하청노동자 중대재해를 제대로 방지할 수 있다. 건설업종뿐만 아니라 도급인의 포괄적 지배·관리가 미치는 장소까지 안전보건조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법제화해야만 비로소 개정법이 도급인 책임을 강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2022년까지 산재 사망자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중대재해의 원인이 위험의 외주화에 있음을 지속적으로 알려 왔다. 문제 원인은 자명해졌고 정부 과제도 명확해졌다. 정부는 공약이행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정부입법 과정에서 자본의 반발에 물러설 것이 아니라 위험의 외주화 금지라는 노동자와의 약속을 무겁게 인식하고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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