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 노동대학원과 노동문제연구소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2019 한국노동사회포럼’ 세션 중 하나로 ‘한국의 사회적 대화, 어떻게 할 것인가’ 집담회를 개최했다. <연윤정 기자>

문재인 정부 사회적 대화가 표류하고 있다. 노사정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대표되는 사회적 대화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지만 해법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다.

고려대 노동대학원과 노동문제연구소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2019 한국노동사회포럼’ 세션 중 하나인 ‘한국의 사회적 대화, 어떻게 할 것인가’ 집담회에서 보인 노사정과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이 사회를 맡았다.

경사노위는 정부·국회 고충처리 기구인가
정부·여당 '킬 아이템' 탄력근로제 던져

이상호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전문위원이 포문을 열었다. 이 전문위원은 “노사정 모두 사회적 대화기구를 고충처리나 민원로비 기구로 활용했다고 솔직히 고백한 상태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사노위에는 의제별위원회와 의제개발조정위원회가 있다”며 “가장 민감하고 입법조치가 필요한 (탄력근로제) 사안에 대해 (계층별 대표라는) 참가주체 의견을 반영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탄력근로제가 정부 단기 성과를 위한 의제로 활용됐다는 비판이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사회적 대화 쟁점으로 탄력근로제를 채택한 것은 잘못했다”며 “노동계가 동의하기 어려운 ‘킬 아이템’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역대 정권에서 사회적 대화가 잘 안 된 원인은 정부에 있었다”며 “단기 성과를 위한 의제를 집어넣어 합의를 강요했고 국회가 이 결과를 상당히 왜곡했다”고 밝혔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사회적 대화 의제로 탄력근로제를 집어넣은 것을 누가 기획하고 압박했는지가 중요하다”며 “문재인 정부 전반적으로 탄력근로제를 사회적 대화로 추진한 과정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불참하고 있다.

“사회적 대화 골든타임 놓쳤다”
계층별 대표 참여 기회 막은 경사노위

이날 집담회에서는 “사회적 대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잇따랐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는 “경사노위가 합의기구에서 협의기구로 바꾼 것은 민주노총 때문이었다”며 “민주노총 참여를 기다리느라 허비한 시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기구 불참은 내부적 역학구조와 관계없이 대단히 중요한 시대적 과오”라며 “(민주노총이 빠진) 그런 조건에서 탄력근로제가 합의되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문주 본부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경사노위 출범까지 19개월이 걸리는 등 적기에 중요한 논의를 하지 못했다”며 “사회적 대화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안타까워했다. 정 본부장은 “문재인 정부가 높은 지지율과 힘 있는 시기를 다 잃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를 하니까 합의가 되겠느냐”고 반문한 뒤 “정부 스스로 노동존중 사회 추진동력을 잃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사회적 대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에 민주노총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주호 실장은 “경사노위 참여를 둘러싼 상황이 과잉정치화돼 있다”며 “기승전 경사노위를 말하는 게 더 사회적 대화 참여를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경사노위 운영방식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남신 활동가는 “계층별 대표들은 탄력근로제 의제에 반대하는 한편 미조직 노동자에게 피해를 미치는 사안과 관련해 우리도 알아야 하니 회의에 참관하게 해 달라고 했다”며 “두 가지 요구 모두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활동가는 “정부와 집권여당은 경사노위를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하위 고충처리 기구로 여겼다”며 “힘센 플레이어들인 노사정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달성하는 데 매여 있어 계층별 대표는 안중에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스몰딜로 신뢰 쌓으며 빅딜 추진해야”
계층별 대표, 본위원회 불참 및 사퇴 거부

경사노위 정상화는 가능할까. 집담회에서는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이상호 전문위원은 경사노위 정상화를 위해 두 가지를 제안했다. 경사노위는 계층별 대표가 운영위원회·의제개발조정위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고, 계층별 대표는 본위원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경사노위는 소수 대표성을 인정한 목적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며 “계층별 대표는 본위원회에 참석하는 것으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남신 활동가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양대 노총 공조가 이뤄지고 의미 있는 논의가 이어지는 최저임금위원회 수준으로 경사노위가 정상화됐으면 한다”며 “계층별 대표가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운영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29일로 예정된 경사노위 본위원회 불참 의사와 함께 위원 사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 활동가는 “29일 본위원회를 앞두고 약자를 겁박하는 사회적 대화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우리는 사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문주 본부장은 “경사노위 운영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고 계층별위원회도 정상궤도에 올려야 한다”며 “한국노총과 계층별 위원들이 상시공조를 하다가 느닷없는 탄력근로제로 차질이 빚어졌지만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완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서로 부담 갖지 않는 주제를 가지고 자주 만나다 보면 언젠가는 빅딜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한국노동사회포럼 폐회식 성명 채택
“노동가치 기초로 새로운 노동체제 만들어야”

김민석 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은 “계층별 대표가 이런 문제 해결주체인 본위원회 위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들의 불참으로) 회의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며 “양극화로 고통받는 노동자를 위해서라도 계층별위원회를 띄워 논의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사태로 경사노위 대표성의 비대칭 문제가 드러나 숙제를 던져 줬다”며 “한국 사회에 필요한 사회적 대화는 스몰딜 성과가 축적돼 난이도 있는 의제로 전진하는 축적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노동사회포럼 참가자들은 이날 폐회식에서 성명을 채택했다. 참가자들은 “노동의 가치는 인간 가치의 자체”라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공동체의 근간에는 노동존중 가치가 있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우리는 변화하는 노동현실을 직시하고 변함없이 추구돼야 할 노동의 가치를 기초로 미래를 여는 새로운 노동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성명을 통해 “우리가 만들 새로운 노동체제는 노동 공공성의 실현을 추구한다”며 “협력적 노동체제를 작동시키는 핵심기제는 사회적 대화로서 단기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협력의 벽돌을 한 장씩 착실히 쌓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