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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바뀌고 있다

기사승인 2019.04.29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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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올해 초였다. KB국민은행 노사가 임금협상을 매듭지었다. 지난해 임금에 대한 협상인데, 단체협약과 맞물려 갈등을 거듭하다 해를 넘겨 타결했다. KB국민은행은 직원 임금을 2.6% 인상했다. 여기까지는 별것 없다. 전국 각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그렇고 그런 임금협약의 하나에 불과하다. 한데 그 타결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L0(창구전담직원)와 기능직원·사무직원 임금을 5.2% 인상했다는 점이다. 저임금 직군의 임금인상률을 두 배로 타결한 것이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임금격차는 있다. 그래서 이것까지 별것 아니라고?

광화문 촛불 때였다. 이런 한탄이 있었다. 촛불은 광장에서만 타오른다고. 멀쩡하던 촛불이 직장 안으로 들어가면 꺼진다고. 그러면서 말했다. 촛불이 직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당시 한탄을 노동운동으로 좁혀 보자. 광장에서 진행되는 노조 집회에서는 연사가 무대에 올라 발언을 한다. 빠지지 않는 발언이 있다. 비정규직 철폐 또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다. 연사는 목소리 높여 재벌을 규탄하고 정부를 비판한 뒤에 비정규직 철폐나 차별 철폐를 주장한다. 집회 말미에는 참가자 의지를 모아 결의문을 채택한다. 구호에서는 '결사'를 후렴으로 붙이기도 한다. 죽음을 각오한다는 뜻이다. 사업장 바깥의 각종 회의와 술자리 등에서도 흔하게 접하는 모습이다.

자, 이제 사업장으로 들어가 보자. 분명 비정규직이 있고 차별도 심각한 상태다. 범위를 2·3차 하청까지 넓히면 노동자가 두세 개 계급으로 분단된 상태다. 그런데도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철폐 또는 차별 철폐를 실천하는 모습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광장과 인터넷과 술집에서 차고 넘치던 주장과 결의는 직장 앞에서 흔들리고 직장 안에서 사그라진다. 바로 그래서다. 비정규직 철폐 또는 차별 철폐가 노동운동 목표가 되고 사회 쟁점이 된 지 어언 20년이건만, 이토록 오랫동안 해소되지 않고 되레 심화하는 핵심 이유다.

노동 분단은 저주다. 그 저주는 나, 너, 우리 자식이 고스란히 뒤집어쓴다. 저주는 조합원 자식이건 관리자 자식이건 가리지 않는다. 지금 당장 무엇이라도 시도해야 하는 절박함이다. 그렇다, 그렇기에 KB국민은행 노사가 저임금 직군의 임금인상률을 두 배로 높인 것은 박수쳐야 하는 뜻깊은 시도다. 그것을 이끌어 낸 KB국민은행지부장은 박홍배고, 금융노조 소속이다. 금융노조는 오래전부터 직장 안에서의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주로 1금융권 노동자가 가입한 노조로 한국노총 소속이다.

민주노총에도 다양한 시도가 있다. 현대자동차가 성과를 만들기 시작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지난해 임금협상에서 하후상박 연대임금전략을 채택했다. 현대차보다 하청노동자 임금인상률을 더 높게 적용하는 전략이다. 요구안에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과 납품단가 정상화가 포함됐다. 그래야 하청노동자 인상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서 임금협상은 끝났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기아차 노동자 임금은 평균 4만5천원 인상됐고, 115개 협력사 임금은 5만6천100원 올랐다. 현대차 노사의 공동노력이었다. 꽉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반가운 소식이다.

현대차 연대임금전략을 이끄는 이는 하부영 지부장이다. 그는 임금투쟁 중심의 지난 전략을 반성적으로 평가한다. 노동운동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지향했는데 돌이켜 보면 정권과 자본에만 해결해 달라 요구했지 우리 스스로 자주적 노력을 한 바 없다 했다. 그는 노동운동이 임금인상에서 세금인상 투쟁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임금의 40%를 세금으로 내고 국가로부터 사회보장정책을 받아 모든 국민이 평등한 삶을 지향하는 것을 노동운동이 가야 할 길로 주장한다. 100%, 아니, 1천% 동의한다. 북유럽 모델이 아닐까 싶다.

하나 더 소개한다. 사무금융노조다. 주로 2금융권 노동자가 가입한 노조로 민주노총 소속이다. 노조는 올해 대의원대회에서 혁신적 방침을 결의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임금인상률을 물가상승률로 제한하겠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임금동결 방침이다. 노동운동의 지난 전략에 비춰 보면 실로 파격적이다. 직장을 넘어 사회연대로, 라는 기치로 사무금융노조 연대임금전략을 이끄는 이는 위원장 김현정이다.

자랑스럽던 노동운동이 어느 시점부터 손가락질 대상이 됐다. 무엇보다 아픈 것은 노동운동의 토대인 밑바닥 주변부 노동자들이 손가락질을 한다는 점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벌어진 노동 분단 때문이다. 거기에 노동운동이 소홀했기 때문이다. 현실이 바뀌었는데도 과거 전략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바뀌고 있다. 소개한 노조들이 사례다. 이 노조들은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의 처지를 외면하고 정규직 인상률만 더 높일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럼에도 연대임금전략을 펼치고 있다. 모두가 함께 사는 연대전략, 그것을 광장에서만 주장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실천하고 있다. 지면이 좁아 더 소개하지 못했지만, 희망연대노조를 비롯해 매우 많은 노조들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안에 있다. 머지않아 노동운동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다. 김현정·박홍배·하부영 등 곳곳에서 연대임금전략을 펼치고 있는 모두에게 경의를 표한다.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한석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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