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 주최로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산재·재난참사 유가족과 국회의원들이 함께 하는 이야기 마당 자리에서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 유가족 황상기씨가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사람이 죽어도 벌금 몇백 만원만 내면 끝인데 삼성이 왜 돈과 노력을 들여서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겠습니까?"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반문했다. 황씨는 "권한이 있는 사람을 처벌해야 노동자를 죽이는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재해와 재난참사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4·16가족협의회·특성화고현장실습 피해자가족모임·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김용균 재단(준)…. 피해자 유가족들은 "산재·재난참사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외쳤다.

유가족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외친 까닭은 무엇일까.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여영국 정의당 의원·김종훈 민중당 의원이 '산재·재난참사 유가족이 기업책임 강화 법안발의 의원들과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을 열었다.

"조직적 은폐에 책임 안 지는 기업"

유가족들은 자식을 떠나보낸 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기업의 조직적 은폐에 진상규명조차 어려운 현실을 체감했다. 진상규명이 말끔히 이뤄지지 않을 때는 책임지는 이가 없었고, 어렵사리 진상규명을 해도 기업이 지는 책임은 미미했다. 유사한 사고는 반복됐다. 유가족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힘을 모은 까닭이다.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 노동자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기업이 산업재해를 은폐·축소하기 위해 생사를 오가는 재해 피해노동자를 사내 개인차량으로 옮기고 사고 원인을 고인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봤다. 김미숙씨는 "아들을 잃고 난 뒤 기업이 어떻게 사람들을 짓밟으며 이윤을 추구하는지 몸으로, 눈으로 체감했다"며 "노동자가 죽어도 벌금 400만원을 내고 그보다 더 많은 세금감면을 받아 이윤을 남기는 기업에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 원청이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토다이 분당점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 숨진 고 김동균군 아버지 김용만씨는 "아들 동균이가 죽었을 때 교육부·고용노동부·교육감·학교장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며 "우리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기업과 기업 책임자가 반드시 책임지게 하고 처벌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고 김동균군은 2015년 특성화고 재학 중 토다이 뷔페식당 한 지점에 현장실습을 나갔다. 당시 김군은 현장실습생 신분이었지만 하루 14시간가량 노동을 했고, 상사의 반복되는 괴롭힘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면 무고한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장이나 다중이용시설 등에서 안전관리 및 안전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기업 대표이사나 이사 등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피해자가 기업을 상대로 징벌적인 손해배상을 가능하게 하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현재 국회에는 기업에 재해 책임을 부과하는 법안이 다수 계류돼 있다. 그중 유가족들은 5개 법안을 주목하고 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비롯해 박주민·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내놓은 공중이용시설 등의 안전관리위반범죄 처벌 특별법 제정안,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이 발의한 기업 등의 안전관리위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기업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다.

이상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 집행위원장은 "산업안전보건법 같은 일부 법안으로 기업이 처벌을 받고 있지만 직원의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지는 책임"이라며 "벌금이 수백 만원에서 1천만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는 더 늦기 전에 계류돼 있는 기업처벌법들을 통합심사해 법안 통과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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