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일기념관 개관식 참석자들이 <전태일 추모가>를 함께 부르고 있다.<서울시>

“지금도 가슴속에 파고드는 소리/ 전태일 동지의 외치던 소리/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헛되이 말라/ 외치던 그 자리에 젊은 피가 흐른다/ 내 곁에 있어야 할 그 사람 어디에/ 다시는 없어야 할 쓰라린 비극~.”

4월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에 자리 잡은 한 건물 앞에 모인 사람들이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전태일 추모가>를 불렀다. 129주년 세계노동절을 하루 앞둔 날 사람들을 불러모은 이는 '전태일'이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개관을 축하하러 온 이들은 줄잡아 200명에 육박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수호 전태일기념관장(전태일재단 이사장)·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얼굴도 보였다.

참석자들은 기념관 건물 외벽에 설치된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문구가 선명한 커튼을 당겼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글씨가 드러났다.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에는 숨은 희생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은 하루 15시간의 고된 노동으로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돼 왔습니다. 기업주들은 아무리 많은 폭리를 취하고도 조그마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근로감독관님, 이 모든 문제를 한시바삐 선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기 1년 전인 1969년 12월19일 근로감독관에게 쓴 자필편지 내용이다. 기념관 외벽에 아름다운 작품으로 다시 새겨진 편지처럼 전태일 열사의 불꽃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한 청계천에서 부활한 것이다.
 

▲ 참석자들이 전태일기념관 건물 외벽에 설치된 커튼을 당겨 아트월을 선보이는 제막식을 했다.<서울시>

“전태일 따르는 사람들의 염원이 현실로”

서울시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장소인 평화시장 근처 청계천 수표교 인근에 연면적 1천920제곱미터 지상 6층 규모로 전태일기념관을 완공했다. 전태일재단이 기념관을 위탁운영한다.

개관식은 기념관 2층에 마련된 공연장에서 진행됐다. 이수호 관장은 “전태일을 따르고 전태일처럼 살길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이 현실이 됐다”며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다시 살아오고 있다”고 감격했다. 그는 “기념관은 노동존중 사회의 중심이 될 것”이라며 “시민들이 노동가치를 깨닫고 노동의 삶을 이해하는 문화의 전당일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박원순 시장은 “스스로 불꽃이 된 청년노동자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우리에게 전달한 조영래, 기꺼이 우산이 돼 준 문익환,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가 된 이소선이란 이름과 만나는 곳이 전태일기념관”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이 땅 노동자의 피땀과 의지가 이곳까지 흘렀다”며 “새롭게 노동존중 사회로 가는 위대한 시민의 건물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백기완 소장은 “태일이를 죽인 것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며 “돈이 주인 되는 세상, 사람을 머슴처럼 부려먹는 세상을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전태일기념관 제막식 참석자들.<서울시>

“노동자 항상 찾아오는 기념관 될 것”

개관식에 이어 이수호 관장의 안내로 참가자들은 기념관 3~5층을 둘러봤다. 3층 전시장에는 한국노동사를 보여 주는 상설전시 ‘전태일의 꿈, 그리고’와 전태일 열사의 생전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그가 꿈꿨던 봉제작업장을 재연한 ‘모범업체:태일피복’ 기획전시가 마련됐다.

4층은 소규모 신생 노동단체나 미조직 노동자들의 공유공간인 ‘노동허브’로 운영된다. 회의 공간과 테이블이 잘 정돈돼 있다. 5층은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입주해 있다.

▲ 참가자들은 개관식을 마친 뒤 6층에 마련된 옥상정원에서 도시락 식사를 함께하며 전태일을 기념했다.<서울시>

참가자들은 6층에 마련된 옥상정원에서 도시락 식사를 함께하며 전태일 열사를 기념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100만 조합원이 항상 기억하는 전태일, 항상 찾아오는 기념관이 되도록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서종수 한국노총 서울본부 의장은 “이날을 계기로 모든 노동자가 인정받고 존중받는 시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의 생전 친구인 최종인씨는 “우리 친구들의 꿈이었던 전태일기념관을 만들어 줘 감사하다”고 전했다.

▲ 전태일기념관 개관식을 마친 뒤 참석자들이 기념관 3층에 설치된 전시관을 살펴봤다.<서울시>

전태일기념관의 역할을 당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태일 열사가 살았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취약노동자 삶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순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늘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은 날”이라며 “지금도 거리에서 투쟁하는 노동자, 여전히 장시간 일하는 봉제공장 노동자 모두가 생각나는 날”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오빠 전태일은 많은 사람들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며 “노동자와 서울시민이 함께 울고 웃는 기념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태일기념관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아직까지 현장에는 여성 비정규 노동자가 60~70년대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청년노동자는 7포를 넘어 10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든 걸 포기한다”며 “전태일기념관이 그들을 위한 활동을 해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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