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이렇게 가다간 기회는 더 불평등해지고, 과정은 더욱 불공정해지고, 결과는 정의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다."

김태동 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의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지 2년이 지난 현재의 위기감을 문 대통령 발언을 이용해 비판한 것이다.

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지식인선언네트워크·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 6개 단체 주최로 '소득주도 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는 어떻게 됐나'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전문가 평가는 인색했다. 최저임금 인상·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던 정책 동력이 급격히 약화돼 좌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날 자리에 모인 전문가들은 "구조개혁이 선행되지 않은 탓에 소득주도 성장이 위기에 처했다"며 "재벌개혁 등 구조개혁을 선행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소득주도 성장과 따로 노는 세부 정책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당시만 해도 한국 경제의 위기 원인을 저성장·양극화로 보고 가계 가처분소득을 늘려 성장을 견인하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이 인구 4분의 1에 달하는 자영업자에게 전가되고 고용부진 지표가 잇따라 드러나자 정책 동력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황선웅 부경대 교수(경제학)는 "집권 초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부합하는 최저임금 인상·노동시간단축 등 유의미한 정책을 추진했다"며 "하지만 현재 소득주도 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라는 세 가지 기본 기조를 유지하면서 세부 정책으로 수출경쟁력 강화·규제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내세운 비전과 시행 전략이 부조화를 이루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규제개혁 속도를 높이겠다고 발표한 뒤 계속해서 기업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불평등한 경제구조 개선부터 먼저 해야"

이날 전문가들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 실패의 원인으로 구조개혁이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대기업에 치우친 불평등한 경제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을 올렸을 때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은 자영업자지만 이들은 비용 상승으로 인해 기업에 단가 조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재벌대기업 중심의 구조, 재벌체제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소득주도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재벌 중심 경제구조가 소득주도 성장 정책 효과를 저감시킨다는 의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평등한 경제구조는 자료로도 입증된다. 황선웅 교수는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 자료를 인용해 "1990년부터 2017년까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성장률은 시기에 따라 비슷한 형태를 띠며 줄거나 늘어났다"며 "하지만 중소기업 수익성을 나타내는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성장률과 무관하게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결책으로는 재벌개혁이 제시됐다. 가맹점·대리점·중소기업의 교섭력 강화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남근 경제민주화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 대등한 교섭구조를 만들려면 중소 상공인들이 단체(중소기업 협동조합)를 구성해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공정거래위원회가 중소기업 협동조합의 공동행위를 인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19조는 사업자 간 부당한 공동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필요에 의한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인가를 받으면 공동행위가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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