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비참하게 죽어 간 내 아들 원한을 풀어 주세요. 싸늘하게 죽어 가는 아들을 보면 부모 마음은 기가 막혀요. 초등학교 3학년·5학년·대학교 2학년, 남은 세 아이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정부는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어요."

아들을 지난달 25일 잃었다는 조오섭(65)씨가 울분을 토했다. 그의 아들 고 조덕진씨는 2007~2010년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을 사용했다. 2016년 덕진씨는 폐섬유화 진단을 받았지만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정했다. 결국 고인은 4단계 피해자로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2011년 시작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019년 5월에도 진행 중이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 7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습기 살균제로 가족과 자신이 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박수진·이재성씨가 삭발했다. 이들은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단계 구분을 철폐하고 전신 질환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김기태 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은 "미세먼지만 해도 전신 질환을 불러오는 요인이라고 하는데 독성물질을 흡인한 피해자의 전신 질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011년 폐손상증후군으로 산모와 영유아가 잇따라 사망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정부는 2017년 제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에 따라 피해자를 구제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을 보면 5월3일 기준 가습기 살균제 건강피해 조사·판정 결과를 받아든 피해자 5천435명 중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3·4단계 피해자와 판정불가자가 4천961명(91.3%)이다.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을 근거로 정부가 지원하는 구제급여를 받는 대상은 1단계(가능성 거의 확실)와 2단계(가능성 높음) 피해자뿐이다. 3단계·4단계 피해자 중 일부(2천10명)는 옥시레킷벤키저 같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이 조성한 분담금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3·4단계 피해자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선옥(61)씨는 "대다수 피해자들이 십수년 전 오랜 기간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며 "피해단계 구분을 철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 조덕진씨를 포함해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자는 1천40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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