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노인전문요양원에서 24시간 격일근무를 하는 요양보호사들의 체불임금 소송 사건을 진행하고 있다. 이 시설에서는 요양보호사 한 명이 두 개 생활실의 노인 6명 내지 8명을 전담한다. 원고들은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서 다음날 오전 8시30분에 퇴근할 때까지 24시간 동안 자신이 담당하는 노인들의 기상·취침·식사·탈의·착의·약복용·배변·세면·샤워·이동 등 모든 종류의 일상생활이 안전하게 유지되도록 돌봤다. 야간시간 동안에도 요양보호사들은 노인들의 침대 아래 바닥이나 생활실 앞 복도에 매트를 깔고 졸음을 쫓으며, 갑자기 깨서 돌아다니거나 생리현상을 호소하는 노인들 돌봄을 계속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시설의 노인들은 24시간 돌봄을 받는 것을 전제로 장기요양보험을 적용받고 있는데, 돌봄을 전담한 요양보호사들은 17시간에 해당하는 임금만 받았다. 근로계약서에 7시간의 휴게시간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근로계약서에만 존재하는 휴게시간이었다.

이 노인전문요양원은 누구나 알 만한 대형교회에서 사실상 운영하고 있다. 교회의 설립 및 운영, 재산취득 및 관리, 목사·장로의 선발, 선교사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법인이 요양원을 설립해 운영하는데, 요양원 시설장은 교회가 소속 교역자(교회에서 급여를 받으며 교역에 종사하는 자)들 중 정기적 인사발령을 통해 보내는 사람이다. 이 요양원의 전신은 해당 교회의 은퇴 교역자나 장로·권사를 우선 입주시키는 방식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그 외 요양원의 예산운용·감사 등에 있어서도 교회는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변론기일마다 피고측에서는 교회에서 인사발령을 받은 시설장인 목사가 출석한다.

이 사건을 진행하면서 법정 안에서, 또 밖에서(특이하게도 이 사건은 피고측이 법정을 나와서 원고 대리인에게 쏟아 내는 말들이 꽤 있었다) 피고측에게 많이 들었던 말은 “(야간시간 돌봄은) 자발적인 헌신이었다” “원고들이 원한 것이다” “어르신들을 돌보는 업무 특성상 당연한 일이다” “목사님이 얼마나 잘해 줬는데 이럴 수 있냐” “날강도가 따로 없다” 등이다. 이들은 원고들의 소송 제기에 대해 진심으로 분노하며, 일종의 배신감을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교회가 ‘세상’이라 부르는 교회 밖 사회와 교회 안을 분리한 채 교회에 대해서는 ‘세상법’을 적용할 수 없다거나 이와 무관한 고유의 질서를 주장하는 것은 드물지 않게 봤던 일이다. 이 사건에서 피고측(사실상 교회측)이 보이는 분노도, 원고들이 자신들의 ‘헌신’을 ‘노동’이라 주장하며 노동의 대가를 요구하는 데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헌신하는 이들은 노동자가 아닌 것일까. 또는 헌신해야 하는 이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한 처사일까. 대법원은 교회에서 소위 ‘주님의 종’이라고 불리는 목사(주로 부목사)도, 이 사건 요양원처럼 교회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이들도 모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에 근로를 제공하는” 노동자이고,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노동을 제공받는 상대방인 사용자가 영리를 추구하든, 공익적 목적이나 사회적·종교적 가치를 추구하든 노동자성 판단과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헌신하는(또는 헌신해야 하는) 이들이 어디 교회 안에만 있겠는가. 초대형 불이 나면 비로소 뉴스를 통해 누군가의 고된 노동을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지만, 실제 하루에도 수많은 불이 산과 들과 건물에서 솟아오른다. 기후변화로 인해 건조함이 더해지면서 소방청과 산림청 공무원들과 비정규 노동자들은 1년 중 10개월을 극도로 과로한다. 의사와 판사·검사의 과로사는 슬프게도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소식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과로사 아니면 과로자살한다는 사회복지사 문제는 너무 많이 논의돼 이미 해결된 것인 양 착각할 정도다. 모두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분야, 특히 공익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일터에서 헌신과 봉사가 곧 ‘노동’임을 인정받지 못한 채 마치 그들의 과로·저임금·권리박탈 등의 상태가 자발적이고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이라 칭해지고 있다. 업무와 조직의 공익적 특수성을 내세워 노동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애써 배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빛나는 자부심과 보람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이들도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은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고, 끝날 줄 모르는 비상대기는 일상을 파괴하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빼앗겼을 때 모욕을 느끼며, 노동이 삶을 압도할 때 삶은 부득이 포기된다. 부디 우리 사회가 도처에서 공익적 필요를 충실히 채우는 노력과 함께 헌신과 노동이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는 보편적 질서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끝으로 지난 7일 새벽 산불 비상근무 도중 사망한 산림청 공무원의 명복을 빈다.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국가가 헌신이라 명하며 개별 노동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지 않기를 촉구하며, 재난대응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지킬 수 있는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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