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국제노동기구(ILO) 산하 결사의 자유위원회 기본협약 비준 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ILO 사무총장은 결사의 자유위원회 권고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고 협약 이행에 관해 지속적으로 무대응하는 국가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고 무역제재가 포함된 조치를 ILO 총회에 권고할 수 있다. ILO 기본협약(핵심협약) 8개 중 4개를 비준하지 않아 유럽연합(EU)으로부터 무역제재 압박을 받는 한국은 경제적 제재를 넘어 사법적 문제를 야기하며 국제적 비판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ILO 가장 강력한 제재는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국회입법조사처가 ‘ILO 기본협약 미비준, 국제노동기준 미이행 기업에 대한 경제적 제재’ 관련 이정미 정의당 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을 15일 회신했다. 이 의원은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을 배제한 조건에서 ILO 협약 미비준으로 인한 개별 수출기업에 대한 유럽국가 제재 가능 여부와 제재의 종류 및 근거는 무엇인지 △노동기준 등을 지키지 못한 개별기업에 대한 제재 종류 및 해당 국가의 국내법 또는 국제조약상 근거는 무엇인지를 질의했다.

입법조사처는 “ILO 기본협약 등 국제노동기준을 비준하지 않거나 준수하지 않은 경우 국제사회나 국제기구로부터 협약 비준의 압박을, 국제사회로부터 인권·기본권 보호가 취약한 국가, 이른바 노동문제에 있어 반인권적 국가라는 오명을 받게 된다”며 “ILO 노동의 권리 및 기본원칙에 관한 선언(1998년)에서는 기본협약은 비준 여부와 관계없이 회원국이 일반적으로 준수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고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입법조사처는 ILO 협약 이행 관련 감독·제재 절차와 함께 ILO의 새로운 제재 방식으로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소개했다. 입법조사처는 “ILO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재는 회원국 협약 위반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이라며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 위반시 일반적인 권고와는 다른 강력한 권고조치 방식을 취한다 하더라도 회원국은 이에 대해 구속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사의 자유위원회 권고에 대한 무조치와 협약 이행에 관한 지속적인 무반응에 해당할 경우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통한 이행강제가 가능하다. 입법조사처는 “ILO 총장은 별도의 심사위원회를 개최해 보고서를 채택하고, 이에 대한 수락 여부 및 수락하지 아니할 경우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해당 회원국에 통지할 수 있다”며 “이때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은 이행강제 조치가 마련돼 있지는 않지만 유엔 회원국으로서의 의무이행 차원에서 사실상 강제력이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입법조사처는 “ILO는 회원국이 국제사법재판소 결정이 포함된 권고를 지정된 기간에 이행하지 않으면 이사회가 회원국의 권고 이행을 위한 현명하고 적정한 조치를 총회에 권고할 수 있다”며 “이 조치에는 무역제재가 포함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ILO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1991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정부에 ILO 핵심협약 비준을 비롯해 결사의 자유 침해 사례에 대한 제도개선을 수차례 권고했다.

전문가패널 인정시 세계 최초 FTA 노동조항 위반 국가 전락

EU는 한국 정부에 한·EU FTA에 담긴 ILO 협약 비준 노력의무 조항 이행을 요구하며 무역분쟁 해결절차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패널 소집을 예고한 상태다. 한·EU FTA 13장(무역과 지속가능발전)에 따르면 양측은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노동기본권을 존중·증진·실현해야 한다. 아울러 ILO 핵심협약을 포함해 최신 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문가패널이 ILO 기본협약 미비준을 이유로 FTA 위반을 인정할 경우 한국은 세계 최초로 FTA 노동조항을 위반한 국가가 된다.

입법조사처는 “FTA 노동조항 위반이 인정된 전례가 없기에 전문가패널에서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우리나라에 위반 책임을 물을 것인지를 예단할 수는 없다”며 “FTA 노동조항에 직접 근거한 특혜관세 철폐 등의 무역제재는 불가능하나 EU 또는 EU 회원국은 독자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해 일정한 노동권 및 노동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기업에서 생산된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경제적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은 주한 EU 대사단을 만나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우려의 뜻을 밝혔다. 손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오찬간담회에서 “한·EU FTA 13장에 따라 한국 정부가 핵심협약 비준 노력의무 조항을 이행해 FTA 협정 이행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한국의 대립적·투쟁적 노사관계와 제도 및 관행 개선 없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면 기업의 노사관계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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