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창작음악극 <쪽빛의 노래>의 임정현(왼쪽) 총감독과 신동일(오른쪽) 작곡가. <정기훈 기자>

5년이다. 엊그제 일어난 일인 양 이토록 생생한데 벌써 5년이란다. 누구는 “이제 그만하라”고 하지만 누구에게는 2014년 4월16일 그날에 멈춘 5년의 세월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참 많이 바뀌었다. 갑작스레 찾아든 뉴스에 망연자실했던 국민은 촛불을 들고 “진실을 말하라”고 외쳤다. 무능한 정권을 끌어내렸다. 그러나 그날의 외침에 대한 응답은 5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진실을 말하라.”

“숨 막히도록 고요한 밤바다여 살 떨리도록 적막한 밤바다여 말하라 말하라 구슬픈 뱃노래마저 삼켜 버린 너 말하라 천년 묵은 침묵마저 먹어 치운 너 말하라 말하라 말하라.”(노래 <말하라> 중에서)

세월호 창작음악극 <쪽빛의 노래>가 무대에 오른다. 부제는 ‘말하라’다. 역사의 굴곡마다 순우리말을 씨줄과 날줄 삼아 아름답고 먹먹한 글을 써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세월호 연작시 <갯비나리>를 음악으로 재탄생시켰다.

2년간의 준비 끝에 24~25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초연하는 <쪽빛의 노래>. 이소선합창단 지휘자 임정현(55)이 총감독을 맡고 작곡가 신동일(54)이 백기완 소장의 시에 선율을 붙였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근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두 사람은 “(쪽빛의 노래를 통해) 산 자를 위로하고 고통을 극복할 힘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이나 정부 지원 없이 평범한 이들이 십시일반 꺼내 놓은 마음으로 제작을 힘겹게 끌어온 이들은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많은 이들과 작품을 나누길 바란다”며 “서울을 시작으로 지방과 해외까지 공연을 가져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 임정현 총감독 <정기훈 기자>

“세월호·시의 무게가 부담으로”

2017년 초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둔 시점이었다. 임정현 감독 눈에 백기완 소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땅이 열기로 들끓고 냉기로 어는 수많은 날을 대오 맨 앞에서 세월호 집회에 함께했다. 백 소장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임 감독은 백 소장의 가슴에 쌓이고 쌓인 무수한 말을 꺼내 음악으로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를 요청했다. 세월호 연작시 <갯비나리>의 시작이다.

백 소장은 첫 연작시 <쪽빛의 노래>를 임 감독에게 보내며 “전통가락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양음악을 전공한 임 감독은 전통가락을 소화할 줄 아는 신동일 작곡가를 떠올렸다.

“신동일 작곡가는 전통가락이 들어간 서양음악을 하는 사람 중 최고예요. 곧바로 전화를 걸어 작곡을 부탁했죠. 해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다음 곡이 나왔는데, 사실 백기완 선생의 글은 날 것 그대로예요. 조사 하나 안 빼놓고 시를 그대로 살려서 음악으로 표현했는데 정말 내공이 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번 저질러 보자는 생각으로 백기완 선생의 시 10편의 작곡을 부탁했습니다.”

세월호가 가진 무게만으로도 힘겨웠던 신동일 작곡가에게 백기완 소장의 시에 선율을 붙이는 일은 또 다른 고행이었다. 그는 “너무 고생을 했다”고 토로했다. 옆에 있던 공연기획 관계자는 “살이 많이 빠지고 얼굴이 상했다”며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라고 귀띔했다.

백기완 소장의 살아 있는 언어는 신동일 작곡가의 상상력과 만나 시너지를 발휘했다.

▲ 신동일 작곡가 <정기훈 기자>

“조심스러웠어요. 세월호를 공연주제로 한다는 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고. 세월호는 우리에게 여전히 진행형이잖아요. 주제에 대한 부담에 백기완 선생 글의 무게가 더해졌죠. 그동안 서정적인 음악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백기완 선생의 글은 비장해요. 기억에 많이 남는 곡이 <날아라 장산곶매야>입니다. 1절은 ‘날아라 장산곶매야 캄캄한 어둠을 들이받고 절망을 쪼아 길을 밝혀라’로, 2절은 ‘날아라 아이들아 누가 저 끝없는 밤하늘을 한없는 절망이라 했던가’로 시작합니다. 2절의 ‘날아라 아이들아’라는 가사 때문에 작업하면서 마음이 많이 갔어요.”

세월호 레퀴엠을 관통한 문화예술인의 몸부림

임정현 감독은 <쪽빛의 노래>를 "한국적 레퀴엠"이라고 했다. 진혼곡을 뜻하는 레퀴엠은 라틴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 음악을 뜻한다. 모차르트와 브람스·베르디의 레퀴엠을 세계 3대 레퀴엠으로 손꼽는다. 임 감독은 “죽은 자를 추모하는 레퀴엠이 아닌 산 자들의 평화를 구하는 레퀴엠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음악극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레퀴엠을 진혼곡이라고 해요. 그런데 왜 죽은 자를 위로하나요? 산 자를 위로해야지. 지금 이 세상에 있는 산 자들, 유가족, 우리 모두가 위로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세월호의 레퀴엠은 산 자들을 위한 안식·평화를 구하는 것이죠. 오로지 백기완 선생의 글과 음악으로 세월호의 레퀴엠을 전하는 겁니다.”

▲ 지난 1월26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쪽빛의 노래> 선보임 공연 장면. <쪽빛의 노래 제작위원회>

세월호 참사 이후 5년 동안 여러 형태의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지난 1월26일 열린 <쪽빛의 노래> 선보임 공연에서 “우리는 모두 자기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몸부림쳤다”며 <쪽빛의 노래>를 “문화예술인의 몸부림”이라고 소개했다.

<쪽빛의 노래>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시대를 증언하는 또 하나의 기념비적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정헌 4·16재단 이사장·신학철 전 민예총 이사장·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정성헌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이 공동제작위원장을 맡았다. 유가족을 비롯해 416명의 제작위원이 뜻을 보탰다.

“죽음을 넘어서는 한바탕 울음의 모뽀리(합창)를 해야 해. 스스로 달구고 을러대지 않으면 그 슬픔에 빠져 죽어. 제가 저를 달구치며 울러대는 소리, 그게 비나리야.”

백기완 소장은 “하늘이 무너져도 뚫고 일어나는 쇳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쪽빛의 노래>는 문화예술인들의 쇳소리이자 스스로를 달구치는 우리 모두의 비나리인 셈이다.

“노래하라 고통을, 그렇게 기억하라”

<쪽빛의 노래>는 늙은이의 안타까운 외침과 분노 어린 절규로 시작한다. 어린 생명을 앗아 간 이유가 무엇인지 늙은이는 묻는다. 답을 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바다는 답이 없고 파도만 거칠다. 침묵하는 바다는 진실을 밝히지 않는, 밝히지 못하는 부패한 권력과 자본에 기생하는 모든 적폐세력이 숨은 공간이다. 그것은 진실을 알려 주지 않는 신이고 냉정하게 움직이는 시간이며 자연이다.

임정현 감독은 <쪽빛의 노래>를 통해 고도로 진화한 국가폭력을 고발하고 싶다고 했다.

“울분을 다 설명할 수는 없죠. 우리에게 아픈 역사가 많잖아요. 동학농민운동과 5·18 민주화운동, 부마항쟁 등이 있었죠. 그간의 국가폭력은 실질적인 폭력 형태로 이뤄진 데 반해 세월호 참사는 국가와 엉켜 붙은 자본의 폭력입니다. 국가폭력이 고도로 진화했죠. 민주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이 현실에 분노가 치밀어요. 백기완 선생의 피 튀기는 언어로 이런 현실을 고발하자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공연을 준비하며 가수 두 명이 교체됐다. 십시일반 마음을 보탰지만 제작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임정현 감독은 “순진하고 착한 사람의 무관심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며 <쪽빛의 노래>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아무런 후원 없이 출발해서 그런지 힘든 점이 많았어요. 죽다 살아나길 수십 번 반복한 것 같습니다.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공연을 올려 보자는 생각을 했고, 힘들게 4천만원 정도를 모았어요. 제작비가 2억원은 드는 데 말이죠. 세월호 아픔을 을러대고 극복해 나가기 위한 뜻깊은 공연이니까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백기완 소장이 말하는 쪽빛이란 “온갖 더러운 물질이 든 물을 끝없이 정화해 다시 맑아진 물의 빛깔”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 아이들은 “이 캄캄한 밤바다에 처박혔지만 우리는 죽지 않았다”며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쪽빛 세상을 일구자”고 우리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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