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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 ②] ILO 협약이 제기하는 노동의 근본 문제

기사승인 2019.05.21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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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ILO) 100주년 총회가 6월10일부터 21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다. 이번주는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시기다. ILO 협약 189개 가운데 한국 정부가 비준한 협약은 29개에 불과하다. ILO 모든 회원국이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기본협약은 8개 중 4개만 비준한 상태다. 촛불시민 지지를 받고 노동존중 사회를 약속하며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비준한 ILO 기본협약은 전무하다. 도대체 왜 이런 걸까. 윤효원 글로벌 인더스트리 컨설턴트가 ILO 탄생과 협약 제정을 둘러싼 역사를 살펴보고 비준 방향을 모색하는 글을 보내왔다. 5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글 싣는 순서]

1. ILO 1919, 이후 아닌 이전 100년 살펴야
2. ILO 협약이 제기하는 노동의 근본 문제
3. 강제노동 협약(29호와 105호) 제정의 역사
4.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협약(87호와 98호)의 역사
5. 민주공화국, 선 입법과 국회 동의 논란을 넘어

 

국제노동기구(ILO) 100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간 ILO가 펼친 활동과 사업, ILO가 만든 국제노동기준을 돌아보면서 한국 사회가 고민해야 할 노동의 근본 문제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보호하려는 것은 '일'인가 '노동'인가

첫째, 국제일기구(International Work Organisation)가 아닌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sation)다. 우리는 ILO가 협약과 권고의 형태로 만드는 국제노동법이 보호하려는 대상이 일(work)인지 노동(labour)인지를 물어야 한다. ILO는 1919년 가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창립총회에서 1호부터 6호까지 여섯 개 협약을 제정했다. 제조업에서 일의 시간(hour of work)을 최대 하루 8시간과 주 48시간으로 규제한 1호 협약, 실업 방지 및 구제에 관한 2호 협약, 임신과 출산시 여성노동자 보호를 명시한 3호 협약, 여성의 밤일(night work)을 금지한 4호 협약, 14세 미만 어린이 고용을 금지한 5호 협약, 18세 미만 청소년의 밤일을 금지한 6호 협약이다.

우리는 100년 전 만들어진 여섯 개 협약에서 ‘일의 규제(regulation of work)’를 통해 ‘노동의 보호(protection of labour)’를 꾀했던 ILO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노동을 보호한다는 것은 노동력의 담지자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일을 규제한다는 것은 일에 대한 지배권과 통제권을 행사하는 자본가를 규제하는 것이다.

둘째, 노사관계에서 말하는 노와 사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노사관계는 '사람 대 사람'의 관계이지 '사람 대 회사'의 관계가 아니다. 노사관계에서 '사'는 '모일 社'가 아닌 '부릴 使'다. 남을 부려 일을 시키는 사람(사용자 자본가)과 남에게 부림을 당하며 일을 하는 사람(노동자 근로자 종업원)과의 관계가 노사관계다. 노사관계에서 노동자는 회사라는 운동장에서 사용자와 관계를 맺는다. ILO 기준은 기업이나 회사라는 말을 쓰지 않고 '사용자와 사용자단체(employers and employers’ organisations)'라는 용어로 일관한다. 노동자의 상대는 기업이나 회사가 아니라 사용자라는 사람이다. 노동자단체의 상대는 사용자와 그들의 결집체인 전경련·경총 같은 사용자단체다. 이런 구도는 '기업-산업-경제'로 확장해도 마찬가지다. 기업·산업·경제는 노사관계가 이뤄지는 운동장이다. 노동자와 사용자는 노사관계라는 게임의 선수가 된다.

경영계라는 말의 이데올로기

셋째, 경영계라는 정체불명의 말을 바로잡아야 한다. ILO 3자주의를 말할 때 '노경정 3자'라고 하지 않는다. 경총의 영어 이름은 'Korean Employers Federation'으로 한국사용자연맹, 즉 '사총'이다. 노사관계에서 사용자단체는 사용자들을 대표하지 기업들을 대표하는 게 아니다. 경영계라는 말에는 노동을 경영에서 배제하려는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해 기업의 정책 결정에 개입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당연한 권리이자 노동운동의 역사적 책무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노동자이사(worker director)' 사례에서 보듯 노동자는 기업·산업·경제를 경영하는 주체가 될 수 있고 또 돼야 한다. '정부계'라 하지 않지 않나. 경영계도 최근에 만들어진 말이다. 외계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노동계라는 말도 이상하다. 사용자와 자본가라는 과학적인 용어를 써야 한다.

넷째, 단체교섭에서 말하는 단체(collective)를 노동자와 사용자, 즉 노사로 착각해선 안 된다. 단체행동의 단체가 누구와 누구를 뜻하는지를 보면 분명해진다. 단체교섭의 '단체'가 노동자들만을 의미하기에 당연히 단체교섭은 노동자의 권리가 되는 것이며, 동시에 단체교섭이 사용자에게는 오롯이 의무로 되는 것이다. ILO 98호 협약(1949년)은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 '기업하기 쉬운 나라' 세계 5위, 미국보다 앞서

다섯째, 노조전임자 임금은 사용자 돈인지 회사 공금인지 물어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회사라는 조직의 법인격과 사용자라는 조직 구성원의 법인격은 구별된다. 따라서 현대자동차의 재산은 정몽구 회장의 재산과 분리된다. 주식회사라는 법인격을 부여받은 현대차에서 정 회장은 노동자들처럼 하나의 기관(organ)에 불과하다. 노조전임자 임금이 회사 공금에서 지급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회사의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로 왜곡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4조2항은 거대한 사기극에 다름 아니다. 2001년 한국이 비준한 ILO 노동자대표 보호 및 편의제공 협약(135호, 1971년)은 노조전임자 급여는 노사가 알아서 결정할 사항이라 못 박고 있다.

여섯째, '기업을 할 권리'와 '사용자를 할 권리'를 구분해야 한다. 세계은행 2019년 '기업하기 쉬운 나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5위의 '기업하기 쉬운(Ease of Doing Business)' 나라다. 미국·영국·일본·독일·프랑스보다 앞선다. 세계경제포럼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은 15위다. 기업하기 쉬운 순위에서 일본은 한국보다 한참 뒤진 39위지만 글로벌 경쟁력은 한국보다 높은 5위다. 독일도 기업하기 쉬운 순위가 한국보다 낮은 24위지만 글로벌 경쟁력은 3위다. 한국보다 기업하기 훨씬 어렵지만 ILO 협약을 더 많이 비준한 일본과 독일의 글로벌 경쟁력이 한국을 앞선다. 국제노총(ITUC) '글로벌 노동권' 평가에서 독일은 1급이고 일본은 2급인데 한국은 최악인 5급이다.
 

'선 입법'과 '국회 동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곱째, ILO 협약 비준과 관련해 관료들과 법기술자들이 주장하는 '선 입법'과 '국회 동의'가 존재했던가 질문해야 한다. 189개 ILO 협약 중 한국이 비준한 29개 협약은 대부분 선 입법이나 국회 동의 없이 비준됐다. "국내 법·제도가 협약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주체는 고용노동부 관료들이고, 이들의 머리와 입과 손에서 '선 입법'이냐 '선 비준'이냐가 결정됐다. 비준을 위한 입법이 실질적으로 완료됐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객관적 기준이나 체계적 지표, 합당한 절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운동은 미비준 협약의 비준을 위해 이런저런 법을 고쳐야 한다는 '법기술적' 접근법에 매몰돼 왔다. 관료들과 법기술자들이 설치한 덫에 걸린 것이다.

여덟째, 핵심협약으로 번역할 것이냐 기본협약으로 번역할 것이냐 문제다. 실천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기본(fundamental) 협약이 맞다. 기본은 시작이자 기초라는 말이다. 우리가 부산에서 서울로 여행을 떠날 때 기본은 부산을 떠나는 것이고 핵심은 서울에 도착하는 것이다. 사과를 먹을 때 기본은 사과껍질을 깎는 것이고 핵심은 알맹이를 먹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 기초를 깔아야 기둥과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릴 수 있다. 기본협약은 사과를 먹기 위해 껍질을 깎는 것이고 집을 짓기 위해 바닥을 다지는 것이다. 기본을 통과해 핵심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기본협약을 비준한다는 것은 노동자 권익을 향한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의미이지, 사회정의 실현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ILO의 '핵심' 가치에 도달했다는 게 아니다.

민주공화국,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폐지

ILO 기본협약 비준은 대한민국 정부가 일제와 군사독재가 남긴 파시즘과 국가주의 잔재를 일소하고 1919년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꿈꿨던 민주공화국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1944년 ILO 필라델피아 선언은 대한민국에도 영향을 미쳐 우리 헌법에 결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와 노동 3권 보장을 아로새겼다. 전쟁의 참화와 혁명의 소용돌이를 사회정의와 노동존중으로 극복하려 했다는 점에서 ILO 100년과 대한민국 100년은 서로 마주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결사의 자유 보장'과 '강제노동 폐지'가 자리잡고 있다.

윤효원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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