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토론문을 작성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로자파견이 죄다.” 24일 열리는 토론회에서 발표할 발제문에 대한 토론문이다. 한 노동법학회가 대검찰청과 공동으로 ‘사내 도급 및 파견의 법적 쟁점’이라는 제목으로 주최하는 토론회다. 나는 토론자이기에 발제자 검사의 발제문 ‘파견법상 규제와 형사책임’을 미리 받아 읽고서 토론회 자료집에 수록할 토론문을 작성해 보내 줘야 했다. 그래서 마감 독촉을 받으면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과 형사처벌에 관해서 고민하게 된 것인데, 문득 ‘근로자파견이 죄여야 하는데, 파견법 위반에 관해 법 규정이 불명확하다고 탓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렇게 쓰고 보니, 파견법이 도입될 당시부터 제기됐던 ‘생각’이고, 어찌 보면 새삼스럽게 새롭다 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근로자파견사업은 노동자를 고용해서 다른 사업주가 사용하도록 파견해 주는 사업인데, 파견사업주가 사용사업주로부터 받는 보수는 노동자에 대한 중간착취에 다름 아니다. 어쩌다 이 세상에서 이런 사람장사가 법적으로 허용되게 된 것인지, 나는 파견법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수많은 사내하청 노동자, 비정규 노동자의 근로가 파견근로라며 파견법에 따른 고용의무 내지 고용간주를 주장하면서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등을 해 왔지만, 나는 파견법을 고맙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노동자를 중간착취하는 근로자파견은 범죄라고 여겼을 뿐이다. 그랬는데 나는 새롭다고 문득 ‘근로자파견이 죄’라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니 새삼스럽다.

2. 지금 변호사로서 내가 대리하는 사건만도 수십이고, 그 사건의 원고로 참여하는 비정규 노동자는 수백명이다.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법정투쟁의 본격적인 시작이라 할 현대차 사건은 그 소송 출발부터 수행해 왔다. 최근에는 폐쇄된 지엠 군산공장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을 대리해서 불법파견·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 밖에 산업은행 등 다양한 업종에서 각기 다른 직종의 비정규 노동자들을 대리해서 파견법에 근거해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하고 있다. 이들 사건은 모두 도급계약을 체결하고서 하청업체는 근로자를 원청업체에 제공했다. 그러니 소송에서 공방은 근로자파견관계의 주장과 입증을 둘러싸고 전개될 수밖에 없다. 제조업 생산공정이라 파견대상 업종이 아니라서, 파견법상 2년이라는 파견근로 사용기간을 초과해서, 파견업 허가를 받지 못해서 등 사업장에 따라 이유는 다르지만, 파견법에 따른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한 짓인 건 분명하다. 그래서 소송에서 내가 하는 것은 그들이 도급계약을 체결하고서 근로자를 파견했고 그 근로자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주장할 때면 언제나 아쉬운 게 있다. 분명히 파견법은 이러한 짓을 하는 사용자를 처벌하고 있는데, 도대체가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수사해서 기소한 자료를 내 재판에 활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파견법 위반으로 사용자를 적극 수사해서 기소하는 일이 많지 않다 보니 일어나는 일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현대차에서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은 2005년 불법파견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기 전부터 파견법 위반으로 처벌해 달라고 원청 사용자 현대차를 고소했고, 그 뒤 10여년 동안 여러 차례 고소했음에도, 아직까지 현대차 대표이사 등이 처벌받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고소·고발이 있어도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통한 적극적인 수사와 처벌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검찰은 과거 현대차 사건에서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2007년)을 통해 도급계약을 체결한 경우 근로자파견을 대단히 협소하게 인정하는 기준을 마련해서 파견법 위반사건을 무혐의 처리해 왔던 것이고, 그로 인해 고소·고발을 통해 파견법 위반으로 판단받을 것이라고는 이 나라에서 기대하기 어려웠다. 노무현 정권에서 2006년에 파견법 등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을 둘러싸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 진영은 저지투쟁을 벌였지만 승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2007년에 발표된 이러한 검찰의 파견법 위반사건 처리지침은 사내하청 등 비정규 노동자들을 크게 낙담하게 했다. 그 뒤 파견법 위반의 고소·고발을 통해서는 파견근로자의 권리 보호를 받는 게 어렵다고 각인돼 버렸다.

3. 본래 노동자를 사용하도록 소개해 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다. 허용하게 되면 노동자를 중간착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 용인할 수 없다고 봤던 것이다. 중간착취는 이 세상에서 허용되지 말아야 할 죄로 여겼던 것이다. 조합원을 고용하도록 해서 조합비를 받는 노동조합을 제외하고는 안 된다고 했던 것인데, 그러다 예외적으로 허용하게 된 것이 직업안정법상 직업소개소였다. 그런데 근로자파견사업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노동자를 고용해서 사용사업주에 사용하도록 노동자를 제공해 주고서 그 노동자의 임금 외에 파견사업주의 보수를 별도로 매달 챙김으로써 그야말로 노동자를 중간착취하는 사업이었다. 근로자파견사업은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는 동안 계속해서 그 근로 제공 대가로 사용사업주에게 보수를 지급받는 것을 업으로 한다. 이렇게 나는 이미 10여년 전에 했던 생각을 검사의 발제에 대한 토론문을 작성한다며 새삼스럽게 하고 말았다.

4. 근로자파견이 죄라면, 파견법은 이를 허용하더라도 예외적으로만 허용하고, 그 해석과 집행에 있어서 근로자파견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야 한다. 파견법 위반사건에서 무엇이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해석과 법 집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내세워 파견법 위반의 형사처벌을 주저한다면,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것으로 파견법을 집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이럴 경우 원칙적으로 중간착취가 보장되는, 그야말로 우리 파견법이 예정하지 않은 현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외국의 입법이 파견 대상을 폭넓게 허용하되 차별을 금지하는 추세라면서 우리의 파견법을 제멋대로 확대해서 집행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이 나라에서 파견법은 파견노동자 보호를 위해서 제대로 집행해 오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법 집행의 권력은 파견법을 집행하는 데서 소극적이었다. 비정규 노동자가 증거자료를 확보해서 법원에 파견근로를 주장·입증할 때에만 겨우 파견법상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파견법 위반을 수사해서 피해자인 파견노동자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게 하는 일은 여간해서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대검찰청이 공동주최로 파견법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어 그 법리를 논의한다니 뜻밖이다.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공약한 문재인 정부라서 있는 일인가 싶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발표하고 토론할 내용이 걱정되기도 한다. 파견법 위반에 관해서 법 규정이 불명확해서 판단하기 어렵고,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사용자를 처벌하기 어렵다거나, 파견법 위반의 전제인 파견과 도급의 판단기준에 관해 제조실행시스템(MES) 등 자동생산흐름 방식에 있어서 도급인의 지시권 행사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식의 논의가 나오지나 않을까 말이다.

5. 토론문을 작성하면서 2010년에 발표했던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검토’라는 내 발제문을 다시 읽어 봤다. 당시 서울고등법원에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사건의 판결 선고를 앞두고 조직된 토론회에서 발표했던 것이고, 그 내용은 서면으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당시 도급과 파견의 구별에 관해 수많은 논의가 전개되고 있었고, 특히 독일에서 도급인의 지시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례가 나오고 있다는 식의 소개를 하면서 현대차 등의 경우 사내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근로자파견이라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의 연구논문을 일부 노동법학자들이 발표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에 관해서 비판적으로 쓴 글이었다. 다시 읽고 보니, 내 머리는 9년 전 그때보다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중언부언한 글을 교정하는 것 말고는 발제문을 새롭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근로자파견은 죄라는 생각은 그때 발제문을 작성할 당시에도 하고 있었음이 알 수 있었다. 노동착취가 죄가 아닌 세상에서, 중간착취하는 근로자파견은 죄라고 떠들어 댄다고 파견근로 철폐라는 메아리를 기대할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나는 다시 생각이 드는 걸 어쩌겠는가.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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