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2일 발표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계획은 국회 비준동의와 입법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이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선 비준 후 입법’과는 거리가 있다.

“동의안만 제출하면 국회 통과 못해”

정부가 먼저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는 선 비준 방식은 두 가지 문제가 거론돼 왔다. 대통령이 재가한 후 외교부 장관이 서명한 비준서를 ILO에 보내는 방식과 국회 동의를 받은 다음 비준서를 기탁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이재갑 장관은 “선 비준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최소한 법 개정안과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같이 가서 논의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국회 동의 없이 먼저 비준하는 방식은 아예 고려하지 않았고, 법 개정작업 없이 국회 비준동의만 받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는 뜻으로 들린다.

비준동의안을 제출할 때 법 개정 내용을 명시하게 돼 있고, 무엇보다 비준동의안만 낼 경우 국회 통과가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법 개정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 비준동의를 받는 것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보수야당과 재계를 설득하는 과정을 밟겠다는 의도다.

박화진 노동정책실장은 “정부가 (국회에 비준동의를 먼저 받기 위해) 결단을 내리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은 국회에서 통과될 전망이 있냐는 문제와 결부된다”며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비준동의안과 입법안을 제출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선 입법 후 비준' 방식을 고집했던 기존 입장에 비하면 한 발짝 나아간 셈이다. 그럼에도 회의론이 적지 않다. 정권 초기에 ILO 기본협약 비준을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진 않지만 “헌법상 대통령의 비준권과 국회의 동의권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회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대통령이 비준한 후 국회를 압박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만시지탄”이라며 “대통령의 선 비준 가능성까지 열어 놓은 후 국회에 비준동의와 법 개정 시한을 제시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105호 협약 비준 제외, 포기선언?

노동부가 이날 강제노동 철폐 협약(105호) 비준을 추진하지 않기로 한 것은 사실상 포기 선언이다. 노동부는 형법 개정의 어려움과 분단 상황을 이유로 들었다. 105호 협약은 정치적 견해표명 처벌이나 파업제재를 포함해 5개 목적을 이유로 강제노동을 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치적 견해를 표명했다가 징역형을 받아 노역을 하면 기본협약 위반이다.

협약을 충족하려면 노역이 없는 금고형을 살도록 해야 하는데 법 개정이 쉽지 않다. 정치적 견해표명과 관련한 징역형을 피하려면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부가 국보법 개폐 논란이 정치쟁점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보인다.

강제노동 협약(29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익근무·산업특례 제도는 강제노동에 속한다. 군인이 아닌데도 강제로 일을 시키면 강제노동이라는 것이 ILO 해석이다. 한국 정부는 2006년 29호 협약 비준을 추진하다가 ILO 해석을 듣고 비준을 중단했다.

노동부는 별도 법 개정 없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비군사적 업무라 하더라도 개인에게 복무 선택권이 주어지고 관련자가 적으면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것이 ILO 입장”이라며 “보충역 제도를 폐지하지 않고도 협약 취지를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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