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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 ⑤ 민주공화국, 선 입법과 국회 동의 논란을 넘어] ILO 기본협약은 민주공화국 이념, 이제 제네바로 가자

기사승인 2019.05.24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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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ILO) 100주년 총회가 6월10일부터 21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다. 이번주는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시기다. ILO 협약 189개 가운데 한국 정부가 비준한 협약은 29개에 불과하다. ILO 모든 회원국이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기본협약은 8개 중 4개만 비준한 상태다. 촛불시민 지지를 받고 노동존중 사회를 약속하며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비준한 ILO 기본협약은 전무하다. 도대체 왜 이런 걸까. 윤효원 글로벌 인더스트리 컨설턴트가 ILO 탄생과 협약 제정을 둘러싼 역사를 살펴보고 비준 방향을 모색하는 글을 보내왔다. 5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글 싣는 순서]

1. ILO 1919, 이후 아닌 이전 100년 살펴야
2. ILO 협약이 제기하는 노동의 근본 문제
3. 강제노동 협약(29호와 105호) 제정의 역사
4.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협약(87호와 98호)의 역사
5. 민주공화국, 선 입법과 국회 동의 논란을 넘어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을 비준하는 것은 법 개정을 뛰어넘는 문제다.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 협약의 정신과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로 얼룩졌던 1920년대 시대상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1930년 제정된 29호 '강제노동' 협약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파시즘 체제가 인류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었던 1940년대 시대상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1948년 제정된 87호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협약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전쟁과 혁명의 산물인 ILO 협약

1차 대전과 러시아 혁명의 혼란을 딛고 ILO가 출범한 1910년대부터 전체주의와 국가주의로 무장한 파시즘이 야기한 2차 대전의 참상을 겪고 유엔이 창설된 1940년대까지 세계사적 흐름 속에 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1949년)과 105호 '강제노동 폐지' 협약(1957년)이 자리하고 있다. 1951년 제정된 '동등 가치의 일(work)에 대한 동등 보수' 협약(100호)과 1958년 제정된 '고용과 직업의 차별 금지' 협약(111호)도 마찬가지다.

1919년 만들어진 '제조업의 최저연령' 협약을 필두로 1920년 '어업의 최저연령' 협약, 1921년 '농업의 최저연령' 협약, 1932년 '비제조업의 최저연령' 협약이 잇따라 만들어졌다. 이들 아동노동 협약은 50년대와 60년대를 거치면서 개정과 통합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1973년 모든 산업에 적용되는 '최저연령' 협약(138호)이 출현하게 됐다. 그 연장선에서 1999년 182호 '최악 형태의 아동노동 철폐' 협약이 제정됐다.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협약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는 1919년 ILO가 출범할 때부터 있었다. 하지만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협약(87호, 1948년)이 만들어지기까지 3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20년대와 30년대를 거치며 독일·일본·이탈리아 등이 파시즘 체제로 전환됐다. 개인의 자유와 시민사회의 활력을 거부하는 정치적 흐름은 ILO 안에서 이뤄진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에 관한 논의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반전의 계기는 30년대 들어 파시스트 국가들이 ILO를 탈퇴하면서 마련됐다. 1935년 히틀러의 독일, 1938년 나치 점령하의 오스트리아, 1939년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1940년 쇼와 천황의 일본, 같은해 나치와 불가침조약을 맺은 스탈린의 소련이 ILO를 탈퇴했다. 그 직후 인류는 세계 도처에서 전대미문의 살육을 자행했다. 그 잔인함과 야만스러움의 선두에 국가가 서 있었다. 시민사회는 교살당했고, 인간 문명의 최대 발명품인 국가는 살인기계로 전락했다.

사용자와 노동자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

1941년 뉴욕에서 열린 ILO 총회는 "노사정 3자의 실질적 협력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적 정치 제도의 틀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협력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는 노동자와 사용자를 대표하는 산업단체들(industrial organisations)의 권리를 인정해야 하고, 노동자단체와 사용자단체는 노동자와 사용자를 대표하는 상대방의 권리를 인정해야" 했다.

2차 대전 막바지에 주축국을 점령한 연합국이 수행한 정책에는 파시스트 국가가 만든 어용 노조들과 단체들을 해산하는 것이 포함됐다. 1944년 11월23일 포고령을 통해 이탈리아 어용 노조들이 해산됐다. 비슷한 입법조치가 오스트리아·헝가리·불가리아·루마니아·핀란드에서 이어졌다.

1946년 4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ILO 총회는 '노사관계 헌장'을 정식화하려고 노력했다. 노사관계는 결사의 자유 보장, 노동자의 조직할 권리와 단체교섭 권리의 보호, 임의적(voluntary) 화해 및 중재, 단체협약을 포괄했다. 이러한 원칙에 기반을 두고 총회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결의문과 노동자의 조직하고 단체로 교섭할 권리에 관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1) 사용자와 노동자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직업·성별·색깔·인종·신념 혹은 국적의 구분 없이, 그리고 당국의 사전 승인 없이(without previous authorisation) 자기 선택에 따라 조직을 만들 권한을 가져야 한다. (2) 사용자와 노동자의 단체는 운영과 활동을 조직하고, 자기 규약과 행정 규칙을 작성하며, 자기 정책을 만드는 데서 완전한 자율권을 허용받아야 한다. (3) 사용자단체와 노동자단체는 행정명령에 의한 해산에 종속되지 않는다. (4) 사용자단체와 노동자단체는 직업조직(trade organisations)의 연맹과 총연맹을 구성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연맹과 총연맹의 결성·활동·해산은 사용자단체와 노동자단체가 정한 것이 아닌 다른 절차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 (5) 단체에 제공되는 특별한 혜택이 어떤 성질이나 형태의 조건에 대한 종속을 전제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조건이 위에서 규정한 결사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

"국가의 개입이나 강압 없이"

2차 대전이 끝나고 ILO 안에서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문제가 한창 논의되던 1947년 미국노동연맹(AFL)은 유엔 경제사회위원회 산하 인권위원회에 제출한 문건에서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 문제와 관련해 흥미로운 물음을 던졌다.

정부의 개입이나 강압 없이 노동자가 스스로 선택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하고 소속할 권리는 어디까지인가? 정부 당국의 개입 없이 노동조합이 현장·지역·전국 수준에서 자기 조합원의 결정에 따라 활동할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노동자들이 자기가 속한 노동조합의 간부를 선택하고 선거하고 임명할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정부의 개입 없이 노동조합이 자기 조합원의 결정이나 규약과 규정에 따라 조직 기금을 적립하고 사용할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노동자나 노동자단체가 국내외의 노동자나 노동자단체와 교류할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정부 간섭에 대한 공포 없이 현장·지역·전국 수준의 노동조합이 자유롭게 국제단체에 가입할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노동조합이 대표하는 조합원의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체결하고 그 결정 방식에 참여할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노동자와 노동자단체가 의지하는 파업권에 대한 인정과 보호는 어디까지인가?

미국노동연맹의 근본적 물음은 계속 이어진다. 정부의 지배나 간섭 없이 사용자와의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자발적인 중재에 의지할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노동자와 노동자단체가 자신들을 위한 입법적 혹은 행정적 행위를 보장받기 위해 정부의 행위에 압박을 가할 권리는 어디까지인가? 노동자가 국경 안에서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자유는 어디까지며 국경을 넘어 이주할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노동자가 정부의 강압이나 개입 없이 자기 결정에 따라 고용을 받아들이고,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반대로 그만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강제노동이나 노예노동이 존재한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 허용되며, 각 개인은 국적·인종·성별·언어 혹은 종교에 상관 없이 강제노동으로부터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가? 입법 기준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근로조건과 노동자의 복지는 어디까지 가능하며 그러한 보호의 성격과 특징은 무엇인가?

'국회 동의' 덫 돌파해야

1946년 ILO 멕시코시티 총회 결의문과 1947년 미국노동연맹의 질문에서 우리는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의 발흥을 억압하고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보장하며 이를 기반으로 노사 간에 자율적인 교섭을 증진함으로써 시민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어 민주주의 바탕을 튼튼히 하려 했던 ILO 기본협약 제안자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비준하려는 ILO 기본협약 29호(1930년)·87호(1948년)·98호(1949년)·105호(1957년)는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에 기반을 둔 파시즘 체제의 부활을 억제하려는 정치적 반성 속에서 제정됐다. 제정 연도에서 알 수 있듯이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참화를 겪으며 수천 만명을 살상하면서 얻어 낸 인간의 지혜를 모은 것이다. 이는 자유와 민주를 향한 인류문명의 보편성에 동참하려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천명한 민주공화국의 이념이 돼 1948년 만들어진 제헌헌법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지난 22일 민주공화국을 거부하는 관료들이 '국회 동의'라는 덫을 쳤다. 현 정세에서 국회 동의는 '선 입법'의 연장선에 있다. 현행 법제와 기존 관행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음을 확인해 주지만,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자신의 권리인 비준권을 국회에 넘기는 실수를 저질렀다. 내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이기면 비준동의가 가능할까? 2004년 열린우리당의 교훈을 돌아볼 때 필자의 예상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물론 비관만 할 일은 아니다. 새로운 정세의 전개는 새로운 전술의 개발을 요구하는 바, 노동운동은 '국회 동의'라는 덫을 돌파할 과학적 논리와 참신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대통령도 올해 못 가는 스위스 제네바를 내년에는 갈 수 있도록 방도를 찾아야 한다. ILO 기본협약 비준 투쟁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 중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을 기억하자.

윤효원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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