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기 고용노동부장관 정책보좌관

올해는 국제노동기구(ILO) 창립 100주년이다. ILO 회원국은 187개다. 이 가운데 144개 국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가 중 31개 국가가 기본협약 8개를 모두 비준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비준한 기본협약은 겨우 4개에 불과하다.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는 인구 5천만명 이상 국가를 뜻하는 ‘3050클럽’에 속해 경제선진국 반열에 들게 됐다며 대내외에 자랑하지만, ‘노동’은 한참 뒤처져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의 하나로 ILO 기본협약 비준을 추진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정부는 노사정 3자로 구성된 ILO 취지에 따라 사회적 대화를 거쳐 비준을 추진하려 했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ILO 기본협약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감안해 비준동의안과 관련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올해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난 <필라델피아 정신>(사진·매일노동뉴스)은 반갑다. <필라델피아 정신>은 우리나라의 ILO 기본협약 비준 추진이 단지 국제사회에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또는 유럽연합(EU)이 제기하는 통상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아픈 경험을 통해 증명한 “인류의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ILO 헌장의 정신을 우리나라에서도 실현해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역사의 경험에서 도출한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을, 뒤늦었지만 우리도 지키고 따르겠다는 다짐이 담겨야 한다는 뜻이다.

이 책은 서문부터 부록까지 220페이지에 이른다. 사회과학류 책답게 정치·경제·역사·법률이 씨줄 날줄처럼 엮여 있고, 전문용어가 넘친다. 대체로 장문이고, 복문도 흔하다. 그만큼 난해하다.

그럼에도 <필라델피아 정신>은 줄 그어 가며 꼼꼼히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하다. 필라델피아 선언은 인류 역사에서 개척자 같은 문서다.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을 채택한 이듬해 국제연합(UN)이 설립됐으며,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공포됐다. 국제기구에서 채택한 ‘선언’이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30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극단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 교리와 대척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필라델피아 정신>은 ‘선언’이 탄생한 배경과 맥락을 짚어 가며 이야기를 풀어 간다. 필라델피아 정신은 ‘노동에 대한 존중’ ‘집단적 자유’ ‘연대’ ‘사회적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꼽는다.

필라델피아 선언의 정신이, 신자유주의 광풍과 황금만능주의에 찌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극복하고, 모든 사회·경제 시스템이 사람을 위해 복무하는 사람 중심 시대를 열어 가는 데 하나의 이정표이자 나침반으로 기능할 수 있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고,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며, 모든 인간은 인종·종교·성별과 상관없이 자유와 존엄과 경제적 안정 속에서 물질적 진보와 정신적 발전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경제·금융영역에서 취해지는 모든 프로그램과 조치들도 인간에 복무하는 관점에서 평가되고 근본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채택되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향한 거대한 반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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