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선희 직업환경의학전문의(계명대 동산의료원)

나는 직업환경의학 의사다. 얼마 전 5인 규모 사업장에서 비철금속 조립·용접 공정에 종사하는 한 40대 근로자를 만나 건강 상담을 한 적이 있다. 그는 4~5년 전부터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혈압이 조절되지 않았다. 질산과 염산·크롬산을 취급하는데 눈이 따끔거리지만 물어볼 곳도 없고 불안하기만 해 혈압조차 올라간다. 1회용 마스크를 착용해 보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상담을 통해 화학물질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됐다. 사업주가 보호구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법이 정한 화학물질 취급자는 특수건강진단을 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사업주에게 보안경과 방독마스크, 내화학용 장갑을 요구했고 지급받을 수 있었다.

특수건강진단은 근로자들이 개별로 검진과 상담을 받으면서 유해물질을 인지하고 예방조치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매우 기본적인 통로다. 그러나 5인 미만 초소규모 사업장 근로자들은 특수건강진단 기회를 거의 가지지 못한다. 2016년에 5인 미만 제조업 사업장의 경우 사업장의 약 4.9%, 종사자의 약 8.4%가 특수건강진단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50인 이상 제조업 사업장의 경우 사업장의 약 91.6%, 종사자의 약 50.7%가 특수건강진단을 받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법에서 정한 유해요인에 노출되거나 취급하는 근로자가 특수건강진단을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이 법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 이유가 무엇일까?

산업안전보건법은 시행령 별표1에 그 적용 예외 사업장이 명시돼 있고, 5인 미만 사업장이 이에 해당된다. 상시근로자 5인 미만의 초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두지 않아도 되고,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할 관리감독자를 두지 않아도 되며,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규정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고, 안전보건교육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사업주와 근로자는 알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작업장의 위험한 환경에서 근로자 안전과 건강을 관리해야 하는 것은 사업주 의무이며, 작업장의 위험한 환경에서 자신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야 하는 것은 근로자의 권리이자 의무다. 그러나 모르고서야 어떻게 작업환경을 관리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가?

독일에서는 소규모 사업장 사업주들에게 교육을 받도록 해서 그 역할을 하도록 한다고 한다. 사업장 규모가 작다고 해서 그 의무가 방기돼서는 안 된다. 소규모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안전관리 책임자와 관리감독자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12월 말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됐지만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대부분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임금근로자뿐 아니라 노무를 제공하는 자를 법의 대상으로 확대해 택배근로자·대리운전자·예술근로자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는 특수고용 근로자를 적용대상으로 포함시켰다. 그런데 임금근로자 상당수를 여전히 적용 예외로 두는 것은 개정안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유럽의 여러 선진국처럼 다른 법률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근로자는 제외하더라도 모든 근로자가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