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김진원(42·가명)씨는 17년 다닌 직장을 그만뒀다. S아웃소싱회사 소속으로 기내항공식을 조리·포장하는 일을 했다. 연봉은 3천만원 언저리에서 좀체 오르지 않았다. 퇴사를 결정했다. 주업이 있지만 소일거리로 배달대행을 하던 동생 권유로 배달대행업계에 눈을 돌렸다. 사고위험이 마음에 걸렸지만 직장에서 받던 임금보다 많은 돈을 집에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강민수(29·가명)씨는 5년차 배달노동자다. 업계에서 경력이 적지 않은 편이다. 배달노동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때다. 용돈을 벌기 위해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에 입학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직업군인이 됐다. 4~5년간 복무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만두고 족발집을 차렸다. 장사 경험이 없었던 강씨는 첫 사업에서 3천만원의 빚을 남겼다. 빚을 갚기 위해 스물 다섯 나이에 배달노동시장에 뛰어들었다. 가게를 정리하고 미처 팔지 못한 오토바이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배달업계에 뛰어든 노동자의 사연은 달랐지만 이유는 같았다. 바로 '돈'이다. 김씨는 직장에 다닐 때보다 연봉 2천만원을 더 번다. 강씨는 10개월 만에 빚 3천만원을 모두 갚았다. 이들은 어떻게 짧은 시간에 고수익을 올렸을까.

"배달노동자 안전과 삶을 담보로 쌓아 올린 수익"

강민수씨는 빚을 갚기 위해 하루 70~80건의 배달량을 소화했다. 하루 12시간 이상 도로 위에서 살았다. 시간은 곧 돈이었다. 점심시간에도 일했다. 집에서 싸 온 선식을 중간중간 마시며 배고픔을 달랬다. 쉬는 날도 반납했다. 그렇게 강씨는 월 순수익 500만원을 손에 쥐었다. 350만원을 빚 갚는 데 썼다. 남은 돈으로 최소한의 생활만 했다. 말 그대로 악착같이 살았다. 10개월 만에 빚을 청산했다. 그리고 배달업계를 떠났다가 돌아왔다. 빚을 갚은 지금은 그때처럼 일하진 않는다고 한다.

배달노동자가 속한 배달애플리케이션 시장은 '고객-배달주문앱-음식점-배달대행앱-지역별 배달대행사-배달노동자' 구조다. 고객이 배달의민족·요기요 같은 배달주문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음식점은 부릉(메쉬코리아)·생각대로·바로고 등 배달대행앱에 주문을 전송한다. 지사는 배달노동자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배달노동자가 배달대행앱으로 콜을 잡는 구조인데, 지사가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콜수를 정한다. 맥도날드를 비롯한 대형체인점의 경우 배달수수료가 배달대행앱 주도로 단가가 정해진다. 지역 거점 음식점은 지사가 개별계약을 맺고 단가를 정하기도 한다.

배달노동자는 배달거리 1.2~1.5킬로미터 기준 기본수수료로 약 3천원을 가져간다. 기본·추가 수수료는 업체마다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거리가 100미터 늘어날 때마다 100원이 붙는다. 추가 수수료를 감안하면 배달노동자는 한 건당 평균 3천~3천500원을 수수료로 챙긴다. 올해 최저임금 8천350원을 넘기려면 한 시간 안에 세 건 이상을 배달해야 한다. 월소득 500만원을 벌려면 하루 60건을 소화하고 주 6일 근무를 해야 한다. 연장·야간근로수당이나 유급휴일은 언감생심이다.

김진원씨는 "회사에 다닐 때 휴무·연차를 이용해 여행도 다니고 놀러도 가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한다"면서도 "회사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회사에 돌아가도 지금처럼 수입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골목길에서 자전거나 꼬마들이 튀어나오는 등 사고가 날수도 있고 언제 어떻게 사고가 날지 모르는 게 사실이지만 수익이 보장되니까 그걸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분 1초 아까워 … 시간과 사투하는 배달노동자"

음식점은 배달시간을 통상 40분 정도로 정해 둔다. 40분 안에 음식조리와 배달노동자 음식 픽업, 배달을 끝내야 한다. 원칙대로라면 배달노동자가 1시간에 세 건 이상 배달하기가 쉽지 않다.

60분 동안 3건 이상을 배달하려면 운이 좋거나 묶음배송을 해야 한다. 묶음배송은 이동시간을 최대로 단축할 수 있는 동선을 짜서 '콜'을 받은 다음 배달하는 것을 말한다. 순차적으로 'a음식점-b음식점-c음식점'을 들러 세 가지 음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이다. 얼음이 녹으면 맛이 금방 변하는 음료나 빨리 불어터지는 면요리를 먼저 배송한다. 아구찜 같은 찜요리는 온기가 오래가고 시간이 지나도 맛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배달한다. 강민수씨는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다음 콜을 미리 잡아 둔다"며 "조금씩 겹쳐서 잡으면 통상 3건, 운이 좋으면 4건을 1시간에 배달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배달 한 건을 놓치면 3천원이 사라진다. 배달노동자는 촌각을 다툰다. 배달처에 호불호가 생길 수밖에 없다. 김씨와 강씨는 "고층건물이 가장 힘들고 짜증 나는 배달처"라고 입을 모았다. 1분 1초가 아까운데 엘리베이터는 층층이 선다. 콜이 붐비는 시간은 점심·저녁시간이다. 고층빌딩에 입주한 회사 직원이 점심을 먹는 시간과 겹친다. 배달노동자가 음식 종류·동선을 고려해 시간을 단축해도 엘리베이터 한 번 잘못 타면 5~10분을 선 자리에서 날려 버린다.

철저한 건물 보안도 배달노동자를 곤혹스럽게 한다. 강씨는 "서울 목동에는 주상복합 같은 비싼 고층건물이 많다"며 "지상에 H백화점이 있는 69층짜리 주상복합 H는 출입절차가 까다로워 단지 앞에서 고객 집까지 배달하는 데에만 10~15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보안이 철저한 곳은 경비노동자가 배달노동자 헬멧을 벗기고 신원을 확인하고, 이름·연락처까지 쓰게 한다.

배달노동자 초저녁시간 사고 많지만
입원환자는 새벽시간에 많아


"돈 벌려면 신호위반을 할 수밖에 없어요. 신호 다 지키면서 1시간에 1건 할 거면 이 일을 왜 해요?"

김진원씨는 "신호위반을 하고 인도 사이로 주행할 때면 보행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목례를 하고 지나간다"고 귀띔했다. 잘못된 일인 줄 알지만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1월 발표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 주요 내용 설명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이륜자동차 재해발생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노동부는 "5년간 업무상사고 사망자 비율이 가장 높은 업종은 음식 및 숙박업으로 이 중 대부분은 배달음식업 이륜자동차 사고"라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와 23개 의료기관의 '응급실 손상환자 심층조사' 결과를 보면 이륜차 사고는 상대적으로 금요일(15.5%)과 토요일(16.1%)에 많이 발생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륜차 사고는 초저녁시간(오후 6~8시)에 많이 발생하지만 입원환자는 새벽시간(오전 6~8시)에 많다"며 "사고로 인한 손상양상이 배달 이륜차 운전자의 시간대별 활동 특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비 오는 날 미끄러져 사고를 당했다. 그는 "한 건만 더하면 10만원을 벌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황색점멸등이 깜박이는 조그만 사거리에서 미끄러져 자동차 범퍼를 박고 튕겨 나갔다"고 회상했다. 사고로 왼쪽 갈비뼈에 미세골절을 당했다. 무릎·발목 인대가 늘어나 3주간 일을 쉬어야 했다. 산재는 신청하지 못했다. 김씨는 "산재가 된다는 것을 몰라서 청구하지 못했다"며 "대부분 사고가 나면 배달노동자가 알아서 보험처리를 한다"고 말했다.

배달노동자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산재보험법에 따르면 택배원 중 퀵서비스업자에게 업무를 의뢰받아 배송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산재보험 당연가입 대상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3월 <매일노동뉴스> 인터뷰에서 "한국 플랫폼 배달노동자는 대개 한 개의 배달대행업체에 소속돼 고정적인 노동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용자 전속성이 강하다"며 "산재보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예슬 기자
 

주행 중 콜 규제? "배달료 올리고 보험료 현실화하라"

정부는 배달노동자 안전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대책을 내놓았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2일 배달노동자 사고를 막기 위해 주행 중 콜받기를 금지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배달노동자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반발했다. 주행 중 콜을 받지 못하면 수입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이달 1일 출범한 라이더유니온(위원장 박정훈)은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개정안 중 주행 중 콜 금지가 라이더 개별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비판했다.

박정훈 위원장은 "배달노동자 안전을 위해서는 배달료를 올리고 배달보험료·보장범위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배달료가 인상되면 무리해서 콜수를 채우지 않아도 되고 배달보험료가 낮아지면 배달노동자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보험료를 지불할 것이기 때문이다. 배달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보험료 부담으로 가입을 꺼리는 배달노동자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이륜차 운전자는 출퇴근용이나 유상운송용(배달노동자), 무상운송용(중국집 등 음식점에서 자체 소유한 이륜차) 등 쓰임에 맞는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연령·운전 경력·보상비율에 따라 보험료에 차이가 난다. 무상운송용 책임보험은 연간 70만원, 유상운송용 책임보험은 370만~400만원이다. 리스 오토바이는 통상 유상운송용 책임보험에 가입한다. 한 달 리스 비용은 보험료 포함 68만원 정도다.

문제는 책임보험의 경우 이런 비용을 지불해도 자기신체·자차 피해를 보상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책임보험은 다른 사람 신체·물건에 입힌 피해만 보상한다. 종합보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상운송보험 종합보험은 보험사 승인이 나지 않아 배달노동자 가입이 어려운 실정이다.

기승도 보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보험사가 배달 이륜차 종합보험을 승인하지 않는 이유는 사고율이 높아 손해율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며 "보험료를 현실화하려면 유상운송 사고율을 줄이는 제도적·사회적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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