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문재인 정부가 5년 임기 중 2년을 지나 남은 3년 항해에 나섰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정부다. 지난 2년간 노동시장 불평등·격차 해소에 힘을 쏟았다.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시간단축을 추진했다. 하지만 반발에 부닥친 상황이다. 사회적 대화는 표류 중이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은 불투명하다.

남은 임기 3년은 개혁동력을 살려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른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2년과 남은 3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문재인 정부는 차기 정권에 어떤 가치를 넘겨줄 것인가.

<매일노동뉴스>가 창립 27주년을 맞아 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년재단 세미나실에서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2년 평가와 3년 전망’을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이 사회를 맡았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사회학)·김혜진 세종대 교수(경영학)가 토론에 함께했다.
 

노동정책 냉온탕 오간 문재인 정부 2년

사회 :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성과를 꼽는다면.

정이환 :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입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조건 개선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사회 전체에 상당한 메시지를 전했다. 노무현 정부의 소심함을 넘어선 과감한 정책을 보여 준 게 최대 성과다.

김유선 : 문재인 정부 집권 1년차와 2년차에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1년차엔 다소 거친 면이 있어도 일자리 공약 이행을 위해 노력했다. 1년차 평점은 A0를 주고 싶다. 2년차에 오면서 새롭게 추진하기보다 기왕 추진한 정책을 좋게 말하면 보완이고, 엄밀하게 말하면 후퇴가 이뤄졌다. 2년차 평점은 C+다. 앞으로 좋아질지 나빠질지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 왜 평점이 떨어졌을까. 첫해에는 변화와 개혁 선상에서 정치를 하려고 했다면 2년차에는 기존 현상을 유지·관리하는 쪽으로 방점을 옮긴 것 아닌가 생각한다.

김혜진 : 그나마 잘한 것은 노동존중 화두를 사회에 던졌다는 것이다. 내용은 추상적이지만 말이다. 노조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관심도가 올랐다는 것 말고는 제도적으로는 글쎄…. 물론 최저임금 인상 자체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만 이 과정에서 벌어진 사회적 반향을 본다면 그게 성공이었을까. 인상률과는 별개로 말이다. 오히려 방어적이 되고 다음 개혁을 못하게 한 걸림돌이 된 측면이 있다.

이병훈 : 정부 2년차가 되는 시점에 냉온탕을 오가는 듯했다. 그럼에도 현 정부 정책이 갖는 의의는 이전 정부에 비해 노동정책 패러다임의 큰 변화를 설계했다는 점이다. 소득주도 성장이나 노동존중 사회, 일자리 정부라는 단어를 제시했다. 문제는 그렇게 말한 것과 현실에서 얼마나 변화시켰는가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정부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의미 있는 성과 중에 노조 조직화가 있다. 지난해 노조 조직률이 10.7%였다. 양대 노총 100만 시대가 열렸다. 과거와는 달리 부당노동행위나 노조 설립에 대해 정부가 딴지를 걸거나 어렵게 하는 일은 사라졌다. 또 하나는 직장내 갑질·미투운동에서 보듯이 사회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런 점은 촛불운동과 맞물리겠지만 정책적 논란을 넘어 바닥에서는 이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

노동존중 담론 사회에 던진 촛불정부

사회 : 지금 말씀의 공통점이 있다. '노동존중'이라는 의미 있는 담론이나 키워드를 던져 사회적 분위기를 변화시킨 것을 잘한 점으로 꼽았다. 그것이 가져오는 위험도 있을 것이다. 노동존중 의미가 현재 작동하는 것과 상호 부합하는가. 그게 아니라면 노동존중이란 개념이 오해받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노력했는데도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다면 다음에 이런 방식으로 이끌어 갈 때 더욱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김혜진 :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국민의 개혁의지가 그쪽으로 표출됐기 때문이다. 노동존중이라는 말은 문재인 정부에서 꺼냈지만 박근혜 정부하에서 억눌렸던 노동자 문제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이상형에 맞지 않는 제도나 정책으로 실패한다고 해도, 노동존중이라는 화두는 촛불로부터 표출된 것이기에 그 책임을 노동존중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이병훈 : 참여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노사대등주의’라는 말을 썼다가 난리가 난 적이 있다. 지금의 소득주도 성장 논쟁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점에서 지금 노동존중을 국가 브랜드로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은 담론 차원에서 큰 진전이다. 우리의 사고범위를 넓혔다는 의미가 있다. 노동존중 사회라는 표현이 그렇듯이 자본의 저항이나 보수적 정서를 넘어서야 하는 과제가 많다. 소득주도 성장처럼 비주류적 접근이 무너지게 되면 케인스식 시도는 대한민국에서 쉽지 않을 수 있다.

핵심은 이런 화두를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정책추진 역량이나 실력·전략이 있느냐다. 노동존중 사회를 내세워 부딪쳐 나갈 때 소득주도 성장 못지않은 역풍을 넘어설 준비를 했는가. 지금까지는 아마추어적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정이환 : 문재인 정부는 과거 유럽 좌파정부처럼 조직노동의 뒷받침을 받는 정부가 아니다. 굉장히 취약한 권력기반 위에 서 있다. 노동존중 사회를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약한 권력관계에 있다. 그걸 실현하려면 성과를 만들고 민심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사회를 처음 제시한 것은 역대 정권에 비해 질적으로 의미심장한 정책 변화다. 하지만 노동존중 실현 또는 완수라는 표현은 말이 안 된다. 한 정권에서 어떻게 ‘노동천시’에서 ‘노동존중’으로 한꺼번에 바뀌겠는가.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노동이 시민권을 얻게 하는 것이다. 조건은 매우 척박하다. 사회적 대화도, 국회도 어렵다. 야당은 아무것도 돕지 않으려고 한다. 노동존중과 서민존중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이냐에 열쇠가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핵심은 불평등·격차 해소

사회 :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총평을 했다. 구체적인 정책을 한 바퀴 돌아본 뒤 다시 한 번 큰 평가와 전망으로 가면 어떨까 싶다. 세부 정책에서 문재인 정부에 기대했던 것은 무엇인가.

김유선 : 우선 일자리 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에서 81만개 일자리를 만들고 일자리 상황판을 두겠다고 공약했다. 실제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었다. 우리가 주목한 것은 고용의 질이다. 일자리 정책에서 중요한 꼭지는 최저임금 인상과 상시·지속 일자리의 정규직 전환,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다. 사회적 대화와 ILO 기본협약 비준도 노동존중 사회에 포함되는 과제다.

김혜진 : 핵심은 노동시장 불평등·격차 해소였던 것 같다. 일자리 창출을 내세웠다가 일자리가 없어지니까 표를 얻기 위해 그랬던 것으로 판단된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공약도 과정을 보면 비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 나중에 (모자란 일자리를) 채우려니까 어려움이 있었다. 불평등 해소를 위해 내세웠던 것은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다. 노동시간 문제는 이것과는 결이 다르다. 노조할 권리의 경우 미조직 노동자 대변기구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이병훈 : 대선 당시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표현보다는 '더불어 같이 잘사는 경제를 만들자'는 표현을 썼다. 이후 홍장표 경제수석(현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장)이 (청와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경제 패러다임을 확 바꾸겠다는 흐름이 나왔다. 그 뒤 최저임금 인상부터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때부터 눈에 띈 것은 일자리 문제와 비정규직 정규직화였다. 좁게 보면 일자리와 노동존중 사회다. 확대해서 보면 소득분배 양극화와 이중구조 개선, 고질적 일자리 패러다임을 내수 중심으로 바꾸는 것과 맞물린다. 분배중심을 강조해서 빈자리 채우듯 급하게 만든 게 혁신성장이다. 뒤늦게 소득주도 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라는 세 바퀴 성장론을 제시했다.

정이환 : 노동으로 국한하면 핵심은 노동시장 불평등 완화였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선 과정에서 다른 후보들도 3년 내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대선후보가 간접고용을 규제하겠다고 했다. 시대적 과제라서 보수후보도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시장 불평등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다.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지가 있었다. 초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에 가서 상당히 박수를 받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끝나면 민간부문 3대 과제가 남는다. 기간제 사유제한과 특수고용직 문제, 간접고용 규제가 남는다. 이것도 대선후보들이 다 말했던 것이다. 지금은 하나라도 될까 의심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입법화해서 민간부문까지 하도록 해야 하는데, 전망이 너무 어둡다.

김유선 :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과 원·하청 공동사용자 책임, 특수고용직 문제와 관련해 처음에 고용노동부가 준비하네 마네 했다. 지금은 어디로 갔나.

이병훈 : 지금 돌아보면 아쉽고 갑갑하다. 초기에 최저임금을 확 올리고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고 주 52시간 상한제와 특례업종 폐지를 입법했다. 그즈음부터 일자리 지표가 안 좋게 나오면서 반격이 시작됐다. 지난해 7월 취업자 증가 폭이 5천명, 그 다음달이 3천명이었다. 취업자 증가 폭이 천단위로 확 꺾이니까 청와대와 여당이 충격을 받았다. 켜켜이 쌓인 기득권 질서를 하나씩 바꾸면서 다음 행보로 나아가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세 가지가 없었다. 목숨 걸고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려는 철학이 있었는가. 정책은 있었지만 전략이 있었는가. 책임지고 정책을 통해 바꿔 나가는 과정에서 협상과 타협, 조율을 하면서 진척을 보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조금 흔들리니까 패를 버리듯 달라졌다. 컨트롤타워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정책에 대해 누가 말을 못하나. 지형을 바꿔 보지 못하고 그 지형에 붙잡혀 회귀하는 답답한 상황으로 이해된다.
 

▲ 정기훈 기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민간 확대’ 한계

사회 : 불평등 완화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핵심이라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돈으로 할 수 있으니까 했는데, 민간부문은 손도 못 대고 전망도 어둡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병훈 : 긍정적인 평가를 하자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만들 때 양적으로 전환기준을 확장했다. 무엇보다 이해당사자가 노·사·전 협의기구에 참여해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절차를 만들었다. 그런데 예산이 없었다. 현재 있는 기획재정부 재정 안에서 하려고 했다. 정부는 달랑 복지수당 정도의 예산만 확보했다. 그러다 보니 자회사·중규직 논란이 불거졌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민간이 쫓아오도록 하는 장치는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사용사유 제한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이상의 이슈다. 지방선거 이후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정책을) 꺼낸다고 했다가 아예 못 꺼내는 난망한 상황에 처했다.

사회 : 사용사유 제한이나 특수고용·간접고용 문제는 법으로 할 수 있는 거 말고 다른 해법은 없나.

이병훈 : 파리바게뜨나 삼성전자서비스, LG유플러스에서 수천명이 적극적인 불법파견 단속행정으로 구제되기는 했다. 그런 방식은 눈치 보고 하는 것이다. 정부가 사회적으로 비정규직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낼 수는 없었는지 안타까운 대목이다.

김유선 : 사내하청 문제는 법 개정을 안 해도 불법파견 단속으로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았나 싶다. 파리바게뜨 같이 터져 나오는 사례가 많았다. 그런 측면에서 아쉽다.

김혜진 :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으로 고용안정은 됐는데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불만이 나온다. 그것은 시간의 문제일 수 있다. 공공부문이라서 몇 년에 걸쳐 올라갈 것이다. 민간부문의 불만은 그게 아니라 정규직노조에 있다. 민간기업에서는 자회사든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든 노조를 만들면 힘이 커지고 정규직과 똑같이 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임금이 아니라 노조가 만들어져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민간부문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그 문제가 크게 작동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자신 있게 국민 설득해야

사회 : 다음 주제는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미치는 영향과 효과는 어떻다고 보나.

김유선 :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정적 효과는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 10분위 계층으로 나눠 볼 때 저임금층 임금인상률은 확실히 높다. 그렇더라도 이들의 임금이 워낙 낮아 중위층과 올라간 수준이 거의 같다. 시간당으로 봐도, 월별로 봐도 그렇다. 고임금층은 오히려 더 올랐다. 대기업이 지난해 특별급여를 많이 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임금층 임금은 과거보다 많이 올랐다. 저임금층 비율로 보나 지니계수로 보나 하위 10%와 상위 10% 임금격차는 개선된 것으로 나온다. 고용에 미치는 효과가 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발표된 논문은 5편이다. 이 중 4편은 부정적 효과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부정적 효과가 있다는) 다른 1편은 테이터 사용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있다.

정이환 :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데이터상으로는 김유선 이사장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 사례를 보면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고용량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저임금을 올렸는데 고용에 영향이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럽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산별임금 협약을 통해 임금 불평등을 줄인다. 우리나라는 그게 없다. 진보와 보수 모두 최저임금을 바라보는 가정에 문제가 있다. 진보진영은 최저임금을 올려도 고용에 영향이 없다고 한다. 보수진영은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이 나빠진다고 한다. 둘 다 일자리 지상주의다. 임금을 올리다 보면 트릴레마(Trilemma, 삼중고)가 나타난다.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사회적 과제가 된다. 정부가 보다 자신 있게 고용에 악영향을 주더라도 전체 소득분배를 강화할 수 있다, 좀 더 평등한 사회로 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사회 : 최저임금을 인상하면서 일자리안정자금을 바로 붙였다. 정부는 보통 예상되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8~9% 되니까 추가인상분이 미치는 영향을 2조원으로 커버한다고 설명했다.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제조업 등 노동시장 일자리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타이밍에 일자리안정자금을 얹었다. 안 그래도 고용이 줄어드는데, 그게 최저임금 때문인지 경기상황 때문인지 불분명했다. 그러다 여론이 확 나빠졌다.

김혜진 : 저성장기에 들어섰다. 저성장기에는 과거처럼 낙수효과 구조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지속가능한 양극화 해소 방안이라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전략 없이 공약으로 하나 던졌는데 막상 최저임금이 오르니까 수세에 몰려 우리가 잘못했나보다 이렇게 된 거다.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고 자기 전략이 있다면 피력하고 그래야 했는데, 보수언론 몇 곳이 치니까 내부에서조차 난리가 난 거다. 지난해 딱 꼬인 게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할 때였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큰 가닥을 잡고 가야 하는데, 미리 산입범위를 확대해서 노동계에 난리가 났다. 나중에 최저임금을 올리니까 재계에 난리가 났다. 올해는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2%니 뭐니 하며 정부가 먼저 흘리고 다닌다. 정말 무전략이다.

정이환 :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점이 있었다. 보수언론에 막히고 밀렸다기보다 자영업자를 포함해 우리 경제구조가 생각보다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가 무너지면 어떻게 할 것인지 준비하지 않았다.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내리고를 미리 계획하기 어렵다. 상황에 따라 올렸다 내렸다, 롱텀으로 가야 한다. 그게 크게 문제 되지는 않는다. 무계획이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이병훈 : 최저임금과 고용효과 관계를 이론적으로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상공인 등 현장에서 보는 사람들은 죽겠다고 한다. 최저임금이 아니라도 사드 등 누적 요인으로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이 된 것이다.

 

▲ 정기훈 기자

사회적 대화 난조는 민주노총과 정부·여당 책임

사회 : 사회적 대화는 ILO 기본협약 비준과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와 엉켜 있다. 그래서 지지부진했다. 이 문제는 잘했다고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이병훈 : 한국형 사회적 대화체제를 만들겠다면서 민주노총까지 포함한 6자 대표자회의를 열었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틀까지 바꿨다. 제도 내에서 눈여겨볼 게 대표성을 소수자와 약자까지 참여시키는 방안이다. 노사 중심성이 우러나지 않더라도 정부 들러리 방식을 피하는 제도적 틀은 마련했다. 그렇게 하고 굴러가는 시점에 민주노총 불참이라는 변수가 발생했다. 켜켜이 쌓인 불신을 민주노총 집행부가 풀어내지 못하면서 엇박자를 냈다. 게다가 탄력근로제에 관한 정책 현안을 바로 사회적 대화기구에 얹으면서 박근혜 정부가 했던 방식으로 사회적 대화기구를 활용하려고 했다. 제대로 해 보자고 새 부대로 바꿨지만 예전 술을 담은 것이다. 현재까지 삐거덕거리고 있어 아쉽다.

정이환 : 운영상 문제점은 다 잘 알고 있다. 근원적으로 구조적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 사회적 합의가 어렵기에 기구를 잘 만들어서 하려는 게 기본적 생각이었다. 경사노위로 개편하면서 합의기구가 아닌 협의기구라고 말했지만 실제는 합의를 추구했다. 합의가 돼야 입법이 가능하거나 정당성을 얻는 관행 때문이다.

김유선 : 사회적 대화가 난조에 빠진 것은 일차적으로 민주노총 책임이라고 본다. 다음은 정부·여당 책임이다. 정부가 민주노총을 대할 때 보면 정무적 관점이 상당히 부족하다. 중앙단위하고만 이야기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은 조직이 분권화돼 있다. 주요 대산별이 동의해서 같이 움직여야 한다.

이병훈 : 민주노총은 늘 분권화돼 있지 않나.

김유선 : 금속노조나 공공운수노조가 (사회적 대화기구로) 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지도부 리더십 부재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초에 했으면 특별한 하자 없이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안건이) 통과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몇 번은 뛰쳐나갔을 거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경사노위라는 예쁜 집을 짓는다고 하면서 세월을 너무 까먹었다. 그런 면에서 리더십 부재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면 1년 전에는 되는데 지금은 왜 안 되나? 정부·여당 책임이다. 지난해 하반기에 만나는 정부 사람마다 탄력근로제는 건드리지 마라고 했다. 노사관계에 치명타가 된다고 했다. 결국은 보기 좋게 건드렸다. 정부·여당이 경사노위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이런 속셈을 보여 줬다. 자기들 입법 보조기구라는 것을 드러냈다. 그건 경사노위를 죽이는 길이다.

사회적 대화 ‘들러리’로 도구화되지 않으려면?

김혜진 : 경사노위가 조직을 처음 만들 때 대기업 중심 사용자측과 양대 노총 중심 노동자측만으로 구성된 노사관계나 고용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향한 것은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 한국경총은 소상공인을 컨트롤하지 못한다. 노동자의 90%는 미조직이다. 현실이 그렇다면 다자구도로 가야 하다. 다자구도로 하면 노사 목소리만 있는 게 아니다. 논의가 풍부해지면서 추진 과정에서 보완책을 낼 수도 있다. 처음에 아름다운 집을 지향하고는 실제 운영은 과거 양자구도와 같이 뒤에서 정부가 조종하고 던져 주면서 갔다.

사회 : (경사노위 사회안전망개선위원장인) 나도 얼떨결에 들어가서 많이 느낀다. 경사노위 본위원회는 다자구도고 의제별위원회는 그렇지 않아 위아래가 맞지 않다. 수미일관하지 않다. 많이 아쉽다.

정이환 : 우리나라 노사정 대화구조가 다자구도로 가는 게 좋은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유선 이사장이 우리나라 노사정 기구의 실질적 역할이 입법을 위한 사전단계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 노사정 대화를 폄훼하는 게 될지 모르겠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것이 현실이다. 서양에서 코포라티즘이란 주로 노조가 임금 양보의 대가로 다른 것을 얻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노조가 그런 양보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 우리나라 노사정 대화의 기능은 어떤 입법을 할 거냐를 두고 거르는 것이다. 입법화를 용이하게 하는 구조로는 3자 구도가 더 유리하다.

이병훈 : 그건 논란이 될 만한 이야기다. 과거에 사회적 대화를 도구적 수단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있었다.

정이환 : 결과라는 면에서 이것은 수단이다. 의회도 수단이고, 사회적 대화기구도 수단이다.

이병훈 : '들러리 수단' 프레임을 벗어나려고 경사노위로 바꾼 것이다. 다자구도 프로세스를 만드는 게 정답이다. 바람직한 개선이다. 다자구도라고 해서 주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이 n분의 1로 작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계층별대표까지 적절한 방식으로 참여시키고 충분히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밟으면서 과거 방식보다 진전된 형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2자나 3자 간 밀실야합을 하듯이 된다.

정이환 : 여러 주체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라면 지금 같은 구조가 아니라 최종은 3자 구조로 하면 된다. 여러 방식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ILO 기본협약 비준 지금 안 하면 날 샌다”

사회 : ILO 기본협약 비준 문제를 살펴보자. 경사노위 논의는 끝났는데.

김유선 : 정부가 마지막 결단을 해야 할 시점이다. 87호와 98호 협약에 대해 정부는 정부 역할만 하면 된다. 그냥 비준하면 된다. (사용자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한 98호 내용은 이미 현행 법령에 충실하게 반영돼 있기에) 98호는 비준하는 걸로 끝내면 된다. 87호는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보내고 난 뒤 (대통령이) ILO 100주년 총회에 가면 된다. 물론 동물국회에서 비준동의안 협의가 될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 부분은 차기 총선 문제로 가져가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정부는 노동계와 형성한 갈등을 치유하고 복원하는 과정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병훈 : 지금 국회가 막혀 있다. 국회 비준동의든 관계법령 개정이든 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국회 상황을 보면 그런 점에서 난망하다고 판단하는 것 아닌가. 한쪽에서는 실효성이 없더라도 비준을 하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아예 정부 입법안을 만들어서 빨리 던지라고 한다.

김유선 : 지금 안 하면 연기가 아니고 영원히 날 샌다. 행정부가 비준권을 갖고 있다. 그에 대해 국회가 동의하는가 여부를 묻는 것이다.

사회 : 적극적 의지 표명은 비준동의안과 법 개정안을 같이 던지는 것 아닌가.

김유선 : 법 개정안까지 던질 필요는 없다. 합의가 안 된 거니까. 쓸데없이 논란만 부추길 것이다. 정부가 비준동의안을 먼저 보내고 나면 그에 준해서 법 개정을 논의하면 된다. 사측에서 쓸데없이 이상한 법안을 갖고 올 수 있다. ILO 협약과 배척되는 것은 제치면 된다. 비준동의안과 법 개정안을 같이 던지면 지금까지 경사노위에서 논의하던 식으로 뭔가를 짬뽕해서 보낼 가능성이 높다. 그럴 필요가 없다.
 

▲ 정기훈 기자

남은 3년 제약조건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사회 :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3년간 무엇을 해야 하나.

김유선 : ILO 기본협약을 5말6초에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노사관계 분수령이 아니겠나. 적극적으로 임한다고 하면 회생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밀린 숙제, 즉 아까 논의했던 부분에서 미비했던 것을 보완해서 내년 총선 때 해야 한다. 어떻게든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정부·여당의 과제로 세팅된다고 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지고 볶으면서 가는 거다.

김혜진 : 궁금한 건 있다. 정부·여당이 기본적으로 노동문제를 대할 때 혁신경제를 빼놓는다. 혁신경제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중요한 거지만 나중에 선거 지나면 하자고 한다. 처음에는 지방선거 있으니까 그때까지 참자, 끝나니까 총선까지 기다려라, 총선 끝나면 대선 있다고 한다. 결국 안 하겠다는 거다.

사회 : 남은 3년간 약속한 것을 다 지키라는 의미인가.

김혜진 : 다 지키라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가져가려고 했던 몇 개를 기준으로 잡았으면 한다. ILO 기본협약 비준이 상징적이다.

정이환 : 현 정부가 하겠다고 한 주요 과제 중 못한 것을 해야 한다.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 문제가 우선이다. 또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정규직 고용체제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혁작업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병훈 : 기저흐름으로 갈지, 바닥 치고 변화할지 기로에 있지만 지금 상황은 암울하다. 남은 3년도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문제가 심화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다시 동력을 살린다면, 그건 사람부터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이 계속 있는 한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마침 교체기가 됐을 때 정말 일할 사람들이 (청와대에) 같이 들어가야 한다. 이들은 우선은 지난 2년간 무엇을 잘못했는지 성찰해야 한다. 정책과 철학, 전략을 잘 잡았는지 따져 보면서 변화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제도개혁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 것이다. 행정권한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근로감독·산업안전·고용서비스 행정에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당장 국민 손에 와 닿는 변화를 해 가면서 현 정부 세력이 다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 : 김유선 이사장은 ILO 기본협약 비준동의안부터 내라, 그게 트리거(방아쇠)가 된다고 했다. 더 할 말씀 있나.

김유선 : 원래 하려던 것은 매듭지어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못 지킨 것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사과했다. 그렇다면 1만원을 2021년까지 할 건지, 2022년까지 할 건지 밝혀야 한다. 대선에서 2022년까지 1만원은 여야 5당이 공약으로 합의했던 내용이다. 최저임금과 더불어 중앙 차원에서 제도개혁이 쉽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 그렇기에 슬슬 최고임금제가 들어가야 한다. 최근 부산시에서 최고임금제를 시행했다.

이병훈 : 누구한테 최고임금제를 시행할 수 있나.

김유선 : 부산시의회에서 공공기관 대상으로 상하 간 임금차이를 5배로 제한했다. 폭은 제한적이지만 지자체 단위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최고임금에 상한선 뚜껑을 씌워야 한다. 이후 민간으로 확산하는 입법 가능성이 열리지 않겠나.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시간과 근로감독과 맞물려서 가야 한다. 대기업을 타깃으로 해서 불법파견 단속 근로감독도 필요하다. 사회적 대화는 당연히 해야 한다. ILO 기본협약도 마찬가지다.

노동존중, 국정지표에서 살아남아야 할 가치

사회 :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다음 정권까지 바통을 터치하고 가야 할 기조나 가치는 무엇이 있을까.

이병훈 : 노동존중이다.

김유선 : 노동존중은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정이환 : 노동존중은 계속 살려 나가야 한다.

사회 : 그것이 촛불혁명 정신인가.

이병훈 : 언젠가 경사노위에서 노동존중이란 게 뭔지 정의하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말만 할 게 아니라 그 내용을 제대로 채우고 구체화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정이환 : 노동존중이란 게 국정지표로 들어가서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 노동존중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오히려 싸움이 난다. 어떤 정부든 간에 노동존중을 중요한 지표로 삼아야 한다. 뭘 할지는 각 정부가 상황에 맞게 고르겠지만 노동존중은 중요한 지표로 살려 나가야 한다. 그게 현 정부의 중요한 과제다.

사회 : 이상 마치겠다. 함께 자리해 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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