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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정신> 저자 알랭 쉬피오 교수] “사회정의 복원할 해법은 적극적 연대”

기사승인 2019.05.30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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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훈 기자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ILO 헌장 전문)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필라델피아 선언 Ⅰ-a)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필라델피아 선언 Ⅰ-c)

1944년 국제노동기구(ILO) 26차 총회에서 채택한 ‘국제노동기구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을 법·제도적 관점으로 바라본 <필라델피아 정신>(2010). 이 책의 한국어판(박제성 옮김, 매일노동뉴스)이 최근 출간한 가운데 저자 알랭 쉬피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70·사진)가 한국을 찾았다.

30일 열리는 ILO 100주년 기념 한국노동연구원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노동연구원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 석학 중에서도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7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알랭 쉬피오 교수를 만났다. 그가 <필라델피아 정신>에서 비판한 시장전체주의의 실체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정의 실현방안에 대해 물었다.

- 한국방문이 처음은 아니라고 들었다. 오랜만에 본 한국은 어떤 모습인가.
“마지막으로 한국에 왔던 게 1993년인가 94년쯤이다. 당시 노동권 국제세미나에 참석했다. 한국은 유럽에서 보는 것으로 판단하면 굉장히 긍정적이다. 아주 까다롭고 폭발적인 지정학적 상황에서 자신의 정립성을 잘 지키고 있다. 여러 정치적인 상황을 봐도 아주 균형을 잘 잡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상황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몇 개 안된다. 터키의 경우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브라질·헝가리·아랍국가들과 비교해도 한국이 나은 것 같다. 민주주의 기능과 관련해 한국 같은 나라들이 모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 다시 오게 돼 기쁘다.”

“노동의 위기 극복하려면 행동해야”

-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하는 법치와 노동의 위기를 학제 간 연구를 통해 심층적으로 분석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인간성을 말살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았는데, 극복이 가능한가.
“노동의 위기와 법치의 위기를 초월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인 것 같다. 여기에 생태의 위기를 보태야 한다. 세 가지 문제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인류는 자기에게 주어진 어려움을 늘 극복했다. 지난 20년을 돌아봤을 때 가장 불행한 것은 여러 재난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노동부문을 살펴보자. ILO가 1919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출범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전후해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과 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이 나왔다. 이후 극단적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쳤다. 이제 세계 국가들이 정신을 차리고 평화적인 질서를 수립하자는 것에 공감하는 것 같다. 인류는 점점 더 커지는 위협 앞에 놓여 있다. 새로운 재난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기술적이고 환경적인 이슈 때문에 새로운 질서를 위한 충격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런 충격적인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 원하는 세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나의 강의를 듣는 젊은 학생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현재 상황에 억압을 느끼고 있다. 이 친구들한테 프랑스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는 1942~43년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관해) 결실을 맺었다.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행동을 위한 지평이 열린다. 나는 행동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본다.”

- 한국은 1997~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고, 특히 비정규직 문제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내부격차 문제가 심각하다. 격차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나.
“고용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회·환경적인 위기는 경제적 위기와 묶어서 생각해야 한다. 역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칼 폴라니가 아주 중요한 작품을 발표했다. 제목이 <거대한 전환>이다. 폴라니가 이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자본주의는 세 가지를 상품화한다. 토지와 노동, 그리고 화폐다. 이것들은 원래 상품이 아니다. 인간의 노동은 생산과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토지·노동·화폐를 마치 상품인 것처럼 다루는 것은 허구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을 상품처럼 다룬다. 토지와 화폐도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다루고 있다. 화폐는 금융시장과 연동해 평가받는다. 이것은 법률적 허구다. 법률적 허구는 소설적 허구와 다르다. 소설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 어떤 사람을 늙게도, 투명하게도, 젊게도 만든다. 법은 입양이라는 제도를 통해 나의 아들이 아닌 사람을 아들인 것처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아들로 만들지는 못한다. 이처럼 법률적 허구는 현실을 완전히 도외시하지 않는다. 노동을 상품처럼 취급하는 허구도 마찬가지다. 이게 법이다. 노동법·환경법·화폐법은 법률적 허구가 현실과 괴리되지 않도록 지켜 주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화로 이런 시스템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영어로 말하면 로(law) 쇼핑이다. 기업들이 자기들 구미에 맞게 법을 쇼핑하는 것을 말한다. 로쇼핑과 법치는 다른 개념이다. 법치는 법을 상품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상품으로 생각하면 법치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시장경제는 ‘법상품’으로 취급하려고 한다.”

“시장전체주의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 <필라델피아 정신> 한국어판이 최근 출간됐다. ILO의 목적에 관한 선언(필라델피아 선언, 1944)을 다룬 책으로 “시장전체주의 비판과 사회정의 복원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시장전체주의는 무엇이고, 사회정의는 무엇인가.
“시장전체주의는 경제이데올로기 헤게모니다. 시장전체주의자들은 모든 인간관계가 시장과 같다고 여기는 것 같다. 선거가 있으면 선거도 시장으로 바라본다. 어떤 객체를 시장의 한 상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전체주의를 향해 가게 된다. 모든 인간관계와 관련한 것들을 상품의 가치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시장전체주의다. 시장전체주의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시장과 관련한 모든 것을 부순다. 미국 대법원은 20년 전에 민주주의를 ‘사상의 시장’으로 정의했다. 민주주의를 사상의 시장으로 정의하면 가격이 붙는다. 마케팅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본다.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 ILO가 100주년을 맞았다. ILO 100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ILO 일의 미래에 관한 글로벌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는데, 앞으로 ILO 100년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글로벌위원회에서 노동의 미래 보고서만 작업했다. ILO가 100주년을 맞아 강력한 권고사항을 낼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러지 않아 아쉽다. 시장전체주의는 홍수가 나서 하천이 범람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시장이 자신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넘치는 것이 시장전체주의다. ILO가 시장전체주의에 대항하는 액션을 취했어야 했다. 100주년 보고서에서도 새로운 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법적인 분야에서 새로운 액션을 취하지 못했다.”
 

▲ 정기훈 기자

“100주년 맞은 ILO 사회적 경찰 역할 해야”

- ILO가 새로운 액션을 취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면.
“누가 국제 노동협약을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나는 ILO가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ILO 헌장을 보면 하나의 재판소를 설립해 전 세계적으로 관련법을 해석할 권한을 가진다고 돼 있다. 우버와 관련한 쟁의가 있을 때 개별 회원국에서 법을 해석하라고 하면 안 된다. ILO가 개입해야 한다. 그런 기대에 ILO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ILO에 협약·권고에 관한 전문가위원회가 있다. 전문가위가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데, 정작 재판은 못하고 있다. 만일 재판소가 생긴다면 ILO 차원에서 내린 결정을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권고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통상분쟁을 누가 해석하고 개입할 것인가다. 무역의 문제라면 WTO가 하겠지만 ILO도 재판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ILO가 규제자 역할, 다시 말해 경쟁에 대한 사회적 경찰 역할을 못하고 있다.”

- 한국은 ILO 협약 189개 중 29개만 비준했다. 기본협약도 8개 중 4개만 비준한 상태인데.
“ILO의 모든 협약이 다 중요하다. 기본협약과 다른 협약을 별도로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국가들이 더 이상 (협약을) 비준하지 않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기본협약을 정해 거기에 집중했다. 공동규칙이 없으면 다른 국가가 비교우위로 비준을 안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방지하고자 했다. 가장 나쁜 학생은 바레인과 미국이다. 비준한 협약이 가장 적다. 그러면서 비준한 나라들이 협약을 잘 지키는지 통제하려고 한다. 그건 모순이다. 그래서 비준을 한 국가와 안 한 국가 사이에 불균형이 생기는 것이다. 한국이 보다 많은 협약을 비준했으면 한다.”

“연대는 사회정의 위한 경계선”

-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단시간 노동자 등 법·제도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논란이 더해지면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한다.
“플랫폼의 가장 큰 위험은 두 가지다. 우선 기계가 생각하고, 사람은 기계가 생각하는 대로 하게 된다. 점점 비인간화가 강조되면서 여러 정신적인 질환이 발생해 압박을 받아 자살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또 다른 위험은 새로운 IT기계가 등장해 많은 노동자들이 고용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우버화된 노동처럼. 임금노동자에게 주어진 사회보장 혜택이 플랫폼 노동자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우버는 기사들이 노동조건이나 근로자지위와 관련해 집단소송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재조항에 서명하도록 했다. 법원에 소송을 하지 말고 변호사 같은 중재자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미국 법원에서 지난해 12월 이 중재조항이 유효하다고 인정했다. 일종의 소송포기각서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못하게 되니까 우버 기사들이 프롤레타리아 룸펜이 된다.”

- <필라델피아 정신>에서 유럽사법재판소가 “진보 속 평등”이라는 유럽연합의 목표를 포기한 후 최저가 입찰경쟁에서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7년 유럽사법재판소의 (기업이 인건비가 싼 국가로 이전하는 것을 막은 파업이 기업자유를 침해했다고 본) 바이킹 판결과 (외국에서 파견 온 노동자에게 국내 단체협약을 적용하기 위한 쟁의행위를 제한한) 라발 판결을 예로 들면서 “파업을 비롯해 시장의 자생질서를 방해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노동조합 활동은 금지된다”고 우려했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다. 유럽연합은 고통을 겪고 있다. 2000년 니스에서 유럽기본권헌장을 체결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이들의 경제자유 우월성을 인정했다. 두 가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라발 판결과 바이킹 판결이 주는 교훈은 유럽연합은 그만의 가치에 충실하고 공동의 선을 위해 노동환경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럽연합 각 기관들이 정신분열적 측면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스 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은 인력을 줄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해고됐다. 그래 놓고 인력이 부족해 발생한 장시간 노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이건 정말 정신분열적인 측면이다.”

- 인간적인 노동체제와 적극적 연대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라델피아 정신>에서 “국제관계에서 중시되는 소극적 연대를 넘어 적정노동과 사회정의를 국제무역체제의 공동 목적으로 삼는 적극적 연대로 이행하고, 국제무역에 관한 규칙들의 중심에 연대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일갈했다. 시장전체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정의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적극적 연대’라는 뜻인가.
“인간 노동체제와 연대에 관한 핵심적인 개념이다. 경제적 근본주의자인 하이에크는 사회연대·사회정의가 신기루라고 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연대에 기초해 정립된 모든 제도를 파괴한다. 민주적으로 자유롭게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사회보장시스템도 그렇다. 예를 들어 연금을 분배식이 아닌 적립식으로 바꿔 시스템을 해체한다. 더불어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해 연대를 해체한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계약 당사자 하나하나가 입자를 구성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한다. 경제민주주의는 그런 게 아니다. 피부·국적·종교를 구분하지 않고 연대에 기초해야 한다. 이분법은 안 된다. 적이냐 아군이냐 논리를 내세운다. 아랍은 이슬람, 미국은 개신교 이런 식으로 구분하게 된다.

결사의 자유를 보장해 주고 사회적 보장 같은 장치를 유지하는 것, 노동을 통해 여러 가지 사회적 보장을 누리는 것이 어떤 국가에게는 꿈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혜택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연대에 중점을 두고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 효율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요즘 자유경쟁이 화제인데, 10년 전 프랑스 마르세유 실업자들이 자신들이 쓰던 오래된 자동차를 손보는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일부 사람들은 불공정한 경쟁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사람들은 자유로운 경쟁을 내세우며 모든 연대를 비난한다. 잘못된 시각이다. 연대라는 것은 하나의 경계선이다. 사회정의에 복무할 수 있는 새로운 경계선 말이다.”

김학태 tae@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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