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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위험을 멈출 수 있어야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

기사승인 2019.05.30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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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검붉은 유증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영상으로 접했지만 마치 현장에 있듯 공포가 밀려왔다. 지난 17일 충남 서산에 위치한 한화토탈 대산공장에서 ‘유증기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에도 유증기가 유출됐다. 이로 인해 노동자와 인근 주민 2천여명이 치료를 받았다. 이곳에선 지난달 26일에도 유증기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유출된 유증기는 스티로폼 같은 합성수지 제조원료인 ‘스타이렌모노머’ 성분으로 확인됐다. 흡입할 경우 구토·어지럼증·피부 자극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현장 확인을 위해 현지를 방문했던 서산시민사회환경협의회 관계자는 사고 발생 후 1시간 뒤쯤 현장에 도착해 차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악취가 올라왔고 문을 금방 닫았음에도 잠시 마신 연기 때문에 한동안 호흡이 힘들었을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이번 사건은 늑장 신고와 안일한 대처, 은폐 시도까지 총체적 부실의 표상이다. 그런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은 사고 원인으로 노조를 지목했다. 그는 “강성노조에 의한 파업이 기업과 국민, 그리고 국가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실히 드러낸 상징적인 사고”라고 주장했다. 노동자와 지역주민 건강을 위협한 사고의 원인을 두고 노동조합을 지목한 환노위원장 태도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보편적 인권으로 여겨야 하는 노동자 권리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태도이며,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대책 마련을 방해하는 문제적 발언이다.

실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대정비 기간 동안 한화토탈에서 일하던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의 조사 참여를 배제해 온 것이다. 사고현장에서 가장 인접한 곳에서 일했던, 원청 발주를 받아 실질적인 공장설비 가동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포함해야 사고현장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음에도 참여를 거부한 것이다.

그 까닭에 지난 27일 플랜트건설노조 충남지부와 서산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시민사회와 지역주민·노동자 등 민간 3주체 참여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다 29일 대전지방고용노동청과 면담이 이뤄져 한화토탈 특별근로감독에 플랜트건설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기로 했다.

사고 진상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노동자 참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폭발사고 당시 대피하려 했던 플랜트 노동자들에게 취해진 조치는 심각했다. 특히 지난달 22일 입법예고된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시행령·시행규칙)을 떠올렸을 때 우려가 크다.

플랜트건설노조에 따르면 사고 난 공장에 이웃한 나프타 분해공장(NCC)에 있던 플랜트 노동자들이 대피하려 하자 하청업체 소장은 “다시 돌아와 컨테이너에서 대기하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노조간부들이 항의한 이후에나 대피할 수 있었다.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폭탄’을 앞에 두고 불안에 떨며 일해야 하는 상황이 노동자들에게 발생한 것이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바른 선택은 피하는 것이다. 그래야 인재사고를 예방할 수 있으며, 산업재해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20일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작업중지의 범위·해제절차 및 심의위원회 운영기준’을 전국 지방고용노동관서에 배포했다.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내년 1월16일에 시행될 예정인데 반년이나 앞서 2017년 마련한 운영기준을 폐기하고 새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노동부는 운영기준 변경 소식을 보도자료로만 밝혔을 뿐 내용 전부를 공개하지 않았다. 중대재해 발생에 대한 작업중지 요건, 범위 및 해제절차를 규정한 내용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알고 있어야 하는데도 비공개에 부친 것이다. 이는 노동자의 알권리를 침해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게다가 그동안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권 증진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이 되길 바라며 요구했던 실효성 있는 작업중지 명령 요건과 범위 확대, 작업중지 해제 절차·과정에서 노동자 참여 보장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노동자 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질타를 받는 하위법령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반영한 운영기준이 어떻게 노동자 안전을 보장하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작업중지권은 노동자 안전뿐만 아니라 시민, 더 나아가 지역사회 전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제대로 보장해야 하는 기본권이다. 노동자가 스스로 위험을 멈출 수 있어야 우리 사회 전체가 건강할 수 있다. 사고 발생 원인은 강성노조 탓이 아니다. 외려 노동자 권리 몰이해에서 사고가 비롯되는 것이다.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의 안전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나래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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