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수 건설노조 레미콘조직위원장

최근 부산에서 레미콘 믹서트럭을 운전하는 레미콘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가입하고 노동조합활동을 시작했다. 레미콘 노동자들의 바람은 단순했다. ‘일요일에는 쉬고 싶다. 하루 8시간 노동이 지켜졌으면 좋겠다. 회사(레미콘 제조사)들이 덤핑경쟁만 하지 말고 운송비나 제대로 올려 줬으면 좋겠다’는 요구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으로 단단히 뭉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건설노조 문을 두드린 것이다.

부산지역 레미콘 노동자들이 건설노조에 가입한 것을 두고 사측에서는 선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기업을 운영할 방도가 없다”거나 “(민주노총이) 부산·경남권을 접수했다”거나 얼토당토않은 가입 협박 의혹까지 거론하고 있다. 노동조합, 그것도 민주노총이라면 손사래를 치며 일단 거부하고 보는 구시대적인 언행이 아직도 활개 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협박은 오히려 사측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조합이 생기면 기업이 망한다’는 식의 철지난 주문을 외면서 말이다.

사측의 막연한 우려와는 다르게 레미콘 노동자들은 노사가 상생하는 레미콘 현장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회사와 노동조합이 서로를 인정하고 상생한다. 조합원들의 생존권 및 레미콘 제조사 직원들의 복지 개선을 위해 건설사들의 횡포와 갑질, 향응 및 금품 강요를 차단한다’는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원청 건설사에 레미콘을 납품해야 하는 레미콘 제조사들은 원청의 각종 갑질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걸핏하면 덤핑경쟁을 하며 제 살 깎아 먹기 식 출혈경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피해는 고스란히 레미콘 노동자들 몫이다. 레미콘 제조사들이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노동자들에게 최대한 낮은 수준의 운반비에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량 레미콘을 납품해 부실공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부산지역에서는 레미콘 제조사들과 레미콘 노동자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원청 건설사들의 갑질을 근절해 서로가 웃을 수 있는 건설현장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부산의 바로 옆 동네인 울산에서는 이러한 레미콘 노동자들의 포부를 현실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울산의 모든 레미콘 노동자들은 건설노조에 가입해 하루 8시간 노동, 토요 격주휴무, 운반비 인상을 실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망했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다. 오히려 토요 격주 휴무를 시행하니 레미콘 제조사 관리직원들도 쉴 수 있어 긍정적인 반응이다. 울산의 모범사례는 부산의 레미콘 노동자들이 노조로 뭉치는 데 큰 힘이 됐다.

부산지역 건설노동자들은 건설노조에 가입한 레미콘 노동자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다. 특히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공정을 함께하는 콘크리트 펌프카 노동자들과 콘크리트 타설 노동자들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바로 이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하면 회사에서 불이익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레미콘 노동자들의 걱정을 지워 줬다. 레미콘 노동자들이 건설노조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콘크리트 펌프카를 비롯한 건설기계 노동자들과 콘크리트 타설 노동자를 비롯한 형틀목수·철근 등 토목건축 노동자들, 게다가 타워크레인 노동자들까지 만사를 제쳐 두고 달려와 연대했다. 업종과 직종의 차이를 뛰어넘어 모두가 똑같은 건설노동자이자 건설노조로 함께하자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끊이지 않는 안전사고, 무법천지·장시간 중노동·이판사판 공사판. 건설현장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수없이 많은 건설노동자가 함께 일하지만 제각기 맡은 공정이 다르면 매일 보는 동료 이름 하나 신경 쓸 틈조차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건설현장에서 내 옆에서 함께 일하는 노동자가 나와 같은 건설노조 조합원이라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 된다. 레미콘 노동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공정을 함께하는 노동자들을 마주할 때, 현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건설노조 조합원들을 볼 때, 이들과 같이하면 건설현장을 바꿀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진다. 부산지역 레미콘 노동자들이 건설노조에 가입한 이유이자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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