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노조 레미콘 노동자들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 광장에 모여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촉구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지난 1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대학로까지 레미콘 차량을 선두에 세운 1천200여명의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행렬을 이끈 레미콘 트럭에는 '레미콘 노동자 하나 되어 인간답게 살아 보자'는 현수막이 걸렸다. 건설노조는 이날 레미콘 노동자 전진대회를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레미콘 노동자는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면서도 레미콘 제조사 덤핑경쟁의 제물이 돼 제대로 된 운반비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도 공급과잉으로 인한 불공정 거래가 심각한 만큼 정부가 레미콘 수급조절을 계속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1시간30분 안에 콘크리트 타설까지
'탕발이 운반계약' 운송료는 제자리걸음


레미콘은 영어 레디믹스트 콘크리트(Ready-mixed Concrete)를 일본에서 줄여 만든 말로, 일본식 조어가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왔다. 보통 콘크리트 제조공장에서 미리 반죽한 콘크리트를 공사현장까지 굳지 않도록 개면서 운반하는 차량을 레미콘으로 부른다. 콘크리트가 운반 중 굳으면 안 되기 때문에 콘크리트 제조사들은 레미콘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1시간30분 내 공사현장에 도착해 콘크리트 타설 작업까지 마칠 것을 요구하며 일명 '탕발이' 계약을 한다. 탕발이는 운반 1회당 운반단가를 정하는 형태로, 보통 한 탕에 3만5천~4만5천원이다. 수도권은 4만5천원 수준이지만 지역은 3만5천원으로 편차가 크다. 레미콘 노동자들은 한 달에 100탕 이상 뛰어야 한 달 5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1억원대인 레미콘 차량을 할부로 구입하기 때문에 매달 차량 할부로만 150만~200만원 정도를 지출한다. 기름값과 보험료 등을 제하면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200만원이 조금 넘는다.

김봉현 노조 레미콘조직위원장은 "매년 운반비 계약을 맺으며 회사와 협상을 하지만 1회전에 1천원 올리기도 버거울 정도"라며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데 레미콘 운반비는 10년째 제자리"라고 비판했다.

업계는 레미콘 운반비가 오르지 않는 이유로 공급과잉을 꼽는다. 정부는 2009년부터 건설기계 수급조절 대상에 레미콘을 포함해 관리하고 있다. 포화상태에 이른 레미콘 신규등록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앞으로가 문제다. 건설기계관리법에 따라 국토교통부 장관은 건설기계수급조절위원회 심의를 거쳐 수급계획을 수립한다. 다음 2년 수급계획을 수립하는 수급조절위원회가 올해 7월께 열린다.

현장에서는 편법이 횡행한다. 콘크리트 제조사들은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이 아닌 파란색 자가용 번호판을 단 레미콘 차량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레미콘 수급조절을 피해 가고 있다. 이런 콘크리트 제조사 민원에 떠밀려 수급조절위원회가 신규등록 제한을 풀어 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노조는 이날 집회에서 "현재 레미콘 가동률은 50%를 밑돌고 있다"며 "레미콘 노동자가 하루 8시간 일하며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정부가 레미콘 신규등록 제한을 연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 불리는 레미콘 노동자
부산·경남에서만 세 달 만에 1천200명 노조 가입


이날 집회에는 전국에서 레미콘 노동자들이 전세버스를 빌려 참가했다. 애초 수도권 레미콘 노동자 중심이던 집회 규모가 커졌다. 이는 최근 노조 조직화와 관련이 있다. 노조에 가입원서를 제출하는 레미콘 노동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기 때문이다. 부산·경남지역에서만 지난 3월부터 세 달 동안 1천200명이 가입했다. 부산 레미콘 노동자 가운데 S레미콘 소속 12명을 제외한 98%가 노조 조합원이다. 울산은 이미 레미콘 노동자 100%인 404명이 노조에 가입해 있다.

노조는 올해 초 전략조직단을 구성하고 레미콘 노동자 집중 조직화에 들어갔다. 콘크리트를 운반·공급하는 레미콘 노동자들은 건설기계 장비를 다루는 노동자와 형틀목공을 잇는 고리다. 레미콘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으면 콘크리트 타설공정도 멈추게 된다. 가장 기초인 골조공사가 중단되는 것은 건설현장이 '올스톱'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집회 참가자들은 "그동안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콘크리트 제조사와 일대일로 운반계약을 맺으며 1천원 올리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했지만 앞으로는 '노조'로 뭉쳐 박탈당한 권리를 되찾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집회를 마치고 민주노총이 이날 주최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촉구 공동행동의 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대학로까지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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