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에게 법원은 기울어진 운동장”
지난 5일 오후 노동법원 설립을 위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조응천·한정애 의원과 공무원노조가 주최한 ‘노동사건 전문법원 왜 필요한가?’ 토론회에서는 노동법원 설립 필요성을 두고 법률전문가와 노사·정부가 팽팽하게 맞섰다. 법률전문가와 노동계 관계자들은 노동사건 특수성을 반영해 권리구제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문적으로 판단할 노동법원이 필요하다는 반면 정부와 재계는 현재 노동위 시스템에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우리처럼 행정기관인 노동위가 사법적 기능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우리나라 재판은 원칙적으로 3심제지만 노동분쟁 해결절차는 노동위원회와 법원으로 이원화돼 실제는 5심제, 길게는 8심제까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노위 판정과 중앙노동위 재심판정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대법원까지 모두 5심 재판이 이뤄지고, 대법원이 노동위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구제 판정을 확정하더라도 강제집행력이 없어 해고기간 중 임금지급과 관련한 민사소송을 재차 제기하면 8심까지 늘어진다는 설명이다.
신 변호사는 “대법원은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를 이유로 기업의 경영위기 주장과 정리해고를 인정하고 있다”며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란 바꿔 말하면 장래에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위기로, 콜트악기·흥국생명·파카한일유업 등이 영업흑자를 기록하고 있는데도 정리해고를 강행했고, 대법원은 이를 대부분 인정했다”고 비판했다. 신 변호사는 “기울어진 운동장, 시민법의 눈으로 노동사건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을 교정하려면 노동법원 도입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외국 사례는 어떨까. 독일은 노동재판권을 행사하는 지방노동법원과 주노동법원, 3심 역할을 하는 연방노동법원이 설치돼 있다. 한인상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의 다수 국가가 독립적인 전문법원으로서 노동법원을 두고 있다”며 “독일이 전문적·노동법적 보호시스템을 설정한 이유는 노동생활에서 발생하는 법적분쟁, 개별 근로자와 사용자 간 분쟁뿐만 아니라 단체협약 당사자 간의 분쟁을 저비용으로 신속하게 관여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마다 노동분쟁의 양태도, 사법체계도 다르다”면서도 “공통적인 것은 노동분쟁 사건을 잘 아는 사람이 노동사건을 다루고 참여하자는 것으로, 우리는 노동분쟁의 특수성을 반영한 제도적 장치가 있지만 권리구제에 미흡하다는 요구에 따라 노동법원 도입 요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정부 “노동위 체제, 전문성·저비용으로 신속한 권리구제”
현재의 노동분쟁 해결절차만으로도 권리구제의 신속성과 전문성·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영완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노동위는 문턱이 낮고 근로자의 폭넓은 권리구제가 되는 데다 신속한 권리구제가 이뤄지고 있다”며 “일반 근로자들의 경우 부당한 징계와 해고를 당했을 때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게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8심제가 이뤄진다는 주장은 비약”이라며 “1년에 1만건 이상의 사건이 노동위에 제기되는데 이를 법원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강승헌 고용노동부 노사관계법제과 사무관은 “한국경총과 정부의 입장이 비슷하다”며 “노동위는 근로자들에게 좀 더 신속하고 저비용으로 권리를 구제해 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라며 “지난해 지노위에 제기된 1만건의 노동분쟁 사건 중 9천500건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노동위에서 종결됐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성 부분에서도 노동위 공익위원은 노동법 전문가로, 노무사나 변호사·학계 인사가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