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서울시가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지 3년이 지났다. 노동이사는 참여형 노사관계 모델로서 노동자 경영참여라는 성과도 컸지만 노동이사 권한의 제약에 따른 한계도 많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과 국정과제로 노동이사제 도입을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으면서 다른 지자체와 공공기관, 민간기업으로 확산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지난 3년간 서울시가 운영한 노동이사제 성과와 한계, 개선점을 짚고 중앙정부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요구하는 자리가 마련돼 눈길을 모았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동이사제 쟁점과 향후 과제’ 집담회다. 집담회는 서울시가 주최한 1기 노동이사 아카데미 일환이다. 김세용 SH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나도철 서울복지재단노조 위원장·박귀천 이화여대 교수(법학)·박희석 서울교통공사 노동이사·변춘연 서울노동이사협의회 의장이 패널로 참석했다. 노광표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노사정협의회 위원장이 사회를 맡았다.

서울시는 2016년 5월 우리나라 최초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 16곳에서 22명의 노동이사가 활동 중이다.

노사 모두 인정하는 노동이사제 성과
이사회 관행 달라지고 노사갈등 요소 줄어


노동이사제는 어떤 효과를 발휘했을까. 나도철 위원장은 노동자 의견을 이사회에 전달할 수 있는 점을 꼽았다. 나 위원장은 “서울시복지재단은 2017년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며 “그전에는 노조 의견과 다른 안건이 올라가도 이사회가 열리기 전 이사회장 앞에서 피케팅하는 게 전부였다”고 소개했다. 노조는 그 뒤 단협으로 이사회 참관권을 얻었지만 발언권은 없었다.

노동이사제가 도입된 지금은 노동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하고 노조도 참관한다. 나 위원장은 “노동이사제 도입 뒤 달라진 점은 이사회 전에 노동이사와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라며 “이사회 안건의 의미와 조합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교환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사회에서 천편일률적인 만장일치 안건 통과가 없어졌다고 했다. 나 위원장은 “이사회 담당직원의 태도와 회의 자료의 충실도가 달라졌다”며 “노동이사가 참여한 뒤로는 반대 의견이 나오면서 이전 같은 만장일치 의결 관행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사용자도 노동이사제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김세용 사장은 “SH는 2018년 2월 두 명의 노동이사 선출 뒤 모두 15번의 이사회가 있었다”며 “사업이 많다 보니 이사회 의견을 얻어야 할 일이 많아 거의 매달 회의를 하다시피 했다”고 소개했다.

김 사장은 “가장 긍정적인 면은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임원들이 전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장 근로조건 개선에 도움이 됐다”며 “노동이사들 덕분에 노동자들이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도록 현장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이 제도가 100% 안착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장점은 살려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사 간 정보 비대칭 문제가 상당히 해소되면서 노사갈등 요소가 줄어들었다”며 “장기적으로 볼 때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높아지는 장점도 있다”고 밝혔다.

노동이사는 꼭 노조탈퇴해야 하나?
교섭·쟁의권 한계 속 노동자 경영참여 의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노동이사인 변춘연 의장은 노동이사들의 고충을 솔직히 전달했다. 현행 노동이사제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성과도 크지만 한계도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노동이사로서 사용자·노조와 어떻게 관계를 정립할지가 과제라고 밝혔다.

변 의장은 이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변 의장은 “노동자를 대표해 참여한 노동이사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안건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한다”며 “이전에 거의 말이 없던 사외이사들도 경쟁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고 설명했다. 기관장 태도도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기관장은 조직 내 민감한 사안에 대해 불편할 수도 있을 텐데 노동이사를 만나 의견을 듣는다”며 “포괄적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노동이사가 노조를 탈퇴해야 하는 점은 대표적인 한계로 꼽혔다. 변 의장은 “굳이 노조탈퇴를 조문화할 필요가 있느냐”며 “노동이사가 고립될 우려가 있고 노조가 약하거나 없는 기관에서는 노동이사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서울시 근로자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에서는 노동이사는 노조를 탈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5월 방문한 프랑스에서는 노조 투표와 연동해서 노동이사를 선출하더라”며 “노조를 탈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한국을 후진국처럼 인식했다”고 귀띔했다.

노사 모두 고충은 있었다. 나도철 위원장은 “노동이사가 들어간다고 해서 안건이 변경되거나 조정되는 일은 없다”며 “변하지 않는 의결구조를 어떻게 보완하느냐가 과제”라고 짚었다. 김세용 사장은 “SH에는 노조가 3개가 있다”며 “두 명의 노동이사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의견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불만을 가진 노조가 생기는 등 노노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런 점이 노동이사 스스로 포지션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박귀천 교수는 “노동이사제 도입 초기에 노조 힘을 분산·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우리나라 법원은 노조의 교섭·쟁의권에 보수적이기 때문에 경영·인사 문제에서 구성원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한 노동이사제는 그 자체로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사회 안건 부의권 등 노동이사 권한 강화해야
“노조 내부에서도 노동이사제 적극 논의할 때”


노동이사들은 좀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변춘연 의장은 “노동이사를 사외이사와 동일시하는 것을 거부한다”며 “경영자 감시라는 취지에 맞게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동이사가 있어도 이사회가 안건을 다수결로 의결하면 이전과 달라질 게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사회 안건 부의권·재심의 요구권·인사추천위원회 참여권 같은 권한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변 의장은 “노동이사는 현업을 겸직해야 해서 부서장의 통제를 받는다”며 “이사로서 역할이 있는 만큼 노동이사를 전담업무로 해서 전문성과 동일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희석 노동이사는 “SH는 서울시 산하 16개 투자·출연기관 중 노동이사제를 가장 잘 운영하는 모범기관”이라면서도 “똑같은 제도인데도 기관장에 따라 그 결과가 너무 다르다”고 우려했다. 박 노동이사는 “책임자가 실천하려는 의식이 중요하다”며 “노조간부를 (노동이사로) 뽑는다는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영역의 활동가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조와 노동이사 관계를 재설정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변춘연 의장은 “이사회 안건이 올라오면 노조와 상의해 판단한다”며 “둘의 관계는 물과 물고기 같은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노동이사가 노조의 아바타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노조와 노동이사는 끊임없이 숙의하고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지적 관계”라고 말했다.

집담회 참석자들은 노동이사제가 다른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으로 확산하려면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박귀천 교수는 “중앙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어 법제화하면 민간기업에도 노동이사제를 확산할 수 있다”면서 “노조에서도 필요성과 공감대를 형성해서 강하게 요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서울시의 경우 노조 내부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있었고 노조에서 먼저 요구한 것도 아니었지만 서울시장의 강한 의지로 노동이사제가 도입될 수 있었다”며 “중앙정부도 국정과제로 제시한 만큼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광표 위원장은 “노동이사제 도입은 경영이 사용자의 독점적 권한인 시대가 끝났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며 “하지만 우리나라 같은 기업별노조 체제에서 노사담합 위험이 있듯이 노동이사도 그럴 위험 있는 만큼 제도적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 위원장은 “노조 내부에서도 노동이사제가 자본의 포섭제도인지, 노조를 엄호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무기인지 논의할 때”라며 “중앙정부를 포함해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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